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시를 읽고 싶은 그대에게
십 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
목이 마른 채로 한없는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 라고 불렀다
싱고는 맛도 냄새도 없지만
물이나 그림자는 아니다
싱고가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 난 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싱고답지 않은 일
싱고는 너무 작아서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풍선껌처럼 심드렁하게 부풀다가
픽 터져서 벽을 타고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싱고는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난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싱고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막대기로 재를 파헤쳐 은박지 조각을 골라냈다
그것은 은단껌을 싸고 있던 것이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신미나, 『싱고, 라고 불렀다』,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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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살면서 겪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큰 사건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그게 어떤 종류의 것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이제 그 사건 당시에 여러분이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말해보세요.
대부분은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짧은 단어를 말하셨을 거고, 어떤 분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대답을 하신 분들께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단어들로 여러분이 당시 느꼈던 감정이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느끼시나요?
아마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실 겁니다. 왜냐하면 큰 사건을 겪으며 우리가 느낀 감정은 하나의 단어로 충분히 표현될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하고 불가해한 것일 테니까요.
문학은 언어예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갖는 한계를 당연히 포함하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문학은 '예술'이기 때문에 자신이 갖는 한계를 계속 뛰어 넘으려 노력합니다.
신미나의 「싱고」는 그런 의미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언어가 갖는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시인의 노력을 보여줍니다.
설명이 조금은 장황했지만, 이 시는 화자에 이입해서 편하게 감각하기만 해도 아주 아름다운 시입니다. 첫 연부터 천천히 보겠습니다.
십 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 목이 마른 채로 한없는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 라고 불렀다.
화자는 십 년 넘게 기르던 개를 잃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잃어버린 개를 찾아 한없이 걷고 있네요. 목이 마르고 해는 저물고 있고 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화자는 어쩔 도리 없이 그냥 걷고만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린 화자가 느끼는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슬픔? 분노? 우울? 아무래도 그 단어들로 표현하기에 정확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화자는 그 불가해한 감정을 '싱고'라 명명합니다. 싱고는 백과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의미 없는 단어입니다. 화자는 의미가 아직 부여되지 않은 '싱고'라는 단어에 자신이 유년에 느꼈던 불가해한 감정을 새겨넣습니다.
싱고는 맛도 냄새도 없지만, 물이나 그림자는 아니다. 싱고가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 난 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싱고답지 않은 일
조금 뜬금이 없고 이해도 잘 안 되시죠? 직전에는 싱고가 감정이라고 해놓고선 왜 갑자기 뿔 달린 고양이, 수염 난 뱀 같은 해괴한 이미지로 설명되고 있는 걸까요?
일단 우리는 2연에서 '싱고'라는 존재가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싱고는 1연에서는 단순한 감정의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2연에 들어와서 화자가 싱고를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싱고는 단순한 감정의 덩어리를 넘어서는 무언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맛도 냄새도 없지만 물이나 그림자는 아닌' 것.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 난 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2연에서의 싱고는 무형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아닌, 유형적인 무언가로 계속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래도 이건 싱고답지 않은 일'이라는 마지막 행을 통해 화자가 싱고를 감정의 한 형태가 아닌 독립적인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자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싱고'라는 존재에 대한 화자의 설명은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대체 맛도 냄새도 없고, 물이나 그림자는 아닌데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 난 뱀 같은 존재가 뭐라는 겁니까? 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2연의 설명을 통해 '싱고'라는 존재를 구체화하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구체화에 실패하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시인은 이 실패를 의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싱고'라는 존재가 무형적인 감정의 형태가 아닌 유형적이고 독립적인 하나의 존재라는 점까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설명 덕분에 오히려 '싱고'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는 2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싱고'를 감정을 넘어서는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게 됨과 동시에 그에 대한 궁금증까지 품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싱고는 너무 작아서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풍선껌처럼 심드렁하게 부풀다가 픽 터져서 벽을 타고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싱고는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난다.
