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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Jan 30. 2021

0. 구덩이와 고양이


구덩이와 고양이











  예로부터 구원은 혼자의 힘으로 하는 거라고 했다. 남에게 구원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했다가는 영영 남의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나는 어디서 들은 건지도 모르는 그 말을 내 인생의 모토로 삼고 살았다.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이 사람이 사라지는 생각을 하며 기대는 행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거다. 구원은 스스로 하는 거다, 하면서 말이다.

 아마 바니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바니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겨울이다. 엄마의 지인분이 임시구조를 해서 데리고 있던 고양이었다. 어찌어찌 시기가 맞았고 엄마와 나는 그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느냐면, 구덩이 속에 있었다. 아주 깜깜하고 깊은, 스스로 나가지 않으면 영영 나갈 수 없는 구덩이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아직도 바니와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난다. 우리 집이 낯선 고양이는 집에 오자마자 침대 구석에 숨었고, 나는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너 편할 때 나와라, 하며 침대에 누웠다. 나는 그때 불면증으로 밤을 샜던 터라 얼마 후에 잠이 들었다. 몇 시간 잤을까, 나는 배에 느껴지는 통증에 잠에서 깼다. 눈을 떠보니 자그마한 고양이가 내 배 위에서 점프를 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내가 깬 걸 보자마자 부리나케 줄행랑을 쳤다. 참... 웃겼다.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그러다 새벽에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고양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무릎에 얼굴을 부볐다. 그리고는 언제 자기가 구석에 숨었냐는 듯 내 무릎에 올라와 고릉고릉 소리를 냈다. 그때 나는 고양이라는 존재가 너무 어색해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차렷 자세로 굳어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 체온만은 기억난다. 몸에 닿는 고양이의 체온은 아주 따뜻했고, 슬쩍 슬쩍 닿는 고양이의 털은 아주 보드라웠다. 너무 따뜻하고 보드라워서, 기분이 묘했다. 왜 이 생명체는 나한테 와서 이런 감정을 안겨주는 걸까. 새벽 내내 고양이는 조용히 내 곁에 있었다.

그동안의 새벽은 아주 조용해서, 생명체라고는 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어둠 속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외롭고 추웠다. 하지만 그날의 새벽은 조금 달랐다. 여전히 조용하고 어두웠지만, 평소보다 따뜻하고 다정했다. 신기했다. 이렇게 조그만 생명체 하나가 있다고 새벽의 풍경이, 공기가 달라지다니. 꼭 어둠 속에 전등을 켜놓은 것 같았다. 따뜻하고 은은한 연노란색 빛.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결론부터 적자면, 고양이는 나를 구원해주지 않았다. 대신 내가 있는 구덩이 밖에서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뿐이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나는 아직도 구덩이 안에 있다. 하지만 자주 구덩이 밖으로 나간다. 왜냐하면 사다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다리 밖에는 나를 기다리는 고양이가 있다. 내가 사는 세계는 변하지 않았지만 내 안의 세계는 변했다.


그래,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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