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고 싫음의 뚜렷함
누군가 내게 당장 호불호를 묻는다면 나는 아마 잠시 주춤할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분주하게 생각하겠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싫어하는 건?
그렇다. 나는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잘 몰랐다. 사실 나에게는 뭐든 두리뭉실하게 넘기는 버릇이 있다. A와 B 중에 골라야 한다면, 둘 다를 고르든가 '나는 아무거나 좋아'라고 하는 버릇. 이 버릇은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지독하게 안 고쳐지는 것들 중 하나이다.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살면 안 되는데. 이렇게 살면 온탕 냉탕도 아닌 미적지근한 물 같은 사람이 되어버릴 텐데.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애매한 사람이었나, 떠올려보면 아주 옛날부터 그랬다. 기억도 안 나는 아기 때 시절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를 거쳐 지금까지. 매 해를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올해는 정확한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는데 세 살 버릇은 남 못 준다고. 아직까지도 제대로 고치질 못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이걸 자각을 못하고 살았는데, 바니를 만나고 나서부터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바니는 호불호가 매우 뚜렷했기 때문이다. 나와는 달랐다. 한 180도쯤 말이다.
바니는 좋고 싫고가 아주 명확하다. 바니가 좋아하는 건 머리와 얼굴을 만져주는 것과 츄르, 드링크 간식, 부드러운 무스 형식의 캔과 여러 가지 장난감이다. 바니가 싫어하는 건 머리 아래로 만지는 것(그중에서도 배, 엉덩이, 발), 스틱 형식의 딱딱한 간식이다. 바니는 머리를 제외한 몸을 만지는 걸 아주 싫어하는데, 얼마나 싫어하냐면 머리를 만지면 기분이 좋다고 고롱고롱 대다가도 슬쩍 배를 만지면 바로 내 손을 깍 깨문다. 그리고 불쾌하다는 듯 내가 만졌던 제 배 부분을 아주 싹싹 그루밍한다. 그 다음에는 내 손에 머리를 다시 들이민다. '다른 곳은 만지지 말고 머리만 만져!' 하듯이. 또, 츄르 같은 짜서 먹는 간식을 주면 정말 숨도 안 쉬고 싹싹 핥아먹는데 딱딱한 저키 같은 것을 주면 냄새만 맡고 팽하니 자리를 뜬다.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또, 바니는 장난감을 아주아주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내가 자는 사이 장난감들을 하나 둘 물어 내 침대에 가져다 놓는다든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나를 장난감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내가 장난감을 들 때까지 애웅 애웅 운다. 장난감을 어찌나 좋아하고 노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가끔 보면 뽀로x같다. 노는 게 제일 좋고 내일은 뭐하고 놀까 고민하는 고양이. 바니가 하도 울어대서 놀아주려고 장난감을 들면, 바니는 좋아서 고릉고릉 한다. 방금까지 사이렌처럼 앵앵앵 애웅 애웅 애웅하고 울다가, 내가 장난감을 들자마자 고르릉 고르릉 고르릉 한다. 내가 장난감을 내려놓으면 골골 송도 멈춘다. 다시 들면 고릉고릉 한다. 아주 웃기고 귀엽다.
바니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바니는 이렇게 뚜렷한 감정표현을 어디서 배운 걸까. 이건 본능인 걸까. 그렇다면 내게도 이런 본능이 있었을까. 지금 사라지고 만 것뿐, 예전에는, 언젠가는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다가 마지막에는 문득 바니에게 고마워진다. 좋고 싫고를 나한테 확실하게 표현해줘서 고맙다고. 네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어 기쁘다고. 덕분에 네가 좋아하는 건 더 챙겨줄 수 있고 싫어하는 건 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나도 바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아하는 건 확실하게 좋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싫어하는 것에는 확실하게 싫다고 고개를 저을 수 있는 사람. yes와 no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사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