개인적으로 이 시에서 처음 감탄했던 지점입니다. '싱고'라는 존재가 1연에서 기르던 개를 잃은 화자가 느꼈던 아픈 감정으로부터 탄생한 존재라는 점을 미뤄볼 때, 이보다 더 적확하게 '싱고'라는 감정의 덩어리를 묘사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이입해서 이해해봅시다. 1연에서의 화자는 개를 잃고 거리를 헤매면서 느꼈던 감정을 '싱고'라 명명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화자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이 하나씩은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다거나, 좋아하던 뭔가를 잃었다거나,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했다거나 하는 식의 아픈 기억들 속에 우리의 감정은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요?
감정에 유형적 혈태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정답은 없겠지만, 안에서 거대해지다 일순간 사그라들고,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은 채 오래도록 지겹게 안에 머무르는 형태, 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결국 3연에서 묘사되는 '싱고'의 이미지는 우리 안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계속되는 아픈 기억에 대한 감정을 유형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싱고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막대기로 재를 파헤쳐 은박지 조각을 골라냈다. 그것은 은단껌을 싸고 있던 것이다.
화를 내는 아버지를 마주하고 나서 아궁이 앞에 홀로 앉은 어린 화자 곁에는 개를 잃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싱고가 함께 있습니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한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대체 왜 화자가 '싱고'라는 존재를 만들어내야만 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화자는 왜 굳이 '싱고'라는 존재를 만들어서 유형적인 형태로 자기 옆에 두려 했던 걸까요?
마지막 연에서 싱고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 화자의 아픈 유년기 전반을 대변하는 존재처럼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화자가 아프고 힘들었던 순강니다. 그의 옆에는 늘 싱고가 함께 있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싱고는 화자가 아픈 유년기를 버틸 수 있게 해준 유일한 버팀목이자 목격자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싱고가 화자의 아픈 기억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싱고'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는 것들의 가장 기반에는 화자가 유년기에 엮었던 '아픈 기억'들이 존재합니다. 첫 연에서 화자가 정의한 '싱고'가 아픈 기억의 감정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볼 때 우리는 화자가 자기 안에 있는 어떤 부정적 감정과 기억들을 '싱고'라는 존재로 타자화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안에 있는 아픈 감정을 끄집어 내어 그것을 마치 내 것이 아니라는 듯 대하며 계속되는 하루들을 견디는 아이들의 모습. 이것이 이 시에 그려져 있던 화자와 싱고의 진짜 모습이지 않을까요?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마지막 연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불이 타오르는 아궁이 앞에 앉아 있던 화자는 검게 탄 재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은박을 골라냅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에 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앞선 많은 아픔의 순간을 견뎌온 어린 화자가 타지 않은 채 반짝이는 은박을 불길 속에서 골라내는 모습은 의미심장하면서 희망적인 이미지를 우리에게 전달해줍니다.
그렇다면 화자에게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첫째로 '싱고'를 말할 수 있습니다. 싱고에 대한 주요한 묘사 중 하나는 '픽 터져서 벽을 타고 흐물흐물 흘러내리'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이미지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뜨거운 불 속에서 여남은 부분을 다 태워내고서라도 남아 반짝이는 은박의 이미지는 싱고와 연결되는 면이 있습니다.
나아가 '싱고'는 곧 화자 자기 자신의 일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타지 않는 것들'이 아픈 상황들 속에 놓인 자기 자신을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부분들을 분석적으로 이해하려 하기보다, 운명처럼 불길 속에서 반짝이는 은박을 골라내는 화자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보 그 장면이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이미지, 감각 등을 생각해보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를 읽을 때는 이게 무슨 의미일까? 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이 문장이 내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시에서 '싱고'가 의미하는 것을 먼저 찾기보다 아픈 감정을 견디다 못한 화자가 탄생시킨 '싱고'라는 존재를 그저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의 의미를 파악하려 하기 전에, 불길 앞에 앉은 어린 화자가 불길 속에서 반짝이는 은박을 골라내는 장면을 가만히 감각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순간을 마주치곤 합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쓸쓸하다고 느끼거나, 피어나는 꽃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때, 어떤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그 사람을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런 순간들처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해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는 좋은 시를 읽을 때, 그런 순간을 마주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시가 왜 좋은지, 이 이미지가 왜 내게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말로 당장 설명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이해되는 그런 순간.
신미나의 「싱고」의 장면들을 조금 더 깊게 바라보신다면 여러분도 분명 그런 순간을 언젠가 마주치게 되실 거라 생각하면서, 이번 소개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