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공간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나를 중심으로 발치에 둥근 원을 그린다. 원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고작해야 내 몸의 크기 정도. 이건 온전한 내 공간이다. 사람을 만날 때는 이 정도의 거리를 둔다. 상대방의 원도 침범하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의 공간이니까.
하지만 인생에 예외는 항상 있는 법이더라. 근데 그게 고양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 공간을 중요시해왔다. 내 자리, 내 방 등.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나의 공간이란 얼마나 아늑하고 안정감을 주는가. 나는 내 방에서도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내 방은 이미 아무도 오지 않는데도, 더 안온하고 안전한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이불속에서 살았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누워있었다. 그렇게 하면 주위는 어둡고 안락하고 공기는 따뜻해서 좋았다. 나 혼자밖에 없어서 좋았다. 다른 건 없어도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바니가 온 지 몇 달이 지났을까. 어느 날의 바니는 내가 허구한 날 쏙 들어가 있는 이불속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바니는 이불 끄트머리를 머리통으로 비비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불을 슬쩍 들어줬다. 바니는 그제야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내 옆구리에 딱 붙어서 만족스럽다는 듯이 골골 노래를 불렀다. 뭔지는 몰라도 바니도 이불속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쭉 내가 이불속에 있으면 자기도 비집고 들어와서 한자리를 꼭 차지했다. 내 옆구리 쪽의 공간은 바니의 지정석이 되었고 그 덕분에 내 옆구리는 항상 따뜻했다. 사계절 내내 따스한 봄이었다.
나는 그동안 사람들을 너무 밀어내고 산 건 아닐까. 사실은 같이 있으면 이렇게 좋은 건데, 나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느라 내 공간에 그냥 고립된 건 아닐까. 바니를 옆구리에 끼고 누워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입주묘를 들이게 된 소감은 이렇다. 혼자 있을 때보다 만족스럽다. 텅 빈 느낌보다는 무언가 가득 들어찬 느낌. 이젠 바니가 이불속에 안 들어오면 섭섭할 지경이다. 실제로도 섭섭해서 바니가 이불속에 안 들어오면 '바니! 왜 안 와!' 하고 징징거리게 된다. 참 웃기다. 사람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도 되나. 하여튼, 나만의 공간은 이제 우리의 공간이 되었다. 나는 이제 혼자와 함께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고 그 깨달음이 마음에 든다. 입주묘에게 받는 월세는 이걸로 퉁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