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대한 회상

생각을 위해 잠시 멈추어 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그리움에 대한 회상


https://www.youtube.com/watch?v=mfJjcYZmlCk


그리워 한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게 한다. 인간의 그리움은 감정의 승화를 경험하는 좋은 예가 된다. 지난 시간들이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것이 그 순간의 아픔이나 고통조차도 그 감정의 본질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하는 시간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리움에 젖어 생각을 멈추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가슴에 찬 충만함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과거 지향적이라고 근거 없이 평가하더라도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으면 그리워하는 것이 옳다.


나의 그리움의 시작은 흥미로운 사실이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느 날이었다. 전축이라 불리던 거실에 있는 커다란 턴테이블에 유치원 노래가 나오는 LP판을 걸어놓고 추억에 젖어 있곤 했다. 참 맹랑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불과 1년 전이었을 과거의 시간을 회상하며 마치 먼 옛날을 그리워하듯 추억에 빠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50년 가까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그 때의 그 감정을 기억하고 있음에는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던 첫 그리움이었음이 분명했다. 돌이켜 이를 기억하고 있음도 그리움의 본질을 알게 하는 자각이 되고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면 친구를 떠올린다. 오랜 친구에 대한 기억은 그리움의 촉매다. 오래된 친구와의 우정이 돈독할 수 있음은 서로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 시절의 그리움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 사이에도 질투, 미움, 분노 등 그 시절의 이유 없는 감정들을 경험하는 것이었지만 그리움은 이 모든 것들을 작은 가슴으로 품었다는 사실에 대견함을 느끼게 한다. 아이가 어른의 거울이 되는 이유는 이러한 이해와 용서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승화일 수도 있겠다. 그러게 보면 이유를 만들어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는 어른의 행태가 부끄러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지 않다면 이것도 인간의 감정이 정당화된 결과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것과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이 분명히 다른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순간의 진실을 기억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은 잘못된 결과를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진실성을 깨닫고 그 순수함을 기억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삶에 그 순수한 마음이 되새겨지고 그에 더하여 자신의 곁에 있는 반려자에게 감사함으로 남을 수 있다면 이것도 인간의 성실한 노력의 하나다.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을 존중하는 마음도 감정이 승화되는 하나의 모습이다.


나는 아내의 죽음으로 오랜 시간 그리움으로 살았다. 처절했던 첫사랑의 아픔과 함께하며 인생은 내가 간절히 원하는 모습도 당연히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당위성이 없는 허무함도 알게 하였다. 그러한 순간 속에 나를 안아주었던 아내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젊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은 삶이 도전으로 다가왔다. 사업의 부도와 함께 했던 아내의 죽음은 삶의 시련을 경험하는 극한 상황에 나를 몰아넣는 순간들이었다. 당시 나는 그러한 순간을 견딘 것이 아니었다. 그냥 당연하듯 나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무심함으로 애써 외면하던 현실 속에서도 불현 듯 솟아오르는 울컥거림이 가슴 밑바닥에서 치솟아 올라오는 알 수 없는 묵직한 감정에도 흐르는 눈물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치열하고 극렬했던 감정의 회오리 마저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도 감정의 승화를 경험하는 순간이 있었다.


나의 첫사랑은 인간이 아무리 순수할 수 있어도 보상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나는 내가 당시 할 수 있는 순수함의 전부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가슴을 거쳐 머리에 섬광처럼 찾아든 끌림의 순간부터 어린 가슴에 요동치며 성인으로 성장했던 13년의 사랑을 냉정하게 뿌리치며 돌아서는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던 순간까지 하나하나가 깨달음의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그리워한다는 것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의 순수한 기억만을 남기게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열정이 단순히 나의 애욕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삶에 대한 겸손도 알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과 함께했던 아내의 죽음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그것으로도 부족했다는 신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렇게 아내가 남긴 아들과 함께 그리움으로 살았다.


아들이 성장하여 이제 얼마 없으면 군대를 제대한다. 엄마를 대신하여 주었던 많은 시간들에 대한 감사함이 아들에게 있다. 마치 아내의 영혼과 함께 있는 듯 했던 어린 아들의 눈빛, 표정과 몸짓, 말투, 그리고 마음씨까지 나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자신을 잊지 말라는 아내의 미소와도 같은 것이었다. 아들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영혼의 존재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러한 영혼의 존재가 아니었을지라도 인간의 죽음이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의 메시지와 같은 것이었다. 무와 유가 동시한다는 나의 생각은 아들에게서 보게 되는 아내의 흔적을 통해 다가서는 하나의 사유가 되었다. 인간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로 충분한 것이 되었다.


내가 아닌 또 다른 존재가 현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것이다. 자식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그것도 나와 전혀 다른 이성을 통해 새로운 나의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삶의 기적과도 같음을 깨닫게 한다.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알게 하고 그로부터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알게 하였던 그 순간도 아들이 성장하며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놓아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것도 어린 자식의 성장과 함께했던 수많은 감정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만을 남기게 한다. 이러한 것도 그리움이 갖는 감정의 승화다.


이제 와서 주변을 돌아보면 남녀가 함께한다는 현실이 사랑만으로 살 수 없음을 알게 한다. 나에게 있어 함께 늙어가는 사람이 없음에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를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좀 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낀다. 돈독한 부부의 모습을 보면 왠지 정이 가고 믿음이 간다. 물론 이것도 나를 기준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각일 수 있지만 부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한 사람들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나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그러한 것들이 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의 대한 그리움도 집착이 되면 병이다. 내가 항상 말하는 정도의 문제인 것이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집착이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이는 감정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물론 인간의 이기적인 자기중심적 사고와 자기합리화가 이를 가중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자신만의 특별한 감정으로 인식하고 이를 놓아 보내지 못하는 경우들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것이 이해의 영역에 해당되는 일이지만 당사자인 자신은 이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필요한 문제가 된다.


자신의 감정에 대한 자기합리화는 감정의 승화를 방해하는 근본적인 요소다. 그리움이란 감정은 이를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 그리움은 어떠한 사실에 대하여 아름답게 보려는 태도를 포함하고 있지만 의도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하여 자기합리화에 빠진 경우와 그리움에 젖는 경우는 분명히 그 차이를 갖는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반복하여 듣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한 이야기가 전쟁 무용담 수준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나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똑 같은 이야기를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피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럼에도 나를 잘 아는 지인들 중에서는 내가 과거지향적인 사람이라 속단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과거사를 듣는 것에 인색한 경우다. 이렇듯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큰 배려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추억에 대한 그리움에 젖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돌이켜 혼자 생각하며 감정의 승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이다.


인간이 미래만을 바라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이것도 편협함이다. 내가 지내온 과거를 되새겨 오늘이 있는 것이고 현재의 성실함이 모여 미래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사유하는 삶이다. 그리고 내가 혼자가 아닌 우리가 모여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분명한 자각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운 시절에 보내는 편지는 많이 쓸수록 좋다. 한번 쯤 날을 잡아 오늘의 마음을 가지고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를 다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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