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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Oct 24. 2024

36. 산티아고 인문기행을 마치며

(제34일 차 / 콤포스텔라에서)

  

   33일 동안 걸어서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어렵게 도착했다. 거울 앞에서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비춰보면 참으로 처참한 몰골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걷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다. 아내가 간다니까 갑자기 따라나섰다가 파란만장한 우환(?)과 환희를 경험했다. 


33일 중에 10여 일을 비바람까지 맞으며 걸어야 했다. 날마다 다른 마을에 도착해서 33개의 숙소를 체크인해야 했다. 숙소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 감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휴대폰에 있는 플래시를 켜고 여명을 가르며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170개의 마을과 300여 개의 성당과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성당과 마을은 얼마나 될까?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건성건성 주마간산했기 때문이다.    


72세의 나와 68세인 아내와 함께 800km 순례길을 한 번의 점프도 없었고, 한 번의 택시나 버스도 타지 않고 걸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행복한 마음이다. 전체 순례자의 15%만 완주한다는데 우리 부부가 함께 그 범주에 들었다니 너무 감격적이고 그 자부심 때문에 마냥 행복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정표가 안내하는 레일 위를 달리는 기관차처럼 걸어왔다. 순간의 부주의로 길을 잃고 헤맸던 기억은 세 번뿐이다. 다리에 생긴 물집 때문에 느림보 걸음을 며칠간 걷기도 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부르고스와 레온에서는 이틀 연박을 하면서 심신에 휴식을 주었으며 느긋함도 즐겨 봤다. 


전 코스를 걷는 동안 며칠은 힘든 등산코스도 있었지만 대부분 트래킹 코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이 피곤함을 부인하기 어렵다. 63평 아파트에서 20년을 살아온 내가 종종 야전병원의 침대에서 자야 했다. 적게는 대여섯 명, 많게는 30명의 순례자들과 잠을 함께 자면서 그들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음악으로 듣고 잤다. 


좁은 침실에서 혹시라도 기침하는 순례자가 있으면 코로나19를 경계하느라고 신경은 썼다. 많은 날들은 알베르게를 차지 못해서 호스텔이나 펜션, 아파트, 호텔에서 잠을 자야 했다. 때문에 비용은 남들보다 꽤 많이 들었지만 느긋함과 쾌적함을 누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고행을 피하지 않는 순례라야 진정한 순례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고통을 무릅쓰고 완주를 했다는데 큰 위안을 삼고 싶다. 어디선가 베드버그 해프닝은 빈대를 모르는 과민과 무식의 결과였고 실례를 저질렀다. 


35일 동안 순례자들과 숙소나 레스토랑이나 순례길에서 지구촌 여러 나라 사람들과 유엔총회를 개최하면서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남모르는 사실을 알려주어 마냥 행복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함은 여느 때와 같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순례자 공동체 구성원들과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는 인사말로 마음을 열었고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고통은 나누었다. 


바쁜 사람에게 느릿느릿 서비스하는 스페인 레스토랑과 카페와 바(Bar)가 성질 급한 우리를 느긋하게 만드는 훈련소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으로, 서울에 가면 서울법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속담의 진리를 알아냈다. 35일간 하루 세끼 식사를 챙겨 먹는 것은 즐거운 고역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지만 배고프면 아무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는 세계화된 나의 식성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주특기였다. 많은 순례자들이 느긋하게 걸으라고 충고했지만 예약 제도를 외면하는 공립 알베르게의 빈약한 시스템은 초기 우리 부부를 스트레스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다. 


하지만 과감한 결단으로 숙박료는 개의하지 않고 선착순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결정했던 일은 탁월한 판단이었다. 시니어들에게는 내 방식을 권장하고 싶다.   


출발부터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지 않고 택배를 시켰으니 중세시대의 귀족이나 부자들이 당나귀나 말을 타고 순례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호사를 누린 점은 내내 옥의 티로 남아 있으나 시니어이기 때문에 막다른 선택이었노라고 변명하고 싶다. 


