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a Feb 26. 2023

9. 물과 시간, 그리고 고양이


 



 시간은 흘러가는 물 같다. 손으로 쥐려 해도 좀처럼 잡을 수 없고, 흘러가버리면 그대로 끝이다. 흐르는 물과 흐르는 시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들. 그렇게 흘러버린 것들에 대해 써보려 한다.


  바니를 처음 데려온 것은 5개월 때이다. 양손으로 조심스레 안아든 바니는 정말 깃털처럼 가벼웠다. 사실 그때 내가 긴장해서 바니의 무게가 안 느껴진 건지 아니면 정말 너무 가벼웠어서 안 느껴진 거였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가볍고 연약했다. 태어난지 몇 달 안 된 생명은 이토록 가볍구나, 새삼 깨닫게 된 날이었다. 

  어느 날 바니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종합검사와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서였다. 진료를 다 받고 병원을 나가기 전, 수의사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지금 바니의 사진을 많이 찍어두라고. 왜요? 하고 물으니 선생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들은 어른들 모르게 쑥쑥 크니까요.

  그 이후, 나는 바니의 사진을 자주 찍었다. 근데 지금 와서 그때의 앨범을 보면 그렇게 많지도 않다. 그래서 아쉽다. 그때 더 많이 찍어둘걸. 매일매일 오백 장씩 찍어둘걸. 정말 어린 아이는 쑥쑥 크는구나. 아무도 모르게 성큼 커버리는구나.

  올해로 여섯 살이 된 바니. 나는 바닥에 몸을 쭉 피고 누운 바니를 보며 생각한다. 그때는 그렇게 작았는데, 너무 작아서 안으면 으스러질까 무서웠는데. 대체 언제 이렇게 콩나물처럼 커버렸니. 스프링처럼 늘어났니. 그러다가 신기해 한다. 몸은 길어졌는데 얼굴은 어릴 때 그대로구나, 하고. 여전히 사랑스럽고 조금은 심술맞다.


(지금. 스크래처보다 몸이 길어졌다. 롱캣이다.)


(찌끄만 애기 때. 몸이 스크래처의 3분의 1만하다.)


  바니는 분명 처음 데려왔을 때 오개월이었는데 지금은 다섯 살이다. 손바닥만하던 고양이는 지금 내 품에 가득 들어온다. 노트북 타자판의 4분의 1만하던 고양이가 지금은 노트북 화면과 키패드를 가득 채운다. 신기하다. 어릴 때는 귀여웠는데 다 큰 지금은 왕왕 귀엽다. 왕크면 정말 왕귀엽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멈추는 버튼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누르고 싶을 정도로. 나는 요새 바니의 시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바니의 시계는 내 시계보다 몇 배쯤 빠르게 흐른다. 나는 그게 못내 야속하다.

흐르는 물은 왜 움켜쥘 수 없는 걸까.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벌써 겁이 난다. 바니 시계의 건전지가 먼저 닳는 순간이 무섭다. 바니의 시간이 멈춰도 내 시계는 계속 움직이겠지, 당연한 거겠지만 싫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도 싫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되겠지. 그렇다면 받아들이는 방법도 배워야겠지. 언젠가는 배울 수 있겠지.


  시간은 흘러가는 물 같고 계절은 돌아온다. 곧 바니가 좋아하는 봄이다. 바니는 따뜻한 햇살을 쬐며 일광욕 하는 걸 좋아한다. 올해 봄에는 창문을 더 활짝 열고 햇살을 맘껏 쬐게 해줘야겠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앞으로도 쭉, 돌아오는 모든 계절에 항상.

이전 09화 8. 학교 다니는 고양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