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위해 잠시 멈추어 서다
나는 한 순간 쓸쓸함에 스스로 빠져든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고백도 거짓이 되고 만다. 쓸쓸함이나 외로움과 같은 감정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을 부여잡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나의 고백이다. 아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시절에는 갑자기 밀려든 공허함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였었고 내 자신이 불행한 사람인양 수평선을 바라보며 애써 외로운 모습을 흉내 내려고도 하였다.
젊은 날 수개월 동안 삶의 허무가 극단적으로 휘몰아쳤던 무기력 속에 온종일 잠만 자고 있던 어느 날이다. 눈을 뜨는 순간 느꼈던 암흑의 세계로 꿈속에서 밝게 빛나던 그 무엇이 나를 깨웠던 그날이었다. 그 순간 내게 다가온 밤하늘의 별 빛이 인간이 갖게 되는 원초적인 외로움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 그대로를 순응하기로 한 그 어느 날이 내게는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외로움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았다. 이후 많은 친구들이 항상 주변에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활발한 교류가 있는 편이었지만 가끔은 핸드폰도 꺼버린 채 의도적으로 몇 달을 혼자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책속에 빠져 온종일을 보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나의 삶의 일부가 된다. 나에게 이러한 종류의 습관이 생긴 것은 어찌 보면 행운이다. 그러한 시간들이 강요된 현실들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실상 세상에 연결된 많은 것들과 한순간에 거리를 둔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자칫하면 비난을 주위로부터 받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좋은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언제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나는 일상의 모든 것들을 그냥 놓아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살처럼 흘렀지만 내가 이루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현실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서 냉소를 경험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일수록 더한 셈이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충분한 시간들이 되었으니 이제는 어느 정도 만족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혼자만의 시간은 지나간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울 수도 있다. 문뜩 떠오르는 행복감이 충만했던 순간들이 결국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많은 아픔의 순간들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어 실루엣 너머의 무뎌진 세계의 모든 것에 감사하게 한다. 고통을 알게 한 것도 슬픔의 크기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도 알게 하였다. 그리고는 연꽃처럼 피어오르는 작은 소망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부질없다 생각한 삶의 허무를 덮었다. 인간의 슬픔과 고통이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결국은 내 자신에 국한된 자기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아픔을 남들도 알아주리라 자신의 감정이 객관화되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의 몸부림이기도 하였다. 혼자의 시간을 그리움으로 채우는 시간들은 내가 느낀 모든 감정의 승화를 알게 한다. 그리고 승화된 감정이 아름다움으로 피어나고 있음도 알게 한다.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면 병이 된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할 수 있다는 의식이다. 어린 시절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그러한 마음의 상처가 평생을 지배할 수도 있다. 나는 한 때 자신을 그러한 상황에 스스로를 몰아넣었던 때도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상황이 없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주변으로부터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 주위의 비웃음에 귀를 새우기도 한다. 인간이 자신의 평판에 예민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러한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 주위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자신만의 독선과 자기합리화를 통해 세상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혼자 있기는 즐기면 된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다섯 살의 어느 날 밤 알게 된 외로움과 두려움의 감정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별 빛이 20년이나 지나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던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인간이 존재하는 본질이 외로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혼자 서 있지 않으면 다른 이를 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냥 깨닫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냥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고 또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오래된 연인이 나를 떠날 것이라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나의 반려자가 나를 배신할 수도 있다고 의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의 뒤에서 험담할 것이란 의혹도 버리는 것이다. 그 20살의 왕성한 나의 청년기는 때마침 발간된 시구들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이 되어주었다. 순간 나의 비판의식도 가동되는 순간이었다.
홀로서기(서정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 중략 ---.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 중략 ---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 중략 ---.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매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의 모습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이유들도 있다. 내가 외로움에 함몰되어 우울증이나 조울증에 빠질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화를 낼만한 일도 찾기 어려워졌다. 그만큼 실망할 일도 없다. 많은 욕심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도 생긴 셈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무력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열정이 없이 어찌 인생을 살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러한 열정이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만이 열정은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지금도 내게 주어는 책임에 어느 누구보다 집중력을 발휘하며 빠져들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세상을 접하고 깨닫게 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마음껏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에 있다. 그래도 미움이 생기고 마음을 흔드는 일이 계속해서 나를 일깨우고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세상을 걸어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