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위해 잠시 멈추어 서다
개인의 일탈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한 번의 일탈이 없었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가끔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며 나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을 헤아려 열 손가락이 넘어선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갖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도 정도의 문제이지만 다른 사람의 일탈에 대한 지나친 비난 또한 죄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는 것은 삶의 기본이다. 그러나 IT의 발달로 비대면사회의 확대는 무책임한 마녀사냥을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다. 인간에게 익명이란 것은 참 많은 것에 현혹되어 마치 악마가 속삭이듯 많은 유혹에 뿌리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어진다.
서구 역사에 참으로 허무맹랑하고 기괴한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마녀사냥이다.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황제의 기독교 공인이후 이천년 가까이 서구사회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여 왔다. 초대 카톨릭 교황인 베드로와 바울의 활발한 선교활동으로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마녀사냥은 이러한 초기 기독교의 태생과 함께하고 있는데 중세 중기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북아메리카,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수백 년 동안 행해졌다. 그리고 마녀재판에 의해 희생된 여성은 50만 명이 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잔 다르크 역시 백년전쟁 때 종교 재판에서 마녀로 판결 받고 화형을 당한 대표적인 경우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기독교 복음서에서 예수의 제자이고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후 정작 그녀에 대한 내용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과 예수를 매장할 때, 그리고 무덤이 비어있음을 발견하는 순간에 모두 등장하며, 특히 결정적으로 예수가 부활한 후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인 것이 바로 그녀 앞이었다. 부활한 예수가 열두 제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이처럼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이를 널리 알린 사람으로 기독교라는 종교의 설립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예수에게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4대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부활 시점을 제외하고는 그녀에 대한 내용이 별로 없다.
훗날 마리아 복음서가 발견되고 현대에는 예수의 제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으나 4대 복음서에 그녀의 행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예수의 12제자들은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또한 초기 카톨릭의 교리를 확립한 아우구스티누스나 591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부터 마리아에 대하여 죄지은 여인 곧 매춘부나 간통한 여자였다고 규정했다. 특히 바울은 교회에서 여자들은 입을 다물라며 당시 활동하던 여자 사도들을 폄훼하였던 것이다.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하게 벌어진 시대는 근세로서, 대표적으로 30년전쟁 기간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난 독일에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마녀사냥이 벌어진 주요 원인이 종교개혁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를 쇄신하기 위하여 불순분자들을 걸러낼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처음에 후보에 오른 것은 오랜 종교적 전통상 악마였지만 사람 눈에 보이는 존재도 아니었으니 이에 대한 처벌을 할 수가 없었다. 즉 군중들에게 구체적이고 물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찾아낸 것이 더 실체가 명확한 마법사와 마녀였고 그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아들이 여자를 혐오했다.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적 역설이다.
인간은 참 단순하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의 12제자뿐만 아니라 사도바울, 아우구스티누스, 교황 그레고리오 1세, 루터, 칼뱅 등은 기독교 역사의 최고의 영적 지도자들이다. 이들조차 창세기에서 말하는 아담을 꼬여 선악과를 따먹게 한 하와의 죄는 세상 모든 여성이 원죄로 이어졌다는 의식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은 인류에 참혹한 살육의 원인을 제공했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수도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최고의 적이 여자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이 중심이 되어 자의적으로 선택한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쓴 성경을 활자 그대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도 영성을 수련한 성직자도 인간의 형상을 입고 있다는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었다.
예수는 또 다른 마리아가 간통으로 사람들에 둘러싸여 돌팔매로 죽임을 당하게 된 순간에 마음으로 간음하지 않은 자가 있으면 돌로 치라 하였다. 그리고 죄를 회개하는 창녀를 용서하고 기도하여 돌려보냈다. 인간의 죄를 인간이 단죄할 자격은 없다. 그리고 스스로 참회하는 인간은 마땅히 용서받아야 한다는 진리를 예수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고 참회하는 인간은 용서를 받는다는 진리가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그러한 이유로 기독교적 시각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스스로 재물이 된 것이다.
