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산다.

생각을 위해 잠시 멈추어 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모든 사람은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산다


앞서 제시되는 주제가 다소 과장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개인의 성향에 있어서 부정적인 모습이든 긍정적인 모습이든 모든 것이 ‘정도의 문제’임을 인식한다면 이러한 비약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척도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고집스런 자신의 모습을 되새기는 계기도 된다. 자신을 향한 끝임 없는 변명과 자기합리화의 실체를 알게 하는 겸손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선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향상 그 모습 그대로가 지속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그렇게 구분하고 정형화하고 있지만 한 인간의 성향을 규정하는 행위가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이 갖게 되는 양면성뿐만 아니라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도의 문제’는 남과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고 이에 대한 인식과 극복에 대한 노력의 의지가 도덕적 기준이 된다.


자폐 스펙트럼을 갖는 천재의 출현은 의외성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최근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시사하는 것이나 과거 더스틴 호프만이 출연한 ‘레인 맨’ 등의 감동 속에서 인간의 순수성이 조명받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20세기 현대사회는 자폐인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하기도 하였다. 넘플그랜딘 박사의 ‘어느 자폐인 이야기’, 미국 드라마에서 시즌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굿 닥터’,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 테츠 유키의 자폐인 공무원의 성공기 등 많은 작품을 낳고 있다. 이는 다양성을 향한 시대적 요구에 부흥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소외되었던 인간의 삶들을 다시 조명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이 갖는 의외성의 위대함은 형식의 파괴에 있다. 개인의 역사에서 형식화하고 고정화되는 자아의 고정관념을 스스로 인식하고 스스로 깨부숴야 하는 것에 대한 삶의 요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의 천재성만을 바라보고 경이로움만을 표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 잡은 편협성과 자기중심적인 악마적 성향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이러한 자폐 스펙트럼 경향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아동기에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애에서 발견된다. 또한 언어 및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장애, 상동적인 행동, 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대개는 3세 이전에 다른 또래들과의 발달상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는 유전적 요인이 분명히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 원리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특정 돌연변이들이 주요 원인인지 아니면 비교적 흔한 유전 변이들의 상호작용의 결과인지도 불분명하다. 자폐성 장애는 다수의 유전자, 환경적 영향, 후성유전학적 요소들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뇌 발달의 문제로 사회성, 언어, 인지, 정서 조절, 감각 합 등 종합적인 이상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러나 그 병증을 규명하는 정신과학적 차원도 포함하고 있다. 자폐 스팩트럼은 소아의 물리적 뇌의 발달여부와 상관없이 정신과학적 심상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스스로 문을 닫아버리고는 자기의 세계 안에만 머물고자 하는 병적 정신 상태를 말하고 있다. 그러한 정신세계 속에서 보이는 자폐인의 천재성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일반인 중에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이들과 비교해도 그 메카니즘이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자극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과 반복된 훈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자폐적 성향은 이를 극대화하기에 용이한 측면도 존재한다. 또한 다른 사람과 공감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사회성의 결여가 보이는 인간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과 공감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폐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외부의 정신적 충격에 의해 스스로를 닫아버리는 경우이다. 이는 유아기의 정신적 충격에 의해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성이 완전히 성립된 성인의 경우에도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인간의 자폐적 성향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닫고 있다가 다시 생존을 위해 외부와 소통하는 방식을 어렵게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역설적 성향은 쉽게 납득되는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일 뿐, 모든 인간은 이러한 이중적 역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의 고집스런 주장과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들은 생존의 본능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하여 인간의 정체성이란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정체성이란 정신분열적 상황에 대한 방어적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가치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가난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탐욕을 가지고 이를 통해 생존이 가능하였다고 하여 그 탐욕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심지어 배고픔 때문에 남의 것을 훔쳤다고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적 정체성이란 것들도 비유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고 그 사회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만든 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 창의 크기와 모양은 다를 수 있으나 이것도 사람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창틀에 스스로를 감추기도 하고 남에게 이를 강요하기도 한다. 자폐 스펙트럼은 말 그대로의 의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 크기와 모양을 의미한다. 자폐 스펙트럼은 사회성과 인간관계의 이해, 감각의 지각력과 감각에 대한 통합능력 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장애가 있는 상태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것이다.


자신을 객관화하려는 노력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필연적인 노력이 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폐 스펙트럼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만을 주장하며 남에게 강요하는 것들도 흔한 인간의 모습이다. 소외된 것에 대한 연민이나 이를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의 행위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해와 공감을 포기한 인간의 모습은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은 치열한 내적 투쟁을 하고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가 닫혀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외부와 공감하기 위하여 다시 생존의 투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삶의 아이러니 곧 삶의 역설이 주는 교훈은 이 역시 예외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투쟁을 바라보며 자신이 포기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한다.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 삶의 최종 목적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부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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