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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성 Aug 15. 2023

당신은 이탈리아 자취방에 초대됐습니다.

7월 일곱 번째 날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은 한국에서 보내는 일상과 다르다. 그 다름의 크기가 이탈리아와 한국의 물리적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의 크기만큼이나 크다. ‘사람 사는 곳이니 다 비슷하겠거니.’ 와 같은 안일한 생각으로 이탈리아에서 삶을 시작하면, 글쎄. 물론 그 말도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말이다. 본인도 가끔 이곳의 음식을 보면서 ‘사람들 먹고사는 건 다 똑같구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라비올리를 보고 만두를 떠올리는 찰나 정도의 순간들뿐. 마음의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빈번하게 지중해 바닷물만큼이나 짭조름한 눈물을 짜내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의, 식, 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오늘은 삶의 거처. 즉,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싶다. 왜냐하면, 지금 이탈리아의 집에 지친 육신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든 일을 할 때 ‘경제적 효율’을 고려하는 비교적 알뜰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좋은 집은 안 그런데?’와 같은 애꿎은 의문은 품지 않길 바란다. 5년간 이탈리아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활을 하면서 총 5개의 집에서 살아 봤다. 5개의 집이 가진 공통적인 부분이 있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갖고 있는 특수한(이탈리아에서는 일반적인) 점이 있다. 우선 공통적인 부분을 나열해 보겠다.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려거든, 작은 곤충들과 어느 정도 가깝게 지내야 한다. 바닥에 부스러기를 흘리고 치우지 않으면 서너 시간쯤 지난 뒤 생활력 좋은 우두머리 개미가 동료들을 몰고 집에 침투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개미가 많은 이유 때문인지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바퀴벌레를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개미 외에도 자주 눈에 띄는 곤충이 있다. 몸통은 점처럼 작고, 다리는 실처럼 가늘고 긴 거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탈리아의 기후적 특성 때문인지, 집을 3일 정도 치우지 않으면 거미가 나타나 천장 모퉁이에 진척을 치고 있다. 다행히도, 이 거미는 생사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활동성이 미비하기 때문에 크게 두려워할 필요 없다. 거미의 생김새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거미’와 흡사하다. 아마, 프랑스의 기후도 이탈리아의 기후와 비슷한 지중해성 기후이기 때문에,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도 어릴 적부터 지겹도록 봐온 집안의 거미를 작품화한 게 아닐까 싶은 추측을 해본다.  


 두 번째 공통점. 모든 집마다 창문에 철제 혹은 나무로 된 암막 창문이 있다. 유리 창문 바깥에 있는 창문인데, 이로써 이탈리아의 창문은 대부분 이중창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창의 존재를 두고 사람들은 대략 2가지의 이유를 꼽는다. 여름의 강한 햇볕을 차단하는 역할. 그리고, 외부인이 사적인 공간을 볼 수없게 함으로써 강도의 호기심을 차단하는 역할. 사견을 내놓자면 전자의 논리가 더 무게감 있는듯싶다. 여름 한낱, 이곳의 햇살은 살균을 넘어 살생을 범할 만큼 무시무시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 위에서 태양이 물살처럼 퍼 부어내리는 햇살을 차단하지 않으면 가구가 금방 본연의 색을 잃을 뿐 아니라, 내부의 온도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간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여름에는 유리 창문보다 굳센 외부의 창문을 내려놓는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오래전 건설된 이탈리아 건물을 보면, 빛을 적게 흡수하기 위해서(겨울의 경우,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서) 창을 작게 설계했다. 가장 처음 살게 됐던 이탈리아 집에는 철제로 된 암막블라인드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무거웠다. 또, 이런 블라인드를 처음 다뤄 보는지라 조작법을 모르고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의 개인 상점 입구에 있는 ‘샷다’ 같은 느낌이다.  


 세 번째 공통점. 이탈리아 화장실의 변기는 고독하지 않다. 친구, 비데가 있으니까. 이탈리아에서 비데가 없는 가정집과 숙소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감히 확언한다. 비데의 첫인상은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있다. 변기와 그 옆에 변기 비스름하게 생긴 것을 마주 보고 서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변과 소변을 분리하여 배출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변기처럼 생겼지만, 수도꼭지가 있는 저 물건은 무엇일까?’ 그 생김새를 보며 마르셀 뒤샹의 <샘>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이탈리아 문화에 무식하리만큼 상식이 없던 사람에게 비데는 뒤샹의 작품만큼 파격적이고 엉뚱한 존재감을 풍기는 물건이었다. 고민 끝에, 이탈리아 친구에게 ‘이건 소변기야?’라고 물었다. 대변기와 소변기가 구분될지도 모른다는 나름 논리적인 추측을 확인받기 위함이었다. 이탈리아인 친구에겐 엉뚱하고 신선했을 질문. 친구는 웃음을 참으려는 시늉은 했지만, 소리 내 껄껄 웃었다. 처음엔 “소변기 맞아.”라며 문화충격 먹은 외국인의 멍한 모습을 조금 더 감상하다가 이내 웃음을 눌러 삼키고 ‘비데’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 비데! 한국에도 비데 있어.”

“근데 왜 몰랐어?”

“우리 비데는 이런 비데가 아니라 조금 더 모더니즘 한 비데야. 버튼을 누르면 물줄기가 자동으로 나오거든.”

“Però. (오호!)”

