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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35. 드디어 완주했노라!

(제34일 차 / 콤포스텔라에서 마지막 밤)

by 소울메이트


35. 드디어 완주했노라!



♧ 오늘의 코스


오늘(10.28) 코스는 오 페드로우소(0 Pedrouzo)를 출발하여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20.5km를 4시간 30분 동안 3만 8 천보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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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의 마지막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향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발하지만 도착하기까지 오르막길이 나타나면서 걷기가 쉽지는 않았다. 포장도로로 상당 구간이 오르막길로 몬테 델 고소까지 이어져 힘이 들었다.


♧ 유칼립투스 숲을 지나며


아침부터 출발하는 발걸음은 마냥 가벼웠다. 도중에 비가 뿌려서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이 순례길 사물들은 모두가 느긋한 것처럼 보인다. 소, 말, 양도 그렇고 마을의 집들도 그렇다, 심지어 산천초목도 그렇게 보인다. 모두가 느긋했지만 나만 조급하기 짝이 없다.


세찬 비가 갑자기 쏟아져 급하게 비옷을 꺼내 입어야 했다. 일제히 기립한 채 비를 맞고 있는 유칼립투스 나무들의 꼭대기를 보기 전에 먹구름이 먼저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큰 키들이다. 내가 세상에서 본 나무 중에서 키가 가장 클 것으로 생각했던 메타세쿼이아 보다 더 큰 나무들이다. 하늘로 올라간 나무의 머리끝을 보려면 고개를 완전히 꺾어야 했다. 나무가 하느님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자꾸만 자란 결과가 아닐까?


유칼립투스 나무 중에서 키가 가장 큰 나무는 호주의 섬인 '태즈메이니아'라는 곳에 있는 90.7m이고, 역사상 가장 큰 키는 101m였다고 한다. 유칼립투스 나무 잎으로는 오일을 만들고, 목재는 건축재로, 수액은 해충제로 쓰인다는 것이다.


몬테로고소에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비바람이 하도 거세게 불어서 날아갈 것 같다. 차라리 날려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에다 내려주면 고맙겠다. 비바람 경황 중에도 기쁨의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산티아고 동상 앞에서 경의를 표시한다.


비바람을 헤치며 모자를 쓰고 전진하는 산티아고 동상이 너무 불쌍해서 동정심이 발동할 정도다. 지칠 대로 지친 순례자, 목적지가 저기라는 환희가 몸에 밴 조각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로마 교황의 방문을 기념하여 만든 조각상도 대충 감상한다.


저 멀리 안갯속으로 보이는 세 개의 첨탑이 오늘의 목적지이자 지난 33일간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란다. 첨탑들이 고개를 쑥 내밀고 나에게 손을 높이 흔들며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모양이다. 누군가 이 언덕에 제주의 돌하르방이 서게 될 거라고 말한다. 제주 올레길 어딘가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상징인 가리비 조개표지가 설치된다고 한다. 제주 올레길에서 가리비 표지를 만나면 지난 한 달간의 고통과 추억을 주저리주저리 떠들며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 것 같다.


본격적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초입에 진입하면서 도로가 넓어지고 숲은 사라진 대신에 높은 건물로 바뀌었다. 자동차로 옆 인도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마지막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길이 상당히 복잡해서 안내 표지판이나 노란색 화살표를 찾기보다는 조가비를 배낭에 매달고 앞서 가는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따라 걷는다. 순례에 행진에 지친 자가 무임승차 하는 모습이다.


비가 많이 내려 옷을 적시고 있다. 비옷으로 가리지 못한 아랫도리는 반 이상이나 젖었지만 33일의 대장정이 끝나는 영광의 날이므로 대수냐 싶다. 참고 견디기로 한다. 시내 중심가에 들어갈 때까지 장대비가 계속 내렸다.


과거에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유럽의 각자의 집 앞에서부터 걸어서 순례길을 여행해야만 했다. 수백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갈리시아의 가리비 껍데기를 몸에 달고 성인들의 은혜를 입으려 했다.


오늘날에는 9개의 순례길이 콤포스텔라 산티아고의 무덤에서 만난다. 가리비 조개껍질의 내부 홈이 결국 끝부분에서 합쳐지게 되는 것처럼 모두 다른 길들이 한 점에서 만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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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매년 거의 백만여 명에 달하는 21세기 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많은 숙소와 식당 등 각종 편의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순례자의 숫자는 점점 더 증가해서 2019년에는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자의 숫자만 어림잡아 한해 30만 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이 길이 2년간 폐쇄되었다가, 2022년 이후 다시 개방되자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순례자들이 몰려와서 그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찾아왔던 보물을 찾아 백파이프의 연주를 들으며 '오부라도이로 광장'에 도착했다.


