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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
28. 우리도 점프할까?

(제26일 차 / 비야프랑카 델비에르소~오 세브레이로)

by 소울메이트


28. 우리도 점프할까?



♧ 오늘의 코스


오늘(10.21)의 코스는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를 출발하여 ▷ 오 세브레이로(OCebretro)까지 27.8km를 7시간 30분 동안 5만 1천 보를 걸었다. 고속도로변을 따라가는 순례길이라서 소음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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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도 버스 타고 점프할래?


최종 목적지까지 200km의 남은 지점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라고 가이드 북에 소개되어 있어서 07:00에 출발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비옷을 입고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어둠을 헤치며 출발했다. 숙소에서 밖으로 나오자 어둠 속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순례자 두 사람이 우리를 부른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남녀 한 쌍,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거리도 멀어서 오 세브로레이로까지 택시를 타고 점프하려는데 같이 갈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순례자들은 열악한 시설에 대한 거부감이나 체력의 한계로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부상이나 질병으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고를 따르는 경우가 있다. 예기치 못한 사태의 발생으로 일정 지연에 따른 시간 부족이나, 날씨가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울 경우에 점프를 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순례자들이 일부 구간을 점프하려면 시내버스나 택시나 열차 중에 하나를 골라 타고 다음 목적지로 간다.


일행 중에 버스를 타고 순례구간의 일부를 점프했던 경험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각 구간별로 목적지에 도착해서 당일 점프하는 방법, 그 이튿날 점프하는 방법, 아니면 이틀 이상 연박한 후에 누적된 구간을 한꺼번에 널뛰기로 점프하는 방법을 놓고 사정을 감안하여 최선의 대안을 찾는다.



♣ 순례길에서 점프 잘하기


33일간 프랑스 순례길을 완주하면서 느낀 바에 의하면 순례자들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돌쇠형이다. 순례기간이 32일 이하 기간 동안 800km를 완주하는 사람들이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들이라야 가능한 유형이다.


두 번째는 33일 이상 기간에 걸쳐 800km를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완주형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일정이나 사정 때문에 특정코스를 버스나 택시를 타고 건너뛰며 최종 목적지까지 걷는 널뛰기 유형이 있다.


상당수 순례자들은 100km 단축형을 택한다. 순례자들의 최종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까지 110km 전방인 ‘사리아(Sarria)’에서 출발하는 유형이다. 신체적 조건이나 시간적 제약 때문에 풀코스를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선택하는 유형이다.


이러한 단축형은 각 나라 여행사들이 파는 여행상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정 코스 선택형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두 코스씩 주파하고 차후에 시간이 날 때 또다시 순례를 하겠다는 유형이다. 이는 EU회원 국가의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이 선호하는 유형인 것 같다.


프랑스 순례길의 최초 출발지인 생장 피드 포르를 출발한 순례자 중에서 15%만 최종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완주할 뿐이라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85%의 순례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도중하차를 하거나 점프를 하게 된다.


순례자들은 열악한 시설에 부적응하거나 체력의 한계로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부상이나 질병으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고를 따르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사태의 발생으로 일정 지연에 따른 시간 부족이나, 날씨가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울 경우에 점프를 선택하는 것이다.


순례자들이 일부 구간을 점프하려면 시내버스나 택시나 열차 중에 하나를 골라 타고 가는 것이다. 일행 중에 버스를 타고 순례구간의 일부를 점프했던 경험자들의 말을 종합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각 구간별로 목적지에 도착해서 당일 점프하거나, 이튿날 점프하는 방법, 아니면 이틀 이상 연박한 후에 누적된 구간을 한꺼번에 널뛰기 점프를 하는 방법을 놓고 최선의 선택할 수도 있다.


시내버스를 타고 점프하면 하루 종일 걸어갈 거리를 저렴한 요금, 평균 2€ 정도로 20분 이내에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시내버스 운행정보는 구글 검색으로도 알 수 있지만 스페인어를 비롯한 외국어 문해 능력이 허약한 순례자들은, 숙소나 바나 카페에서 현지인으로부터 필요한 시내버스 운행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코치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루에 시내버스 운행 횟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장거리를 점프할 경우에는 비교적 큰 도시에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점프해도 좋다. 나는 프랑스 순례길 완주형을 선택하였는데 하루 평균 약 25km씩, 33일간 약 800km를 걸었다.


