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전기장판 약탈자에 가까운)
우리 집에는 사실 냉장고 요정 외에도 뭐가 많다.
이번에 소개할 요정은…… 전기장판의 요정이다.
나는 전기장판에 허리를 따끈하게 지지는 걸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거의 매일 전기장판을 쓴다. 근데 요새는 쓰려고 보면 누가 맨날 벌러덩 누워있다. 전기장판 가득 말이다.
분명 내 허리 찜질 용도로 산 건데 사용빈도를 보면 거의 바니 거다. 처음에는 반반씩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는데, 가면 갈수록 나를 몰아내고 대자로 누워서 혼자 다 쓴다. 이젠 나랑 조금도 나눠 쓰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전기장판 귀퉁이도 양보하지 않는 바니를 보고 있자면 조금 어이가 없지만 이해가 되긴 한다. 나도 전기장판이 주는 따끈따끈한 행복을 잘 아니까. 특히 추운 겨울에 하는 찜질은 무릉도원 그 자체니까. 나한테는 허리만 겨우 지져주는 미니 전기장판이지만 바니 입장에서 보면 자기 몸만 한 장판이니까. 확실히 바니한테 양보하는 게 효율이 더 좋긴 하다. 전신 온열찜질이 가능하다니, 부럽다.
전기장판 위에 드러누운 바니를 보고 있자면 꼭 잘 구워지다 못해 녹아버린 떡 같다. 한껏 따끈해져서 뱃살이며 볼살이 흘러내린다. 이때 잘 데워진 뱃살을 만져보면 평소보다 더 흐물흐물하고 몰랑하다.
장판이 안 켜져 있을 때는 따뜻해질 때까지 하염없이 앉아있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비가 오길 바라며 기우제를 지내는 인간 같기도 하다. 어디서 듣기로, 기우제는 실패 확률이 적다고 하는데 그 이유인즉슨 비가 올 때까지 지내기 때문이라고. 바니도 그렇다. 전기장판이 차가우면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누군가 장판을 틀어줄 때까지 그저… 하염없이……. 그러면 찬 매트 위에 동상처럼 앉아있는 바니가 안쓰러워서라도 장판을 틀어주게 된다.
가끔은 바니가 전기장판 위에 앉아서 나나 엄마에게 뭐라 뭐라 말하기도 하는데, 해석해 보자면 정황 상 '이것 좀 따뜻하게 해 봐라'인 것 같다. 실제로 애웅애웅 난리법석일 때 전기장판 전원을 켜주니까 만족한 것처럼 조용해졌었다. 내년쯤 되면 바니가 알아서 전원도 켜고 타이머도 맞출 것 같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바니야, 전기장판 온도는 꼭 2~3 사이로 해야 한다. 그 이상으로 올리면 저온화상 입을지도 모르니까. 타이머는 두 시간으로 해야 해. 다 쓰면 전원 끄는 거 까먹지 말고…….
가족들은 전기장판을 하나 더 사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하나 더 사면 그것도 바니 소유가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두 개를 켜놓으면 그 중간에 냅다 눕겠지. 침대에 누울 때 꼭 중앙에 벌러덩 누워서 내가 누울 곳이 없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꼭 두 배 넓어진 전기장판을 즐길 것이다. 완전 얌체 같다. 그리고 귀엽다.
날이 따뜻해지면 전기장판은 거들떠도 안 보겠지. 이 풍경도 한 철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겨울이 지나가는 게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