‘우리 집에도 있는 비데가 이탈리아 문화를 현대화한 물건이었구나.’ 신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속으로 깨달음을 되새겼다. 이탈리아의 문화는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나라에 존재한다. 이곳의 문화를 알수록 더 다양한 곳에서 이탈리아를 만난다. 이탈리아에서는 대변을 보고 비데를 사용하지 않으면 아예 뒤처리하지 않았다고 간주한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비데 없는 삶이란 불결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 네 번째. 이곳은 개인 가정에 공급되는 전기 에너지가 적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습기 때문인지 꿉꿉하고 더운 느낌이 든다. 목덜미에 남은 물방울과 뒤섞인 땀방울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꾸역꾸역 물기를 가득 머금은 머리칼이 이내 뱉어낸 물방울은 대충 휘감은 수건을 적신다. 신선한 공기를 위해 에어컨을 튼다. 설정온도 25도. 씻고 나오자, 집도 깨끗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청소기를 꺼내 든다.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 청소기를 밀며 이곳저곳을 누빈다. 아, 바닥의 먼지를 집중해서 내려다본 탓인가? 물에 젖어 무거워진 머리칼을 버텨내는 목이 뻐근하다. 머리를 먼저 말려야 할 거 같다. 들고 있던 청소기를 룸메이트 친구에게 넘긴다. 친구는 이어달리기 바통을 받은계주처럼 청소를 이어 나간다. 머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풀어 물기를 가볍게 털어내며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서랍을 열고 드라이기를 꺼낸다. 바람이 강하기로 유명한 회사의 신형 헤어드라이어. 길고 숱 많은 머리카락일지라도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건조할 수 있다. 신나게 머리를 말린다. 에어컨, 청소기, 드라이기의 합주. 그리고 그들의 공연을 밝게 비추는 온 집안의 조명.

 우리나라에서는 한여름 지극히 일상적일 순간이 이탈리아에서도 평범한 하루의 일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전기 앞에서 늘 양자택일의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 에어컨을 틀 것이냐, 당장 머리를 말릴 것이냐. 오븐을 쓸 것이냐, 당장 청소기를 돌릴 것이냐. 욕심부렸다가는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게될 것이다. 이탈리아 생활이 낯설던 시기에는 이런 제한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전기 공급이 끊어지면 소리를 지르기 보다는 무거운 한숨을 뱉으며 ‘뭐 이런경우가 다 있어!’ 라고 혼잣말을 뱉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랬던가? 온 집안의 전기 공급이 차단되는 몇 차례 불편을 겪고 나자, 그 누구보다 알뜰한 사람이 됐다. 반항기를 채 1주일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엄격한 기숙 학교의 규율에 얌전히 굴복한 학생이 된 기분이다. 가차  없이 전기 공급을 차단해 버리는 이탈리아의 두꺼비는 이곳의 엄격한 B 사감 선생님이다. 자비롭지 않다.  


 이번 글의 말단이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모든 집의 공통점은 아니지만, 현재 주거지를 비롯하여 아직도 적잖은 이탈리아 집이 가지고 있는 특징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무리 적응의 동물인 인간이라도 이런 환경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바로, 일주일 내내 4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에어컨이 없는 집에 사는 일. 이건 단순히 더위 먹는 일을 넘어 엄연하게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이다.

 사람은 어떠한 상태가 극단에 치달았다고 느낄 때 ‘죽겠다’라는 표현을 쓴다.

‘배고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웃겨 죽겠다.’

싫어하는 표현이다. 이런 말을 듣노라면 사랑하는 이의 내일을 위해 눈물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던 때가 떠오른다. 아무렇게 ‘죽음’을 가져다 붙이는 표현방식은 생명의 존엄함을 우스꽝스럽게 재단하는 것 같아 매번 껄끄럽게 느껴진다. 작년, 그런 내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더워서 죽을 거 같다.’라는말을 했다. 단순히 너무 더워서 그런 말을 뱉은 게 아닌, 정말 집으로 걸어가는 와중에 혓바닥이 마르고 숨통이 끊어질 거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내말을 들은 친구는 ‘이미 이 더위 때문에 100명 넘게 죽었어.’라고 답했다. 생명을 앗아가는 더위였다. 이상 기후로 인해 작년의 여름은 특히 지독했다. 폭염은 사람의 숨통도, 식물의 뿌리도, 호수의 푸른 혈액도 비틀어 말렸다. 이탈리아의 가르다 호수는 370㎢로, 이탈리아에서 제일 큰 규모의 호수다. 석촌호수의 17,000배 크기에 달하며 바다의 경관을 방불케 하는 호수의 해수면이 대략 90cm가량 줄기도 했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강수량도 충분했고, 더위도 덜한 편이지만, 여전히 40도 가까운 폭염이 지속됐다. 폭염 속에서 에어컨 없는 집은 휴식 공간이 되지 못한다. 숨이 턱 막히는 더위에 새벽같이 눈을 뜨고, 거실에 앉아 우유와 빵을 먹었을 뿐인데 티셔츠는 땀에 젖었다. 무엇보다, 새끼 고양이 2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아기 고양이가 더위에 지쳐 개구호흡 하는 모습을 보면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다. 혹시 더위에 병이 나지는 않을까? 얼음팩으로 찜질을 해주며 선풍기를 내어준다. 더위에 풀이 꺾였는지, 축축한 것을 싫어하는 고양이들도 얼음팩을 가져다주니 고맙다고 손을 핥는다. 현재 거주 중인 공동 주택은 건물에 실외기를 설치할 수 없기 때문에 이웃 주민 모두가 동병상련이다. 모두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지나다니는 이웃들과 큰 소리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좋은 저녁이야. 내일이면 비가 온대.”

퇴근길 옆집 아저씨가 큰 소리로 좋은 소식을 건네주셨다. 그래! 제발 시원하게 비 좀 내려라.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이탈리아의 삶. 독자들에게 현장감 느껴지도록 전달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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