순례길 여행기나 순례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어떤 순례자들은 31일 만에, 또는 35일 이상으로 일정으로 쉬엄쉬엄 트래킹 하기도 한다. 프랑스 커플은 우리가 동의하면 택시를 타고 요금은 공동 부담하여 점프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몸에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고 점프하자는 의사를 아내에게 내 비추자 며칠 남지 않았는데 유종의 미를 거두자면서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내 말을 잘 들어야 자다가 떡을 얻어먹는다는 속담을 결혼 이후 쭉 믿어야 하는 형편이다.


♧ 성체가 살과 피로 바뀌다.


N-VI 도로를 따라 인도를 걸었지만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들이 자주 지나갔기 때문에 신경을 쓰며 걸어야 했다. 오전 내내 차도를 따라가는 순례길은 오후에 들어서 숲 속으로 숨어든다. 길목에는 목장이 드문드문 나타났는데 비를 맞으며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소는 비가 와도 먹는다. 고로 소는 존재한다?"


오후에 에레리아스부터 오늘의 목적지 갈리시아 지방 (Galicia)이 시작되는 오 세브레이로까지는 1,300미터의 산을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 마을에는 9세기에 지은 아주 작은 왕립 산타마리아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성당에는 성체의 기적의 증거가 보존되어 있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중세시대인 1300년경에 오 세브레이로 인근 바르샤마이오르(Barxamaior) 마을에는 후안 산틴 (Juan Santín) 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강한 신앙심을 지닌 사람으로, 날씨가 궂고 힘든 길이더라도 미사를 빠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치고 길이 매우 험난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길을 나서서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로 향 했다.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조롱조로 말했다. 대략 “이 폭풍 속에 누가 와서 ‘빵 조금이랑 포도주 조금’을 보러 오는가”라는 식의 말을 했다. 그 순간 성체(빵)는 눈으로 보일 수 있는 살(肉)로 변화하고, 포도주는 피(혈)로 변화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 기적은 제의 직후 “코포랄(corporales)”이라는 제사용 천(성의 아래 덮개) 위에 피가 스며드는 형태로 남았다. 이 사건을 통해 신부의 의심이 회복되었다고 전해지며, 기적의 주인공인 농부와 신부의 유해가 교회 내에 안치되었다는 전승이 있다.


또한 일부 전승에서는 이 성체와 관련한 성물(chalice, paten 등)이 보관되었고, 이 성물이 “갈리시아의 성배 (Galician Holy Grail)” 전승과도 연결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성당 내부 주제단 오른쪽 앱스에 꽃으로 장식된 유리장 안에는 12세기 로마네스크 풍의 성작과 성반이 은제 유해함과 함께 보관돼 있다.


이 기적이 1486년 사실로 확인되면서 오 세부레이로는 순례지로 각광을 받아 거룩함의 상징이 되었다. 이 기적은 유럽 곳곳에 순례자들을 통해서 퍼져나갔다. 이에 어느 왕이 성체 기적의 증거들을 모셔가고자 이곳에 특사를 보냈다.


특사가 성물을 말에 싣고 그 성당을 떠나 20km쯤 왔을 때 말들이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특사는 겁에 질려 말을 풀어주었는데 그 말은 바로 오 세브레이로 산타마리아 성당으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왕은 이 성물들을 산타마리아 성당에 그대로 보관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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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오 세이브로의 산타 마리아 라 레알 교회(Iglesia de Santa María la Real)에는 이 성체의 기적과 관련된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순례자들에게 신앙의 깊은 의미와 기적의 증거를 상기시켜 주며, 많은 사람들이 기도와 경배를 드리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 스페인과 한국의 문화충돌


한국인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35일~45일 가까이 걸으면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낯 설은 생활패턴을 경험하게 된다. 순례자들은 새벽부터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와서 컴컴한 길을 플래시를 켜고 걸어야 한다. 아침 있는 삶은 기대하기 어렵고 새벽에 걸어 나온 마을은 어둠 속이라 볼 수 없다.


그보다 움직일 수 없는 문화는 ‘시에스타’라는 문화이다. 일반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은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 많은 상점과 사무실이 잠시 문을 닫고, 휴식을 취하거나 낮잠을 자기도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다.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저녁 식사로 오후 9시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알베르게 근처에서 '순례자 메뉴'로 해결해야 한다. 저녁을 늦게 먹는 관행에 적응을 못하는 동양사람들이 많다.


식사를 위해서 바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들러서 음식을 주문하면 종업원들의 서비스는 만만디 현상은 중국이나 다름이 없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순례자들은 주문한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경우도 왕왕 볼 수 있다.


스페인 식당에서는 인건비 때문에 홀에 한 명, 주방에 한 명 총 두 명이 북 치고 장구 치며 음식을 제공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빠른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페인 요식업체에 기대하는 이른바 고객감동서비스는 언감생심이다.


