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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Apr 22. 2024

21. 혼자 눕기엔 침대가 너무 넓다

아주 아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니가 최근 아팠다.

  안 그래도 소변의 양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는데, 금요일 새벽에 바니 생식기에서 연한 피가 비쳤다. 당장 병원에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방광에 염증이 생겼단다. 부랴부랴 유리너리 사료를 구매하고 방광염약 20일 치를 받아왔다.

  나도 고등학생 때 방광염에 걸린 적이 있다. 심한 게 아니었는데도 화장실에 들락날락거리는 그 시간들이 아주 괴로웠던 게 기억난다. 인간도 그 정도인데 바니는 말도 못 하고 많이 답답하고 힘들었을 거다. 이건 다 전적으로 내가 바니에게 물을 덜 먹인 탓이었다.

이후 물 제형의 스프란 스프는 모조리 긁어모아 종류별로 물을 타주고, 물그릇을 세 개에서 여섯 개로 늘리고, 간식 그릇도 얕고 널찍한 걸로 바꿔보는 등…… 의 시도를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딱 일주일 지난 지금, 다행스럽게도 소변의 양이 꽤 늘었다. 작은 알감자에서 주먹감자 정도로 말이다. 약을 잘 먹어서인지 조금씩이라도 물을 홀짝거려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전보다는 나아졌다.


  미리미리 물을 많이 먹여줄걸. 왜 항상 일이 닥치고 나서야 후회하는 걸까. 왜 변비만 신경 쓰고 음수량은 츄르탕+동결건조 간식에 타주는 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까.

  라는 생각을 아주… 자주 했다. 생각의 끝은 ‘이런 생각은 그만하고 이제부터라도 더 잘해주자’였지만… 지나간 시간은 지나가버린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자책을 하게 되더라. 바보같이 말이다.






  며칠 전 새벽이었다. 나는 침대에, 바니는 침대 옆 스크래처에 누워있었다. 바니는 보통 나랑 함께 침대에 눕는데 그날은 아주 가끔 있는 예외의 날이었다. 하여튼 침대에 혼자 누워있으니 편했다. 다리도 아무데나 뻗을 수 있고 대자로 팔다리를 쭉 뻗고 누워도 자리가 남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침대가 너무 넓다……, 고.

싱글침대인데 넓다니. 그럴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침대 혼자 쓰는 바니

  그 이상한 기분은 한 십 분 정도 뒤에 사라졌다. 아마 바니가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라와 내 다리 사이에 누워서일 것이다. 덕분에 침대가 다시 아주아주 좁게 느껴졌다.


  그 순간을 오래 곱씹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내 방이 낯설게 느껴졌던 거나, 침대가 너무, 너무 넓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던 것. 전부.





어이가 조금 없어서 빤히 보니까 나한테 뭐라고 하는 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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