앞에는 산티아고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자신 만만하게 우뚝 서있다. 대성당의 장대함과 아름다움이 나를 반긴다. 속속 도착하는 순례자들이 저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눈물이 울컥 쏟아진다. 정호승의 시 ‘연어’를 읊조린다.


연어 (정호승)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 웃음을 터트리며 밤을 밝히리라


연어는 바다를 떠났고 나도 인천 바다를 떠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왔다. 드골공항에서 야간 고속버스를 타고 생장피드 포르에 도착해서 순례를 시작한 지 35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부르고스와 레온에서 이틀씩 머무르고 33일 동안 줄곧 걸어왔다. 한 달 이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길동무들을 거기서 한꺼번에 만났다.


검게 탄 낯익은 얼굴들 중에 보고 싶은 얼굴 몇몇은 뵈지 않는다. 처음부터 같이 걸었던 사람 중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다. 통계상으로 생장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완주한 순례자는 15% 정도라고 하니 85%는 다시 만나지 못하고 이별한 셈이다.

그들을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려나?


비는 멎었지만 비옷을 걸친 채로 광장 땅바닥에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피곤함을 잊고 성취감으로 가슴에 흥분이 벅차오른다. 멀고 먼 길을 속절없이 걸어온 나에게 무한히 감사하며 눈물을 흘린다. 지금까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느님께 마냥 감사한다.


여기저기서 단체 순례자들과 학생들이 자기 들의 응원가를 부르며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다. 서로 간에 완주를 기념하면서 수고했다고 덕담을 품앗이했다.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만난 산티아고


나는 두 달 전까지는 ‘산티아고’는 칠레의 수도로만 알고 있었다. 미국에 샌디에이고를 여행한 적이 있지만 프랑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는 젬병이었다. 순례길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휴대폰에게 물어서 배웠다. 순례길의 수호자인 산티아고는 나라별로 다르게 부른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야고보, 야곱, 제임스 등으로 호칭하고 있어서 낯설다. 산티아고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며 12 사도 요한의 형이다. 그는 제베대오(세배대)와 살로메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이다. 동생 요한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갈릴레아 호숫가에서 어부로 일하다가 같은 직업의 다른 형제인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와 함께 예수의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되었다고 배웠다.


19세기에 들어 “펠리요”라는 양치기가 빛나는 별을 따라서 들판으로 향했다. ‘콤포스텔라’란 “들판 위에 별“이라는 뜻이란다. 한 주교가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과 성체가 산티아고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예루살렘과 로마의 신도들에게 알렸다.


알폰소 2세가 성 산티아고를 이 지역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고, 이 자리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신자들은 성 산티아고의 고행을 추모하며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을 유럽 전역에 만들기 시작했다.


그 순례길을 완주하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지은 죄를 사면해 주었기 때문에 순례자들이 많아졌다. 이들이 걷다가 도둑이나 강도를 만나 목숨을 잃거나 재산을 빼앗기도 했기 때문에 대피소(알베르게) 같은 숙소를 짓고, 템플기사단을 조직하여 순례자들을 보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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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여러 번 찾은 내 친구 H교수는 자기가 왔을 때마다 대성당을 보수 공사를 했는데 이번만은 공사하는 현장이 없다고 소감을 나타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오래된 성당답지 않게 산뜻한 느낌으로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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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를 노래한 시

스페인의 시인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는 시 〈Santiago (Balada ingenua)>, 즉 〈산티아고(순진한 발라드)〉가 있다. 이 시는 사도 야고보(Santiago, St. James)가 하늘의 길을 따라 지나가는 “천상의 행진”을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시를 번역본을 옮겨 본다.


-- 오늘 밤 산티아고가 지나갔다, 하늘에 빛의 길을 남기며. 어린아이들아, 초원에서 노래하라, 웃음으로 바람을 뚫으며.

/ 거룩한 하늘을 달리던 은빛과 불빛의 말들, 그 이마엔 달이 떨리고, 말굽엔 별들이 흔들렸다.

/ 온 들판이 향기로 변하고, 온 들판이 꿈으로 가득 찼다. 어린아이들아, 초원에서 노래하라, 웃음으로 바람을 뚫으며!

/ 깊은 밤의 고요 속에서 세상의 슬픔이 잠들고 있었지만, 산티아고가 지나가자 별들이 깨어났다.

/ 이제 피곤한 마을은 잠들고, 맑은 하늘의 빛 아래 고요하다. 나의 슬픈 마음만은 그 영원한 걸음을 따라가고 싶다.


♧ 장엄한 향로미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가운데에 있는 영광의 문(Portico de la Gloria)은 두 개로 나뉘어 있다. 오른쪽 문에는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왼쪽 문에는 구약성경의 인물들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다. 두 개의 문 중앙기둥에는 산티아고가 경비를 서고 있다. 그 위에는 그리스도가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과 천사들이, 상단부 팀파눔 아치에는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24명의 원로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조각들이 나를 환영하고 있다.


