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바니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한 시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니만 바라봤다. 잠이 안 오는 늦여름의 새벽이었다.
바니는 책상 의자에 누워 둥그렇게 몸을 말고 있었고 나는 바닥에 앉아서 바니를 봤다. 바니의 자는 모습을 오래 바라본 적은 있어도 눈 뜬 바니를 한참동안 본 건 거의 처음이었다.
바니는 내가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아무래도 내 관심을 독차지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바니는 내가 자기를 빤히 보면 고롱고롱 소리를 낸다. 30초만 봐도 그런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물끄러미 보기만 하는데도.
바니는 내가 바라보는 한 시간 가량 동안 골골송을 불렀다. 언제까지 그럴까 궁금했는데 계속 계속 부르더라. 자리에 누워서 꾸벅 졸다가도 나를 발견하면 다시 고롱고롱 했다. 바니는 고작 내가 자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구나. 이상한 기분이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니. 이거 완전 사랑의 정석 아닌가. 드라마나 소설에서나 나오는 사랑의 정의 같은 거.
사랑에는 종류가 많다. 바니가 주는 사랑은 아마 내가 처음 접해보는 종류의 사랑일 것이다. 내가 훗날 자식을 키우게 된다면 이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될까. 잘 모르겠다. 모르겠는 만큼 나는 이 감정이 매번 낯설다. 처음이니까. 아마 먼 훗날에 이런 감정을 다시 느낀다면 분명 바니가 제일 먼저 떠오르겠지. 처음이니까.
어느 날 바니가 나한테 뽀뽀를 해줬다. 정확히는 자기 코를 내 입에 꾸욱 댄 거지만. 하여튼 내가 하는 뽀뽀의 방식과 거의 흡사하다. 그래서 놀랐다. 내 행동을 배우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너무너무 귀엽다.
나는 바니한테 뽀뽀를 자주 한다. 특히 바니 코에 쪼오옵을 자주 한다. 바니는 내가 뽀뽀하는 걸 싫어하는데, 이번에는 자기가 먼저 해줬다. 몽글몽글한 기분. 싫어하면서 왜 해주는 거야. 너무 귀엽고 기특했다.
나는 잠이 안 올 때마다 바니 배에다 얼굴을 묻는다.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바니 뱃살. 그렇게 있다가 보면 스르르 잠이 온다. 이거에 대해서는 다음에 글을 쓰려고 한다. 일단 적어두는 이유는, 잊지 않기 위해서. 사랑하는 순간들은 항상 기억하고 싶다.
요새는 장난감을 열심히 쇼핑하고 있다. 바니가 기존 장난감들을 질려해서. 매번 바꾸는데도 그런다. 요새는 더 빨리 질린다. 그래서 진짜 벌레 같은 실감 나는 장난감을 찾아서 사모으고 있다. 그건 그나마 좋아한다. 까다로운 고양이.
바니는 작고 하찮은 벌레 장난감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만만해서인 것 같다. 너무 크면 무서운 모양이다. 참 웃기는 고양이다. 나는 바니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우다닥 뛰어오는 모습이 더 무서운데.
최근에 백신을 맞았다. 맞고 와서 누워 있었는데 바니가 백신 맞은 쪽 팔에 자기 손을 살포시 얹어놨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기기도 하고 귀여워서 그냥 뒀는데 나중에는 그냥 내 팔을 베고 자더라. 그 뒤로도 바니는 내 백신 맞은 팔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안고 자기도 하고 그랬다. 얘가 뭘 아나? 싶어서 재밌었다. 귀여운 고양이. 덕분에 팔은 좀 저렸지만 행복했다.
내가 그린 바니. 가끔 그리는데 맘에 안 들어서 컴퓨터 폴더에만 차곡차곡 쌓아뒀다.
그림 그리는 건 싫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걸 그리는 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