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위해 잠시 멈추어 서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란 개념이 언제부터 자신에게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애써 돌이켜 보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향한 모든 관심이 본능적으로 사랑이라 느끼게 되는 일이지만 삶의 어느 순간 사랑은 번쩍이는 섬광처럼 찰나의 순간에 머리를 밝히며 가슴으로 내려앉아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그 강렬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훗날 이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에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갖게 되는 특별함이 없는 일반적인 삶의 과정이었다는 생각은 나를 겸손에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인간이 평등해야 하는 이유와 남을 배려하는 도덕적 요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자각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정의 이해와 이를 위한 감정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는 나의 사색을 이끄는 주제가 된 것이다. 결국 사랑은 나에게 있어서 일반성, 보편성, 세계주의, 우주 등의 개념과 동일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에로스’에 골몰하였던 그리스 스토아학파와 같은 고대의 많은 철학자들과 동·서양을 아울렀던 그 많은 인식론자들의 출발 또한 사랑의 문제가 사유의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따뜻한 사람이다. 어머니 또한 남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아버지와는 다르게 냉철함도 가지셨다. 한 번은 여동생에게 교통사고가 있었다. 트럭이 지나가며 트럭의 일부분이 동생의 귀를 살짝 건드린 것이 동생의 한쪽 귀가 귀 앞 쪽의 피부 일부에만 걸쳐있는 상태로 피를 쏟았다고 한다. 놀란 운전기사는 급하게 동생을 근처 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주변사람에게 물어 우리 집까지 데려왔다. 나는 그 당시 동생을 데려온 기사에게 차분히 경위를 듣고 이제 아이가 괜찮으니 되었다며 기사를 안심시키고 돌려보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트럭 기사는 안도하며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돌아갔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황급하게 오셔서 동생을 지인의 병원에 데려가 세심하게 치료를 받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 일은 조그만 사건으로 일상에 묻혔다.
1970년대는 선생님이 반장을 지명하고 쉬는 시간에 떠든 아이를 칠판에 적게 하는 것이 당시에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선생의 권력을 특정한 학생에게 위임하여 반 학생을 통솔하는 방식은 일제식민교육과 권위주의 교육의 한 단면이기도 하였다. 아이들 사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권력싸움이 있었다. 그것은 힘의 논리였고 지명된 반장과 힘이 쎈 친구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하고 서로 타협을 이루기도 한다. 정치는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런 현상인 것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신학기가 시작된 어느 날이다. 또래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성격이 사나웠던 친구가 주변의 약한 친구들을 때리며 괴롭혔다. 반장이었던 나는 나서서 그 친구를 만류하였지만 결국 나와의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실 그것은 그 친구가 의도했던 것이다. 그 친구의 시도는 실패하였고 코피를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가 광분한 엄마를 데리고 왔다. 자신의 아들보다 한참 작은 나를 보자 친구의 어머니는 더 흥분하며 나를 몰아댔다. 나는 당시에 나의 부모님과 다른 부모의 모습에 의아해 했었다. 약한 친구를 괴롭힌 잘못이 그 친구에게 있었고 자신의 자식이 위해를 당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아이를 윽박지르는 모습은 나름 충격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전해들은 부모님은 나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나를 데리고 그 친구의 부모를 만나 정중히 사과하고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것은 나에 대한 신뢰의 모습이었다. 나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은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이었지만 품격을 지니고 계셨다.
사람이 받는 사랑은 아무리 크더라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어린 시절 성장의 과정에서 받은 사랑은 더욱 더 그렇다. 자신의 주변으로부터 받는 사랑의 모습이 무의식 속에 자리하게 되고 부모를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도 일반화된 인간의 착각일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받은 사랑의 크기만큼 마음으로 감사함을 알고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주관적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불우한 환경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사랑에도 감사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충분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는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나와 다툼이 있었던 친구는 이후 친구를 괴롭히는 모습은 없어졌고 나와는 꽤 친한 친구가 되었다. 20살 무렵 우연히 만난 그 친구는 배려심이 있는 친구로 성장해 있었다. 나는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편에 속한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친구와의 사귐에는 단순함이 있었다. 같이 함께할 수 있는 이유만으로도 좋은 것이었다. 세상에서 느끼는 호기심을 공유하는 것도, 막연한 미래의 두려움을 서로가 달래주는 것들도, 성장하는 사이 시간은 서로가 우정을 나누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이제는 그 친함의 순수한 감정도 많이 사라졌다. 우정과 의리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던 모든 시절은 지나갔다. 각자 자신의 생활영역을 지키고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만도 아닌 것 같다. 나의 인생에 몇 번의 롤러코스터를 거치며 내 자신이 친구들을 떠나보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애초부터 친구에 대한 기대가 없는 성격이었음에도 섭섭한 감정은 많은 냉소를 머금고 애써 외면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슬픔의 순간 스스로를 객관하기에 능했던 나의 모습은 나를 안타까워했던 친구들에게 재수 없는 놈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나는 이 순간 나의 많은 친구들을 사랑한다. 