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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근차근 Mar 31. 2022

봄비 그리고 아빠

그의 은밀한 선물

 비가 오던 봄의 어스름한 밤이었다. 10시를 조금 넘긴 늦은 저녁, 나는 횡단보도에  있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건너편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가로등 앞에 정차되어 있는 쓰레기 수거차, 분주하게 봉투를 옮기는 환경미화원. , 툭툭- 쓰레기가 던져지는 소리와 토독토독 빗물 소리의 합주를 들으며 나는 야식 메뉴 따위를 고민했다. 그 때쯤 나는 무심코 시선을  가로등 아래로 주위를 두게 됐다. 실루엣이 너무도 익숙한 아저씨의 등장 때문이었다.



오른손엔 상자를, 왼 손엔 편의점 봉투를 들고 우산도 쓰지 않은 모습의 아빠. 아빠는 비를 맞으며 환경 미화원들에게 뭐라 뭐라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이곤, 치킨 상자와 음료가 들어있는 봉투를 건넸다.  



신호가 바뀌고 나는 바쁘게 아빠를 향해 걸어갔다. 집이 코 앞이었지만, 우산을 잽싸게 아빠의 머리 위로 올려주곤, 상황을 모르는 척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왜 비를 맞고 있어. 무슨 일 있었어?"



아빠는 내 손에서 우산을 옮겨가며 말했다.



"그냥 감사하잖아. 비도 오고, 늦은 밤인데."



아빠의 짧은 대답에 나는 머리를 댕-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집에 들어와 아빠는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나는 거실에서 엄마에게 내가 오늘 밤 마주했던 아빠의 장면을 설명했다.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너네 아빠 원래 그래. 몇 번씩 꼭 그렇게 챙기더라." 라며 웃었다.



자기 전, 감은 눈 너머로 물이 흘러내리던 아빠의 양손, 치킨 박스, 콜라 봉투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모습과 엄마의 말이 오버랩되어 자꾸 떠올랐다. 익숙함과 편안함 뒤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수고가 반드시 존재한다. 아빠는 그 늦은 밤 누군가의 땀방울을 적어도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머리맡 창문을 두들기는 토독-토독 빗소리인지, 아빠의 몰랐던 모습 때문인지. 차가운 밤공기와 다른 따뜻한 존경이 내 마음에 움을 트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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