영광의 문을 들어서면 산티아고가 앉은 의자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순례자들이 손으로 만지거나 입을 맞추며 지나간다. 그런 까닭에서 대리석이 닳고 달아서 약간 패어 있음이 그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대성당의 주제단의 가장 상층부에는 말을 탄 산티아고의 조각상이 보이고, 제대 중앙에는 순례자 복장의 산티아고의 반신상이 보인다. 많은 순례자처럼 제대 뒤로 가서 산티아고의 반신상을 껴안으며 알현한다. 그 아래 산티아고 유해를 모신 성해함이 있다. 비좁은 지하 경당으로 내려가 산티아고를 경배했다.


낮 12시에 대성당에서 "보타 푸마이로"(Bota Fumeiro)라고 하는 특별한 향로미사를 보려고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향로미사 쇼는 숯과 향료가 들어 있는 40Kg의 향로를 밧줄에 매달아 8명의 사제들이 밧줄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를 반복하자 좌우로 원추운동을 했다.


성당 안에 있는 거대한 오르간이 성가를 연주하며 향로미사의 분위기를 한층 더 경건하게 만들었다. 65m의 아치를 그리며 최대 82도까지 벌어지는 모습으로 원추 운동을 한다. 거대한 향로가 지상으로부터 21미터 높이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연기가 품어 나오면서 숯불이 향을 태우면서 그 향내음이 성당 내부에 퍼진다.


향로미사는 순례자들의 땀 냄새와 몸이나 배낭에 붙어 온 해충을 없애고 순례자들의 건강과 평안을 비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향로미사가 대성당에서 엄숙하게 진행되는 동안 간간히 수녀님의 아름답고 청아한 성가가 우리를 경건한 마음을 이끌어낸다.


미사 중에 한국의 순례자들을 환영하는 기도와 한국인 순례자에 대한 기도가 있는 듯 수명의 한국인 순례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향로미사는 순례의 완성을 축하하는 이벤트가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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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증명서를 받다.


순례자 완주 증명서를 발급한다는 사무실은 대성당 앞에 있는 오브라도이로 광장을 지나 헬레미스 궁전(현재는 호텔로 사용)을 지나 백여 미터 정도 내려가면 왼쪽 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오쯤에는 도착한 순례자들이 많아 오래 기다린다는 정보에 따라 향로미사를 마치고 완주 증명서를 받으러 갔더니 기다리는 순례자가 두세 명뿐이라 너무 한산해서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다. 점심을 뒤로 미루고 사무실을 찾아온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대기실에 있는 컴퓨터에 몇 가지 묻는 대로 입력하고 번호표를 뽑고 3, 4분쯤 기다렸더니 내 번호가 전광판에 떴다. 33일 동안 수많은 세요(스탬프)가 찍힌 여권(크레덴시알)을 직원한테 건네자 10여 초간의 감식(?)과 형식적인 질문을 거친 후 ‘순례자 완주 증명서’에 스탬프를 찍는다.


해독할 수 없는 언어(스페인어가 아니라 라틴어란다)로 표현되어 있었다. 중간 부분에 내 이름과 하단에 출발지인 '생장 피드 포르트'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2022. 9.24.부터 10.27. 까지 779km를 완주했다는 증명서가 틀림이 없다. 발급 수수료 3€와 보관하는 통 값 2€를 합해 총 5€를 지불하자 완주 증명서가 내 손에 들어왔다. 증명서를 보관하는 통은 초등학교 때 졸업장 케이스를 닮았다. 그 완주증명서는 지난 33일간의 개근상장 같은 느낌을 주지만 너무 감격스러워 또 한 번 눈물을 글썽거려야 했다.


완주증을 받았다고 나에게 특권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은 죄를 공식적으로 사면시켜 주는 것도 아니다.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주는 것도 아니며 포근한 잠자리를 마련해 준 것도 아니다. 다만 산티아고가 나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주는 격려증명서였지만 나 자신에게는 거대한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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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을 끝내며


33일 동안 걸어서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어렵게 도착했다.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비춰보면 햇볕에 그을린 몰골이 정말 가관이다. 하지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걷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다. 아내가 간다니까 갑자기 따라나섰다가 파란만장한 우환(?)과 환희를 경험했다.


독일 시인인 에리히 캐스트너는 ‘인간의 숙명’을 "요람과 무덤/ 사이에는/ 고통이 있었다."라고 노래했다. 이걸 패러디한다면 "출발지인 생장과 도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사이에는 고통이 나를 맞이했다."라고 되뇌어 본다.