조건 없이 나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베풀려는 친구도 있고 그 또한 과시하려는 친구도 있으며 이유 없이 나를 험담하는 친구도 있다. 20세가 넘어서던 어느 날에 나는 친구가 나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베풀고자 할 때 그 기회를 만들어주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이제는 공자가 말했던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던 시절도 아니다. 벗을 만나기 위해 많은 날의 먼 거리를 찾아가는 수고가 필요하지도 않고 그러한 마음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시절은 더욱더 아니다. 각자의 세상은 나름 바쁘게 돌아가고 누구나 인생의 물레방아 속에 스스로 갇혀 살아가고 있다. 사고의 확장은 사랑의 확장이었다. 부모의 깊은 사랑과 친구들과의 교감은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 것이었다. 그리고 나름 나의 철학적 깊이를 갖게 하는 열쇄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오랜 시절 나의 인생의 한 순간들을 함께하여 준 모든 친구를 사랑하려 한다. 오랫동안 연락이 못 닿아 가끔은 소원해진 친구들에게도 시간을 거슬러 마주하듯 반갑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친구들은 마음을 열 것이 분명하다. 가끔은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주는 것도 즐거울 수 있는 일이다. 이제 나에게 여전히 옛 추억 속에서 친구를 만나는 실속 없는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삶이 주는 행복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바하의 선율은 정제된 감정이 의식의 흐름을 탈 수 있어 좋다. 지나간 첫사랑을 회상하는 것도 그러하고 아내에 대한 사랑과 죽음을 되돌아보는 것도 그러하다. 수학적으로도 완전히 정형화된 그의 음악은 나에게 무의식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는 내 자신에게 머무는 사랑의 감정은 주변으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정치적 상황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면서도 정치의 최고의 덕목은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러한 생각은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교과서적인 홍익인간의 이념도 새롭게 각인되는 순간이 되었다.
감정의 극한 경험들은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번쩍이는 섬광으로 다가온 첫사랑의 떨림은 존재의 이유를 알게 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부모의 품속에서 깨어나는 독립된 객체로서의 고통을 알게 하는 시작이 다. 그리고 삶의 유혹은 악마의 속삭임과 같아서 결국 간절히 원하는 것이 마땅히 주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이 없다는 사실로 나를 배신했다.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경험은 사유를 거닐게 된다. 사랑은 삶의 자각을 알게 하고 답이 없는 끝없는 사유는 우주의 세계에 다다른다. 죽음에 대한 인식도 삶의 역설이다. 사랑에 대한 고통은 나의 삶 속에 처음으로 죽음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리고 처절한 몸부림으로 사랑을 완성하려던 나의 삶을 다시 철저하게 부서 놓았다. 내가 무엇을 가지려 할수록 그것은 나의 욕망에 불과한 것이라는 자각만을 요구하였다. 혼자 짝사랑하며 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모른 채 꽤나 오랜 시간 꿈을 키웠던 어린 나의 고백은 다시 그 만큼의 시간 동안 기다림을 알게 하였다. 결국 나는 13년의 사랑을 그녀 앞에 내려놓고 담담함으로 그녀를 온전히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감사했다는 그녀의 진실한 말 한마디에 만족할 수 있었다.
삶의 무의미를 깨닫고 삶의 가치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생각된 순간 나는 죽음을 선택했다. 죽음에서 다시 나를 깨운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삶을 내려놓았던 그 순간은 무심의 세계를 알게 하는 것이었다. 담담함으로 그녀를 온전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무심한 마음을 먼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의 나의 삶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했다.
아내의 죽음은 인간의 행복이 신기루와 같은 것이란 걸 알게 한다. 아내가 내게 다가와 나의 여자가 되고 나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만한 행복감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렸다는 나의 오만은 아내를 가르치려 했고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했다. 아내의 사랑과 아내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하였다는 자책은 두고두고 깊은 후회로 죽는 날까지 남을 것이다. 어린 아들만을 남기고 6년이란 시간 동안 나의 곁에 잠시 머물다간 아내의 그림자는 그리움도 처절할 수 있음을 알게 하였다. 이제는 25년이 넘는 시간 속에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아내와 나를 잇는 영혼의 통로가 되었다. 가끔, 정말 가끔씩 꿈속을 찾아오는 아내의 모습조차 반가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발을 딛는 순간마다 나는 삶에 대한 끝임 없는 요구를 받았다. 꽤난 오랜 시간의 치열한 나의 내적 투쟁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과 ‘자업자득’이라는 단순한 시각으로 결론되어진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속 깊은 내면을 공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인내를 배우는 것도 인생이 되어야 한다. 사랑을 배우는 것은 이해와 배려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의 정신도 배워야 한다.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사랑의 실천이다.
삶을 위한 투쟁적 인생은 결국 굴복을 강요받는다. 나를 속인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시 삶의 무의미를 알게 하며 삶의 이유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인간은 죽어가는 것이다. 그렇듯 이러한 순환에 대한 인식은 죽음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자각을 만든다. 무와 유, 무한과 유한, 끝과 시작, 직선과 곡선, 욕망과 사랑, 동시성과 무존재성, 우주와 인간 등과 같은 개념이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의 인생을 새롭게 이어가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는 육체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조차 감정의 승화를 거치지 않으면 인간의 말초적인 욕망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울부짖지만 그것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7세에 요절한 윤동주는 단지 24세에 불과한 나이에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