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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Feb 26. 2024

15. 가위눌림을 몰아내는 고양이

feat. 왕빵댕이


  나는 가끔 가위에 눌린다. 중고등학교 무렵에는 자는 게 무서울 정도로 매일 가위에 시달렸는데, 좀 크고 나서부터는 괜찮아졌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꼭 가위에 눌린다. 무슨 연례행사도 아니고 말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가위는 꿈에서부터 시작됐다. 파리인지 거미인지의 신……이라고 말하는 시커먼 뭔가가 나와서 나를 붙잡고 마구 화내는 꿈이었다.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꿈속에서 미안, 내가 미안… 하고 빈 건 기억이 난다. 사과할수록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싹싹 비는 게 억울해져서 눈물이 난 것도 말이다. 하여튼 그렇게 사과하는 와중 가위눌림으로 전환되었고 겨우겨우 몸에 힘을 줘서 가위에서 풀려났다. 눈을 뜨니 내방이었고 옆구리에는 바니가 있었다. 따끈말랑보들한 고냥이. 웃기게도 바니를 보자마자 안심이 된 건지, 방금 가위에 눌려서 깼는데 바로 잠이 왔다. 그 와중에 또 가위에 눌릴까 무서워 한 손으로는 바니의 손을 잡았고, 반대쪽 손은 바니의 배 아래 쏙 넣었다. 바니의 부드러운 손과 따뜻하고 말랑한 뱃살은 악몽과 가위에 특효약이기에…… 나는 그렇게 꿈도 없이 푹 잤다. 비록 눈을 떴을 때는 바니의 뱃살도 손도 없이 혼자였지만 말이다.


부들부들 손
말랑말랑 배


  이걸 쓰다 보니 작년에 눌린 가위가 기억났다. 작년의 가위는 상체가 안 움직이고 가슴께가 무거워 숨이 턱 막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꿈도 없이, 눈 감아서 깜깜한 그 상태 그대로 말이다. 낑낑거리며 오 분 정도 안간힘을 쓰자 가위가 스르륵 풀렸고, 진이란 진은 다 빠져서 겨우 눈을 떴다. 그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내 앞에는 거대한… 빵댕이가 있었다. 바니의 빵댕이었다. 바니는 내 목 아래에서 묵직한 식빵을 굽고 있었다. 누름돌처럼 말이다. 작년에 눌린 가위의 원인은 바니였었다.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다. 어떻게 그리 둥그렇고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바로 코앞에 있을수가.


사실 바니랑 함께 산 이후부터 가위에 덜 눌린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바니랑 함께 살지 않았던 스무 살 시절에는 꽤 자주 가위에 눌렸었기 때문에. 그때는 자기 전에 참 많이 무서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날 지켜주는 바니와 바니의 말랑 뱃살과 보들보들 손이 있으니까 무적이다. 그래도 베개는 날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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