33일 중에 10여 일을 비바람까지 맞으며 걸어야 했다. 날마다 다른 마을에 도착해서 다른 숙소를 서른세 번이나 체크인해야 했다. 숙소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초기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휴대폰에 있는 플래시를 켜고 여명과 함께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170개의 마을과 300여 개의 성당과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성당과 마을은 얼마나 될까?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건성건성 주마간산했을 뿐이다. 다만, 72세인 나와 68세인 아내와 함께 800km 순례길을 33일 걷는 동안 한 번도 택시나 버스도 타지 않고 걸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무한대로 느끼며 행복한 마음을 가눌 수 없다. 전체 순례자의 15%만 완주한다는데 우리 부부가 함께 그 범주에 낀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적이고 마냥 행복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정표가 안내하는 레일 위를 달리는 기관차처럼 탈선하지 않고 걸어왔다. 순간의 부주의로 레일을 벗어나 헤맸던 기억은 세 번뿐이다. 다리에 생긴 물집 때문에 완행열차처럼 느림보 걸음을 며칠 걷기도 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부르고스와 레온에서는 이틀 연박을 하면서 고달차 하는 열차에게 심신의 휴식을 주었으며 모처럼 느긋함도 즐겨 보았다.


전 코스를 걷는 동안 며칠은 힘든 등산코스도 있었지만 대부분 트래킹 코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피로를 감추지 못했다. 넓고 넓은 아파트에서 살던 내가 순례길에 와서는 적게는 대여섯 명, 많게는 30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야전병원용 침대 같은 잠자리를 동침하였다. 룸메이트 순례자들의 신음소리와 내 코 골이 합창대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었다. 알베르게 침대를 구하지 못한 때에는 호스텔이나 펜션, 아파트, 호텔에서 잠을 자야 했다. 때문에 비용은 남들보다 훨씬 많이 들었지만 덕분에 쾌적한 숙소가 늙은 나의 심신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고행을 피하지 않는 순례라야 진정한 순례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고통을 무릅쓰고 완주를 했다는데 큰 위안을 삼고 싶다. 33일 동안 순례자들과 숙소나 레스토랑이나 순례길에서 지구촌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유엔총회(?)를 개최하면서 그들이 전하는 지식과 정보로 모르는 것을 알게 되어 마냥 행복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함은 여느 자유여행과 다름없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순례자 공동체 구성원들과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는 인사말로 마음을 열었고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걸었다.


바쁜 사람에게도 느릿느릿 서비스하는 스페인 레스토랑과 카페와 바(Bar)가 성질 급한 우리를 느긋하게 만드는 훈련소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한다는 속담의 의미를 이제야 터득했다. 하루 세끼 식사를 챙겨 먹는 것은 즐거운 고역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지만 배고플 때마다 입맛을 달래고 달래어 이제는 아무 음식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성을 만들었다. 그동안 스페인 사람같이 된 된 나의 식성은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부여받은 특권이 되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느긋하게 걸으라고 충고했지만 예약 제도를 외면하는 공립 알베르게의 빈약한 시스템은 초기에 우리 부부를 스트레스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다. 하지만 과감한 결단으로 숙박료는 개의하지 않기로 하면서 숙소를 차지하기 위한 선착순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그것은 탁월한 판단이었다. 시니어들에게는 내 방식을 추천하고 싶다. 너무 무리하게 순례길을 걷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출발부터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지 않고 택배를 시켰으니 중세시대의 귀족이나 부자들이 당나귀나 말을 타고 순례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호사를 누린 점은 내내 옥의 티로 남아 있으나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맞아 시니어라는 핸디캡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800km 걷는 동안 노천에서 큰일을 보지 않았다는 자랑 아닌 자랑(?), 부모님께 감사한다. 끊임없는 목마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 포도밭에서 포도 한 알도 서리를 하지 않았다는 정직성, 순례자들에게 제공하는 노천의 수도꼭지의 물을 한 번도 마시지 않은 결벽성(?), 일생동안 마신 포도주의 양 보다 훨씬 많은 양의 포도주를 순례길에서 매일 마신 진기록이 자랑스럽다. 발바닥에 물집 외에는 고장 난 데가 없는 건강한 나의 다리 등은 하느님의 가호와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감사 싶다.


Lunatic souls의 "white forest"를 읊어 본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이제 나는 어떤 일이라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사는 날까지 “하고 싶은 일”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개인의 의지와 체력과의 싸움을 한 번쯤 걸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월이 많이 남아 자신의 꿈과 희망을 겹겹이 설계해야 하는 젊은이들,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사느라고 자신을 혹사시켜 온 중년들, 인생의 2막을 살아가는 은퇴자들, 자식과 남편에게 헌신하면서 자기를 찾을 기회가 없었던 어머니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위기를 맞아 에너지가 고갈된 시니어들에게 용기를 내어 순례길 완주에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순례길을 완주하고 귀국하여 산티아고 프랑스길의 주인공인 "야고보"라는 세례명으로 천주교인 되었다.


--끝--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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