현대사회에 있어 재판이란 행위는 이러한 연장선에 있어야 한다. 판사 개인의 판단에 의지하여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선 즉, 공동체가 합의한 방식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합의된 방식은 지속적으로 보편주의 차원의 가치발전이 계속된다는 믿음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인터넷의 발달은 마녀사냥의 또 다른 양상으로 진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집단이 개인을 상대로 근거 없이 무차별 공격을 하며 '인격 살인' 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프레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요소가 되고, 이로 인해 인터넷의 발달이 마녀사냥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은 과거 마녀사냥이 재현이 되고 있는 것이고 현대 인류는 과거의 악랄하고 저속한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얼마전 이다영・이재영 쌍둥이 배구선수의 과거 중학생 시절에 저지른 학내폭력이 문제가 되어 시끄러웠다. 같은 팀 소속인 세계적인 배구스타 김연경에 대하여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내용을 이다영 선수가 SNS에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이를 지켜본 두 자매의 중학교 시절 동료선수였던 피해자가 세상에 이를 알리면서 그 파장이 다른 스포츠 종목까지 확산되었다. 그리고 다른 피해자가 합세하며 또 다른 잘못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청소년기의 일탈은 어떤 형태로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한 잘못은 1차적으로 학교와 지도자에게 책임이 있다. 어린 시절이라고 하더라도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대중이 비난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야 한다. 아마도 그렇다면 두 자매는 생각지도 못한 어린 시절의 행동과 이연경 선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녀들은 25세의 젊은 여성이었다. 배구선수로서의 역할만을 배우고 그 외에는 다른 무엇을 생각해보지 못한 이 사회가 낳은 젊은이다. 대중은 그녀들의 인생이 파멸에 이르러야 한다고 아우성치며 자신이 겪는 사회의 부조리를 그들에게서 보상받으려 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녀 사냥이다. 또한 그녀들이 후회하고 사죄를 하는 것도 그녀들의 몫이다. 대중은 그것조차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학교체육과 한국스포츠를 양육강식의 세계에 젊은 학생들을 내몰았고 그대로 방치했던 이 사회의 공동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형법에도 공소시효가 있다. 공서시효는 로마법에서 유래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증거가 사라지고 당사자들의 기억도 부정확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고 다른 이유로 국가가 부당하게 형벌권을 행사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공소시효의 존치여부에 대한 생각이 현대사회를 달구고 있지만 이러한 제도가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 온 것은 인간이 인간을 단죄함에 있어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로서 작용하여 왔다. 또한 과거의 어떠한 죄든 속죄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피해자의 상처의 크기에 따라 반드시 가해의 정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해를 의식하든 못하든 인간의 일탈 행위는 그 자체로 바르지 못한 것이고 그렇다고 이를 개인적으로 단죄할 자격을 갖는 것도 아니다. 결국 개인의 일탈은 가해자의 의도와 실행의 도덕적 기준, 사회적 영향력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또한 여성 혐오는 오늘날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1960년대 발전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별에 기초한 권력 체계인 가부장제를 타파한다는 사회정치적 차원의 여성운동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며 급속하게 우리사회에 스며들었다. 그 결과 2010년대 대부분의 인터넷에서 여성혐오가 증가하고 안티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략적 여성혐오'가 온라인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김치녀, 된장녀 등의 표현은 청소년들에게까지 여성혐오가 일종의 또래문화로 정착되기도 하였다. 페미스트 운동이 남성혐오로 발전하고 새로운 여성혐오 현상이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고 자신을 유혹하는 존재로만 인식되었던 대부분의 가부장적 인류역사나 최근 일어나는 남성을 투쟁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남성혐오는 모두 스스로의 인생을 부정하는 자신의 감정에서부터 출발된 것이다.
인간 모두는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고 아들의 어미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보편적인 인식에서 바라본다면 모든 문제는 답에 이를 수 있다. 인간의 죄를 인간이 단죄할 자격은 없다. 그리고 스스로 참회하는 인간은 마땅히 용서받아야 한다는 진리를 예수는 가르쳤다. 모든 여자는 어머니를 닮고 있다. 이것이 여자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그것은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품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확장된 사랑으로 선한 영향을 사회에 펼쳐야 하는 여자의 책임이 되어야 한다. 이는 추상적인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에 퍼져있는 극단적인 이기심과 이해관계로 인해 생겨나는 첨예한 편 가르기는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은 어머니의 사랑을 본보기 삼아 남녀 구분 없이 사회의 선한 영향력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