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위해 잠시 멈추어 서다
25년 전 먼저 떠난 아내의 꿈을 꾼다. 가끔씩 꿈속에서나마 다시 만나는 오늘도 가슴 저미어 솟구치는 감정을 애써 외면하는 내 자신에게 반가움마저 들게 한다. 내 꿈에 들어온 아내는 마치 어제의 일처럼 밝은 모습으로 나를 위로하고 있다. 내 젊은 아내의 모습이 정말로 반갑다. 그러나 나 역시도 인간이기에 아내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첫 돌을 넘긴 아들을 데리고 명절 때마다 처갓집을 찾은 시간도 어느덧 많은 세월들로 흘러갔다. 아들이 클 때까지 장가를 가지 말라는 장모의 바람도 이제는 모두 옛말이 되었다. 죽은 이모를 너무 닮았던 어린 처조카를 보며 덜컥였던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들도 조카의 성장과 함께 익숙해졌다. 정말이지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이다. 내 아들을 키우며 많이 늙어버린 듯 이제는 삶이 지쳐 보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나는 지금도 혼자 살고 있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아내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는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으며 장모의 작은 바람을 지킬 수 있었다는 뿌듯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어땠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순간에도 이제는 극도의 감정을 애써 외면하며 차분한 묵상에 접어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참회를 한다. 아내의 기억과 내 아내로 존재했던 그 순간의 의미는 나를 일깨우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현실적으로도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고 감당해야 하는 궁핍한 현실도 아내를 소환하는 계기가 되곤 했다. 빼어난 피아노 연주능력을 갖고 있던 아내는 이미 대학 강단에 서기로 내정되어 있었고 나는 아내의 영향을 받아 학위를 취득하고 나 역시 대학 강단에 서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내게 어울리는 그림일 수도 있었다.
나의 최고의 꿈은 수천 권의 책을 쌓아놓고 그 속에 파묻혀 세상을 관조하며 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못마땅하여 정치를 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내가 있었다면 가능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나의 인생은 그러한 삶의 모습을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순간순간의 현실적인 궁핍함이 나 자신을 생활의 틀 안에 가두고 스스로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그러한 이유였을까? 국가의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나의 작은 바람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것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상하는 계기가 되었고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스스로 억압된 현실의 두꺼운 껍질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 자신의 삶을 남의 삶을 살 듯 멀리서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었고 시간에 끌려 인생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염세주의에 빠져 지낸 것은 아니다. 다른 이의 아름다운 삶에 미소를 지을 여유는 있었다. 문뜩 나는 인생을 억지스럽게 치받고 열정을 쏟아내며 자기만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그럴 만 한 이유가 된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것도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몸부림의 하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이도, 몸부림치며 포경선에 올라타는 환경론자들도, 태극기를 흔들며 광화문 광장에 모여드는 이들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전혀 다르다는 그들을 하나로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그 무엇도 가능한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다름의 뒤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그리고 부부로 만나 익숙해지면 그냥 가족이 되고 만다. 내 아내의 부재는 만약이란 전제에서 ‘우리부부는 어떻게 25년을 살았을까?’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나는 바람을 피웠을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질문이다. 25년 아내와의 사랑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는 내 자신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듯 남녀의 사랑은 익숙함 때문에 결국 시들게 되고 다른 사랑을 찾게 되는 인생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의 약속에 대한 현실적인 노력을 우리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사랑이 피부에 닿지 않게 되면 측은함과 배려로 나를 대했을 것이고 미운 마음은 슬픈 눈망울로 나를 설득하였을 것이다. 아내는 자신의 남자를 딸처럼 존중하고 어머니처럼 이해하고 누나처럼 감싸 안아야 한다. 아마도 나의 아내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면서 순간순간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겼을 것이다. 충분히 풍요로운 삶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사랑을 가슴에 품은 내가 삶이 풍요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에게는 내게 남겨준 참으로 천성이 착한 장성한 아들이 있다.
그토록 나를 가슴 아프게 했던 아들의 모습에서 아들의 성장과 함께 아내의 형상은 사라졌다. 인간의 본능에 불과한 생물적 본능에 의한 것일지라도 나를 닮은 나의 아들을 내게 남겨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아내가 부여한 의미와 내가 키우며 부여한 아내에 대한 흔적이 나의 아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내 아들은 너무도 착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사랑을 알고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으로 알고 주변을 따뜻함으로 바라볼 줄 아는 그런 아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신은 인간에게 망각을 선물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인간 스스로가 선택적 망각을 하는 것이고 그 망각이란 것 또한 의식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을 따름이다.
에리히 프롬은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에 물든 사람들에게 ‘삶의 본질’로서의 사랑의 원리와 기술을 말하였다. 20세의 어느 날 ‘사랑의 기술‘이란 책의 제목만으로 선택했던 나는 당시에 나름의 사랑을 이해하고 자신을 도닥였던 추억이 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요, 세계적인 석학인 에리히 프롬은 이 책에서 ‘자신의 전체적인 인격을 발달시키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사랑을 위한 모든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고 가르쳤다. 사랑은 모든 인간 존재의 궁극적이고도 실제적인 욕구이고 필연이라 말한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인생의 가장 유쾌하고 흥분되는 경험이 되게 할 수 있는가!’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숨겨진 잠재성을 표출시키기 위해 사랑을 이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그는 ‘사랑은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는 것이며 적극적인 ‘활동’이고 노력이다.‘라고 답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며, 우리의 사랑이 상대방에게서도 사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희망에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는 것이다. 사랑은 신념의 행위이며 누구든 신념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도 없다. 사랑의 기술의 실천을 위해서는 ‘활동’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활동이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내적 활동, 즉 자기 능력의 생산적 활용을 뜻한다. 사랑은 활동이다. 만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내가 게으르거나 끊임없는 주의와 인식과 활동의 상태에 있을 수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과도 적극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당시 사랑의 기술에 관한 단순한 교훈을 얻고자 했던 나는 그의 철학적 접근에 빠져들었다. 사랑이란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전체적인 인격을 발달시키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사랑을 위한 모든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사랑도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라 가르쳤지만 그로 인한 사랑의 상처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의 실패가 필연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결국 사랑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하여 또는 궁극에 이르는 최선의 노력인 것이었다.
"아내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나는지금 이 순간에 어떤 답을 얻고 결론을 가지려 애를 쓰고 있었을까?" 하는 반문을 다시 남기게 된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오히려 나에게 많은 것들을 남기게 하는 것이었고 그나마 욕망으로 가득찬 삶에 순수함을 채울 수 있는 하얀 캠퍼스와 같은 것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