전남친과 헤어지며 들은 말
차였다.
2022년 7월, 내 첫 연애는 막을 내렸다.
전 남자친구는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별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해줬다. 먹기 좋게 조각낸 고기를 아이 입에 먹여주듯, 내가 충분히 곱씹고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순하고 착해 빠진 전남친은 헤어짐을 얘기하면서도 그 이유를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게 참 마음이 아팠다.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지난 고통을 얘기해주었는데, 그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내가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싸울 때도, 너의 이런 저런 모습들도..
그리고 생리 때도 좀.. 힘들고 그랬던 것 같아."
뭐? 내 생리 때문이라고?
물론 순전히 나의 생리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니겠지만, 우리가 헤어진 이유에 내 생리가 껴있다는게 놀라웠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나쁜놈, 너가 내 생리를 언급해? 미친거 아냐?'
그리고 헤어진 몇 개월 뒤에도 내 생각은 똑같았다. '굳이 헤어지자는 마당에 내 생리까지 언급해야 했나? 나 안그래도 PMS로 힘들어하는 걸 본인이 가장 잘 알면서?'
내가 뭘 어쨌는데
그저 괘씸하고 억울하기만 했다. 내가 뭘 했다고, 싶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과거의 내 모습을 스스로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친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가 말한 '그 기간'에, 난 진짜 예민했다. 그렇게 굴었다.
네가 서운하게 뱉은 말 한 마디에 난 며칠씩 냉랭해졌고, 절대 한 번의 사과로 넘어가질 않았다. 어쩌다 네가 말실수를 하면 나의 기분은 바로 바닥으로 추락했으며, 나는 네 사과를 받아주지도, 상한 기분을 푸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 미운 것이 아닌데도 미칠 듯이 네가 밉다고 달려들었다. 다툼을 동반한 데이트의 분위기 주도권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었다.
결국 내 오만이었다
나는 대부분 둥글둥글 무던하지만, 간헐적으로 날카롭고 무례하고 예민하며 공격적이다.
생리 때만큼은 내 기분이 세상에서 0순위라, 나도 모르게 내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히스테리를 부려왔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나 생리 기간이라, 너가 이해 좀 해줘" 였다.
바보같이 착한 전남친은 늘 알겠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내 예민함과 내 힘듦이 전부 이해받아 마땅한 모습들이고, 상대는 다 알아서 그걸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내 모습이 아니라 호르몬 때문이야. 그래서 너가 다 이해해줘야 해. 너는 남자친구잖아.' '네 말에 내가 서운한 거잖아. 나를 화나게 한 건 너니까,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들은 곧 관계의 파탄을 가져왔고, 난 의도치않게 내 생리의 최대 피해자를 낳았다. 자기 기분이 0순위인 사람이 맞이한,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피해자가 없어야 해
언젠가 날 나무라던 친언니의 말처럼, 생리는 벼슬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맘껏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 같은 게 아니다. 그런데 나는 실시간으로 송금하듯 내 기분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의 곁에 대체 누가 남고 싶을까. 또 누가 남을 수 있을까. 나의 길고도 짧았던 첫 연애의 패인을 회고하며, 이렇게 또 한번 불편한 사실을 마주한다.
물론 그때의 나 또한 너무나 '나'였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저 당시의 너를 향한 미안함만 가득할뿐. 그렇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인 것 같다. 뼈아픈 경험으로 얻은 교훈을 미래의 나에게도 적용하는 것.
가장 미웠던, 가장 고마웠던 네게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모호한 말로 포장하는 대신, 마지막 순간까지도 본인답게 진솔하게 말해준 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그런 아픈 피드백 덕분에 내가 조금 더 직관적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던 것 같다.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단 이유 고작 그거 하나만으로 그를 미워했었지만, 사실 그 친구는 못난 나를 다 받아주는 다정한 남자친구였고 객관적으로도 좋은 사람이 맞았다.
그 친구를 만나서 나는 내 사랑스러운 면도, 아주 못난 모습들도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한 시기에 그가 있어서 이제는 감사하기도 하다. 잘 지내는 지 알 수 없겠지만, 사랑이 충만한 곳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