스페인 순례길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유스호스텔 수준의 숙소 시설이다. 조용하고 푹신한 침대, 깨끗한 샤워장, 안락한 화장실은 꿈도 못 꾼다. 통신수단인 휴대폰이 WIFI(와이파이)가 용량부족으로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조명은 흐릿하며 방에서 땀 냄새, 딱딱하고 좁고 위협한 침대, 더러운 샤워장과 화장실, 파리나 모기들이 극성스럽게 날아다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순례길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매일 숙소를 예약제로 하지 않고 현장에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하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알베르게의 값은 싸지만 불안하고 불편하며 많은 시간낭비를 요구받는다. 선착순으로 오는 대로 침대를 배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알베르게의 체크인 시간은 오후 2시부터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찍 와도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수요가 공급보다 많을 경우에는 기다리다가 다른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 숙소 시스템이 불편하더라도 남의 나라이니까 감수해야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신체 접촉(포옹, 가벼운 손길 등)을 통해 친밀감을 표현하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낯설고 불편하기도 하고 멋쩍다.


이럴 때 걸맞은 속담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다. 우리네 생활 습관이나 수준에 상당하게 엇박자가 나기 때문에 적응하기에 힘이 든다. 그들에게 바꾸라고 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페인 문화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천주교와 공산 국가는 상극인가? 이웃인가?


(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질문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가(예컨대, 폴란드 등 동유럽국가, 니카라과)가 되었는가?


차동엽 신부는 공산주의는 천주교 신자가 택한 것이 아니라 천주교에서 이탈한 무신론자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경험상 공산국가에서의 종교는 강압의 대상이므로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협력관계나 우호적 관계가 아니라고 본다(질문 19에 대한 답변)


김안제 교수는 국가의 통치체제는 종교에 의해 선택되지 않으므로 국내외의 정치적 경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본다. 종교를 부정하고 신앙인을 억압하는 공산주의를 천주교에서 국가정체로 받아들일 리는 없다. 그러나 종교의 힘은 정치권력을 이기지 못한다고 보았다(김안제: 755)


이어령 교수는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정반대인 듯 보여도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고 주장했다(이어령: 53-56).


첫째, 둘 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예수님이 창녀나 병자 같은 약자를 보듬었듯, 공산주의도 소외된 인민, 즉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외치고 있다. 기독교는 이들을 구제의 대상으로, 공산주의는 계급 혁명의 투쟁 세력으로 본다는 차이가 있지만, 약자에게 집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째, 소련 공산주의가 러시아 전통 정교회 사상을 많이 차용했다는 거다. 특히 니콜라이 표도로프의 '과학을 통한 부활' 사상이 러시아의 로켓 기술과 우주 개발 정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스푸트니크 발사 같은 러시아 우주 기술 발전 뒤에는 이런 부활론이 숨어 있었다.


셋째, 둘 다 '역사의 끝(종말론)'을 공유해. 대부분의 역사관은 순환적이지만,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는 시작과 끝이 있는 선형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대심판의 날', 마르크스는 '혁명 완성의 날'을 역사의 끝으로 보며, 현재는 그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천주교와 공산주의가 상극이라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두 이념 간의 근본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의 차이에 서 기인된다고 생각한다. 천주교도가 많은 국가들이 공산국가가 되는 현상은 천주교의 실패가 아니라 이념이 종교를 지배함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천주교는 동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오랜 역사와 문화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정치 체제가 변화하더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동유럽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을 받으며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천주교의 가치나 전통이 무시되거나 억압받은 결과일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 천주교는 저항의 상징으로 국민의 정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폴란드의 경우를 예로 보면, 천주교는 반공산주의 운동을 지원하며 국민의 단결을 이끌었다. 이는 공산당 정권의 압박 속에서도 교회가 사회적 연대감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셋째, 공산주의 정권은 종교적 가치와 종종 충돌하고 있다. 그 나라 국민들은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공산주의 체제의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통해 개선된 생활수준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일부 국가에서는 공산주의 체제 내에서 천주교가 나라의 변화를 견인하기도 했다.


넷째, 많은 국가에서 천주교는 완전한 공산주의 또는 자본주의가 아닌 제3의 이념을 형성하기도 했다. 즉, 천주교의 교리는 공산주의 체제 내에서도 신앙의 실천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천주교는 유신론이고, 공산주의는 유물론으로 근본적으로 기초가 다르다. 다만, 천주교의 조직구조가 공산주의 조직구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동유럽 일부 국가에 천주교인들이 많아 공산주의가 되었다기보다는 지리적, 사회경제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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