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안하기 규칙

개인의 문화적인 성장감과 경쟁력

by 광현



출퇴근할 때 팀장을 찾아가 인사하지 않는다.




이 규칙을 정한 건 2017년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소속된 조직에서는 조직문화 개선 논의가 한창이었는데요. 보수적인 문화 속에서 리더 눈치를 보느라 불필요하게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문화를 없애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덕분에 직원들은 출퇴근 눈치보기에서 해방됐습니다. 입사 3년 차였던 저 역시 수혜자였죠. 다른 본부 동료들에게 은근히 자랑도 할 만큼 좋았습니다.


그런데 2년 뒤, 위기가 찾아옵니다. 규모가 비슷한 다른 회사와의 합병이 있었거든요. 본부 구성원은 두 배로 늘고 중복되는 팀들이 합쳐졌습니다. 한 팀 안에는 늘 인사를 받던 팀장과 인사하지 않던 팀원, 혹은 그 반대의 관계가 생기게 됐죠. 직원들 사이에서는 인사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생각이 뭐냐면요,


'절대 안 되지! 어떻게 만든 문화인데'


그 후로 더 악착같이(?) 인사를 안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사회적인 분위기도 유연한 기업문화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팀장님들 속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처럼 인사 없이 출퇴근하는 직원들에게 특별히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렇게 '인사 안 하기' 규칙은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기업들은 문화적으로 여러 가지 굵직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복장 자율화, 주 52시간 근무, 유연 근무제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데요.


저는 변화에 적극적인 편이었습니다. ‘회사가 괜찮다면 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었죠. 본부에서 가장 처음 반바지를 입었고, 바쁘지 않은 날엔 9시에 출근하거나 4시에 퇴근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물론 '인사 안 하기 규칙'은 여전히 지키면서요. 눈치가 안보였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제도 안에서의 자율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다니고 계신 직장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계신가요? 저와 비슷하거나 더 적극적인 분들도 계실 테지요. 아니면 주변 분위기를 보면서 속도를 조절하거나, 기존의 방식을 최대한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계실 수 있고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조직의 변화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때의 제 모습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 제가 했던 행동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했던 저의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최근에야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그동안의 통제에 대한 반발심과
누리지 못했던 자유에 대한 보상심리


제 마음속에는 이 두 가지가 너무 컸던 것 같아요. 회사가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였지만, 저는 그것들을 마치 누려야 하고, 빼앗길 수 없는 혜택이나 복지처럼 여겼던 거죠.




기업문화는 갈수록 자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때 통제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회사의 구성원들은 규칙과 제도의 변화를 통해 주어지는 자율을 그저 ‘반바지 입어도 돼’, ‘일찍 퇴근해도 돼’와 같은 '권리' 정도로 해석하기 쉬운 것 같아요.


물론 그게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회사가 통제의 완화를 통해서 기대하는 게 단순히 개인의 권리 신장은 아니겠지요. 아마도 구성원들이 조직의 맥락을 스스로 해석하고, 상황에 맞는 룰을 자율적으로 세워 행동하고, 필요하면 언제든 대화와 합의를 통해 그것들을 바꾸어 갈 수 있는 그런 성숙한 문화일 것입니다.


균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건 맞지만, 내 행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오로지 내가 누려야 할 편의와 권리 뿐인 건 아닌지, 조직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저는 많이 서툴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고요.



조직의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에 딱히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분들도 계실 듯 한데요. 저는 구성원으로서 조직의 문화적인 전환을 소화하고 이끌어가는 능력이, 업무에 대한 전문성만큼이나 구체적이고 독립적인 역량으로 강조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실리콘밸리 IT기업이나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에 항상 기업문화라는 키워드가 핵심이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실제로 기업문화를 핵심 동력으로 혁신을 만들어가는 회사들은 ‘성숙한 인재’의 중요성을 입을 모아 강조합니다. 자유와 책임에 대한 바른 이해, 생각이 다른 동료들과의 협업 능력, 일과 조직에 자율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탁월한 인재로 인정받는, 그렇게 대우해야 하는 경영환경이 된 것이죠. 그리고 이런 역량들은 조직의 변화를 위해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재능이 뛰어난 베스트플레이어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장의 조건은 호화스러운 사무실이나 멋진 체육관, 혹은 공짜 스시 같은 게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재능 있고 협동심이 강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다.

-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 책 「규칙없음」 중



우리는 회사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단순히 조직을 위한 희생이나 헌신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조직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앞으로는 조직문화라는 주제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성장감을 느끼고, 자신만의 경험과 경쟁력을 쌓아가는 개인에게 조직 안팎의 더 좋은 기회들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직장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여러분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나요? 나와 조직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점을 찾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각자에게 필요한 경험과 역량을 꾸준히 성취할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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