800km 걷는 동안 노천에서 큰일을 보지 않았다는 기막힌 기록(?), 이건 타고나야 한다. 부모님께 감사한다. 끊임없는 목마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 포도밭에서 포도 한 알도 서리를 하지 않았다는 정직성, 순례자들에게 제공하는 노천의 수도꼭지의 물을 한 번도 마시지 않은 결벽성(?), 일생동안 마신 포도주의 양 보다 


훨씬 많은 양의 포도주를 순례길에서 매일 마셔 버린 나만의 기네스 북에 올려도 손색이 없는 진기록(?), 발바닥에 물집 외에는 고장 난 데가 없는 건강한 체력, 창궐하는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은 기적(?) 등은 하느님의 가호와 어머니의 사랑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친지들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번쯤 걸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이제 나는 어떤 일이라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사는 날까지 “하고 싶은 일”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개인의 의지와 체력과의 싸움을 한 번쯤 걸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순례길을 걷는 체험을 해보라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월이 많이 남아 자신의 꿈과 희망을 겹겹이 설계해야 하는 젊은이들,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사느라고 자신을 혹사시켜 온 중년, 인생의 후반기를 맞아 담대한 용기가 필요한 은퇴자들, 자식과 남편에게 헌신하면서 자기를 찾을 기회가 없었던 어머니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위기를 맞아 에너지가 


고갈된 시니어들에게  용기를 내어 순례길 완주에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스페인어를 못한다는 부담감은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아내조차도 스페인어를 1도 모르기 때문에 소통을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주변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서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끝까지 불통일 때에는 통역앱을 이용하여 해결했다. 이제 배낭여행은 통역앱이라는 비서를 휴대폰 속에 대동한다면 언어 소통 문제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때문에 앞으로 배낭여행이나 자유여행자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어느 계절이 좋냐? 고 묻는다면 봄이나 가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만물이 소생하고 꽃피는 봄철의 순례를 권하고 싶은 마음은 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여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견디기 유난히 싫어하는 태양 때문에, 겨울에는 춥고 삭막하기 때문에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름과 겨울은 대학생들의 방학기간이기 때문에 너무 붐빌 것이며 동시에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순례길 완주를 계획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 길 나헤라(Najera)에서 길목 주택의 시멘트 담벼락에 붙여 놓은 시(詩) 한편이 나의 심금을 울렸다. 1987년 9월 산토도밍고 데 라 깔사다 문학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에우헤니오 가리바이 바뉴스라는 신부가 쓴 시인데 여기서 다시 한번 감상하고 컴퓨터의 전원을 내리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자여! 


먼지와 진흙과 태양과 비  

여기는 산티아고 가는 길 

수많은 순례자들이 걸었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순례자여, 누가 너를 불렀는가?  

어떤 숨겨진 힘이 널 데려왔는가?  

들판의 별들도, 웅장한 대성당도 아니다.  

나바라의 용사도, 리오하의 와인도, 

갈리시아의 해산물도, 가스티야의 벌판도 아니다     


순례자여, 누가 널 불렀는가?  

어떤 신비한 힘이 널 데려왔는가?  

길 위의 사람들도, 시골마을의 풍습도, 

역사와 문화도, 깔사다의 수탉도, 

가우디의 궁전도, 폰페라다의 성채도 아니다.


지나며 본 모든 것들을 볼 수 있어 기뻤다. 

더 깊은 곳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를 밀어주는 힘, 나를 이끌어 주는 힘, 설명할 수도 없지만  

저 위의 그분만은 알고 계시리라!


끝으로 평소에 준비를 많이 한 아내 덕분에 숙소와 식사할 카페나 바를 찾는 일과 길 찾기에 큰 도움을 받았다. 아내의 체력과 끈기에 놀래며 감탄하였다. 결혼 후 40여 년 간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기에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아내와 결혼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순례길에서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행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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