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갈 기르는 건 언제나 어렵다
나는 뭔가를 기르는 일에 재주가 없다. 식물을 기른 적은 꽤 있는데, 예쁘게 피워낸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면 초등학생 때 기른 나팔꽃이다. 그때 나팔꽃 줄기는 베란다 벽을 타고 쭉쭉 자랐는데, 그 줄기가 베란다 전체를 뒤덮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나팔꽃은 위로 타고 올라가게 도와주는 지지대가 없어서 더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들었을까. 내 기억 속에는 활짝 핀 나팔꽃의 모습, 그리고 그 색상이 보라와 자주색이었다는 것만이 남아있다. 그 이후 식물을 기르지 않았다.
우리 집 고양이는 대체 왜 이렇게 풀을 좋아하는가. 헤어볼(그루밍하느라 삼킨 털이 몸속에서 뭉친 것)을 뱉어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단순히 소화제용인가? 그게 아니면 인간이 샐러드를 먹는 것과 같은 이유인가?
바니는 어릴 때부터 유독 풀을 좋아했다. 어찌나 좋아했던지 아빠가 아끼는 화초들을 다 뜯어놓는 게 일상이었다. 가끔은 그루밍도 정성껏 해줬다. 그 이후부터 안 되겠어서 밀, 보리 씨앗을 사다가 애지중지 길렀고, 아주 가끔 밀과 보리농사가 풍년이었고 바니는 내 노력의 산물을 와구와구 먹으며 좋아해 줬다. 어찌나 좋아해 주든지, 풀이 좀 시들어서 버리려고 할 때마다 따라와서는 매번 비명을 질러댔다. 내 풀 내놔라아아악. 그럼 나는 미안해, 미안, 금방 길러서 다시 줄게, 하면서 싹싹 빌며 몰래 버려야 했다.
바니에게 풀을 금방 주기로 약속했는데 내 보리 씨앗은 왜 이렇게 싹이 잘 안 돋는 것인가. 왜 쑥쑥 크질 않고 비실비실 시드는가. 남들은 싹이 너무 잘 자란다고, 며칠 사이에 풀밭이 되었다는데 왜 나만 이렇게 결과가 처참한가. 바니가 매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 뭔가를 기르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사실 정말 쉽지 않은 건 따로 있다. 제일 문제는 풀에 정이 들어버린 나다.
내가 기른 풀을 바니가 뜯어먹을 때마다 기분이 미묘하다. 잘 먹는 모습에 뿌듯하고 흐뭇하다가도 문득 안타까워진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씨앗 상태부터 애지중지 키운 풀인데, 이제야 겨우 연두색 새싹에서 벗어나 풀다운 모습이 되었는데 먹히다니. 깊이 내린 뿌리까지 뽑혀버리다니……. 같은 생각.
그러니까, 나는 왜 정이 들어버린 걸까. 대체 뭘까. 애초에 바니를 주려고 기른 건데 이런 마음이 들까. 오랜 기간을 정성 들여 기른 것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닌데. 그냥 일주일 정도 매일 물을 주고 상태를 본 것뿐인데. 혹시 내가 새싹에게 매일매일 준 건 물이 아니라 마음이었던가.
새싹 보리가 잘 자라도 고민이고 안 자라도 고민이다. 다 자라 있는 풀을 사서 먹여야 하는 걸까.
난 역시 무언가를 기르는 일에 소질도, 자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