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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기 Feb 09. 2024

2022년 가장 많이 팔린 사랑시 (진은영_ 「청혼」)

ep.2) 시를 읽고 싶은 그대에게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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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도 가장 많이 팔린 시집 중 하나인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에 수록된 「청혼」이라는 시입니다. 사실 이 시집이 이렇게 많이 팔릴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상의 표제작인「청혼」덕분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는 이 시를 군대 훈련소에서 여자친구의 손 편지로 받아보았는데, 정말 너무 좋아서 자꾸 곱씹어보다가 필사까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는 과거에도 많았고, 현재에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직접적으로 '사랑'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려 할수록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가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독자로 하여금 '오글거린다'고 느끼게 만들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진은영의  「청혼」은 대체 어떤 부분에서 기존의 시와 다른 차별점을 확보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요? 첫 문장부터 자세하게 시를 감각해 봅시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우선 '오래된 거리'라는 단어를 감각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네요. 각자 기억하고 있는 '오래된 거리'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봅시다. 저는 자연스럽게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드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플라타너스가 늘어선 고즈넉한 거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오래되었지만 아주 익숙하고, 그래서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그런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노스탤지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네요.

그렇기 때문에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라는 문장은 그런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오래된 거리'라는 이미지가 품고 있는 의미가 '지속가능한 형태의 사랑'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이 '청혼'이라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사랑'의 이미지는 절묘하고 적확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작품의 제목이 '청혼'인 것을 감안해 볼 때 이 문장은 나와 너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시선의 주체가 벌이라는 점에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제 방식대로 쉽게 이해해 보자면 '사랑하는 우리를 바라보는 별들의 웅성거림'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겠네요.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1연도 아름답지만, 2연의 이미지들은 개인적으로 더욱 깨끗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여름에 내리는 비'를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손바닥을 두드리는 빗방울'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이미지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손바닥 위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의 감각과 작은 은색 드럼을 두드릴 때 나는 청량한 소리 같은 것들을 떠올려 보시면 더욱 이 문단의 이미지를 깊게 감각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뭔가 순수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사실 이 문장에서 가장 많은 분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냥 모르면 넘어가도 되고, 자기 방식대로 이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화자에게 '과거'와 '미래'가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에 미뤄 볼 때 화자는 청혼을 하는(혹은 이미 한) 주체로 보입니다. 이때 이 화자에게 과거는 어떤 의미를 갖고 미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결혼이라는 거대한 분기점 위에 선 주체가 과거를 곱씹으며 미래를 다짐하는 태도는 아주 일반적인 태도처럼 보입니다. 조금 더 쉽고 재미없는 말로 바꿔 본다면, "결혼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결혼 후에도 잘할게" 정도로 바꿔볼 수도 있을까요? (갑자기 시가 너무 재미 없어지네요...)

또 이 시구는 다른 방식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와 미래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자신이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분기점 위에 서서 너와의 과거를 바라보며 그것을 아주 대단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아첨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미래를 앞둔 지금 그 미래를 아주 대단하고 휘황찬란한 것으로 보지 않겠다는 성숙한 다짐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다짐은 첫 연의 '오래된 거리'의 감각과도 일정 부분 맞닿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에서 그리고 있는 사랑의 형태는 불타오르는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은은하고 지속 가능한 형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앞선 시구들을 모두 열심히 감각하며 오셨다면 이 시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실 것 같습니다. 여기서 어린 시절은 결국 앞선 연의 '과거'에 해당하는 시기이겠고, 불에 비유를 해본다면 사랑이 활활 타오르던 시절이겠죠? 그 당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은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서 가장 순수한 맹세였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찾아서' '너의 팔에 적어주는' 행위는 아주 로맨틱한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쉽고 재미없게 이해를 해보자면 "내 마음은 변치 않을 거고,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이래서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거랍니다.)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두 번째 걸림돌이 나온 것 같네요. 사실 이 부분은 아주 약간의 철학적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불가해한 질문들을 품고 있고, 그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가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상대방에게 설명할 수 있나요? 자신의 이름이나 직업 같은 것들이 일정 부분 자신을 대변해주기는 하지만, 결국 그런 것들이 자기 자신의 근본적인 부분을 대변하지는 못합니다. 그럼 나는 누구일까요?


이 질문은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왜 살고 있지?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지? 이런 식으로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아주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과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실 배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누구인지도 나는 모르고, 왜 살아가는지도 모르는데, 누군가와의 미래를 꿈꾸며 결혼이라는 제도로 자신을 구속하겠다는 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 즉 '나'라는 존재에 함몰되어 있던 나의 시간을 이제는 모두 돌려주겠다는 화자의 발언은 삶의 의미를 찾아 외롭게 헤매던 시간을 넘어 너와의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


아니 갑자기 이건 조금 슬픈 느낌이 듭니다? 앞에서 충분히 로맨틱한 결혼의 이미지들을 던져놓고 왜 마지막은 이런 슬픈 이미지들로 끝나는 걸까요?


사실 마지막 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차였을 수도 있겠죠? 청혼에 실패하고 쓴잔을 들이켜는 모습을 이미지로 묘사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해석해 버리면 앞선 모든 시구가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절대 어떤 사랑의 '결과' 같은 것을 제시하는 시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거든요.

앞선 시구,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라는 문장을 다시금 떠올려 봅시다. 이 문장을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사랑을 아주 대단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겠다는 성숙한 다짐으로 읽어냈습니다. 그런 연장선에서 마지막 연의 '쓴잔'이나 '슬픔이 담긴 유리컵' 같은 이미지들을 이해해 보면 어떨까요?

결혼은 분명 사랑의 결실이지만, 그 과정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화자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평생을 찾아 헤매던 '나를 찾는 과정'을 '너'에게 돌려주고 '너'와의 미래를 그리고 있으니까 말이죠. 결국 결혼은 일정 부분의 '나'를 포기하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와의 결혼은 너와 내가 각자 포기한 만큼 합쳐지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내가 포기한 자리와 네가 포기한 자리에 '우리'라는 존재가 대신 위치하게 된다고 말해볼 수도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단 한 여자를 위해' 오래도록 '쓴잔을 들이켜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쓴잔에는 '투명한 유리조각 같은 슬픔'이 들어있을 수도 있겠지요.

결국 이 문단은 '사랑'과 '결혼'이 가지는 복합적인 의미를 다시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자, 이렇게 세밀하게 시 한 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사실 앞선 소개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시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 해석하듯이 한 문장씩 작품을 들여다본 건 시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보여드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른 독자분이 다른 방식으로 시를 이해했다면, 다른 방향의 해석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겠죠.


시는 개인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합니다. 만약 시에 대한 해석이 수학에서 정답을 찾는 방식으로 하나로 귀결된다고 하면 시는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는 '학문'처럼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시는 그렇지 않고, 그렇기에 매력적입니다.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시는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읽은 진은영의  「청혼」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작품을 바라본 저의 시선과 여러분의 시선이 겹치는 부분은 어디였고, 또 충돌하는 부분은 어디였는지 한 번쯤 곱씹어본다면 자연스럽게 이 시의 매력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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