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혹은 행운
어릴 때의 나는 미신을 잘 믿었다. 별자리 운세부터 시작해서 타로점, 심지어는 무료어플에서 하루에 한 번 알려주는 행운의 색상과 행운의 물건 등… 그날의 행운의 색상이 흰색이면 흰색의 무언가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별자리 운세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결정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어린 날의 나는 어떻게 그런 미신을 철썩같이 믿었을까, 싶어서. 그 모든 것에는 과학적인 근거 같은, 믿을만한 증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물론 지금은 그런 경향이 많이 수그러들어서 대부분의 미신은 미신으로 여기고, 미신보다는 나를 조금 더 믿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타로점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아마도…
라고 말했지만… 아직 맹신(?) 하는 미신이 딱 하나 남아있는데, 그건 바로 '고양이의 수염'이다. 이걸 발견하거나 지니고 있으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들었다. 출처도 모르는 이 말을 들은 이후부터 나는 바니의 수염을 모으고 다녔다. 바니는 몇 달에 한 번꼴로 수염을 집안 어딘가에 떨구는데, 이때 우연히 수염을 발견하면 아주 기쁘다. 산삼을 찾은 심마니처럼 말이다. 이렇게 찾은 수염은 작은 상자에 보관하거나 휴대폰 케이스나 지갑에 넣어두는데, 나는 보통 휴대폰 케이스 안에 넣어둔다. 부적처럼 말이다.
그래서 정말 고양이 수염이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는가. 잘 모르겠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렇게 갖고 있던 수염을 잃어버리는 날은 재수가 없긴 했다. 어느 날은 초록불인데도 불구하고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와서 치일 뻔했고, 어느 날은 평소처럼 핸드폰을 떨어트렸는데 액정이 박살났다. 물론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럴 때마다 어쩐지 자꾸 잃어버린 바니 수염이 생각나더라.
사실 행운이 오는 건 모르겠는데, 가끔 핸드폰 케이스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바니의 수염을 보면 행복해지기는 한다. 행복도 행운 중 한 가지인가 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린 날의 나는 그냥 무언가를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믿어도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그렇지만 살짝 정도는 기댈 수 있게끔 해주는 무언가를 말이다. 그때의 나에게는 별자리 운세 같은 게 삶을 조금 더 즐겁게 해줬겠지. 지금 나에게 바니의 수염이 주는 즐거움 만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