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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Aug 25. 2022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이야기

20." 꼭 꼭 채우고 싶어. "

2014.12.24


나만의 음악 목록 챙기기가 은근히 쉽지 않다. 이게 뭐 어려운 일일까 하겠지만 나에게는 어째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름 차곡차곡 쌓아 온 나만의 음악 목록이 있긴 한데, 고등학생 때 듣던 음악들부터 있는데도 많다고 보긴 힘들다. 음악 듣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많이 듣는 편도 아니고. 좋아하는 느낌의 음악이 있지만 꼭 집어 찾아내기가 어렵다. 어쩌다 만나는 너무 좋은 음악은 그대로 흘려보내게 될 때가 많다. 인상 깊어서 다시 찾아 듣고 싶어도 제목도 모르고, 가수나 작곡가도 몰라 다시 듣지 못하고 아쉬워만 하게 된다. 애써 찾아두고도 잃어버리는 일도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음악들에 관심을 쏟고 관련한 정보들을 잘 알고 있어도 듣고 싶은 음악 찾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보지만, 그런 생각까지만 이다.

중학생 때 영화채널 OCN을 자주 시청했었는데, 우연히 본 홍콩 멜로가 너무 슬퍼서 보는 내내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나중에 생각했을 땐 왜 그렇게 울었는지 어이없을 정도로 조금은 유치하기도 한 영화였지만, 그땐 그 영화가 참 인상 깊었고 제목을 꼭 알고 싶었다. OCN으로는 항상 영화 중간부터 보게 될 때가 많아서 영화를 보고도 제목을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가끔씩 퍼뜩퍼뜩 떠오르며 아주 오랫동안 그 아쉬운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다가 장국영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우연히 그토록 알고 싶었던 영화의 제목을 알게 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야반가성이었다. 홍콩 판 오페라의 유령.

그때도 그렇고, 여러 사소하고 신기한 경험상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언제 어떻게든 알게 된다고 믿게 되었다. 아마 그건 내가 계속 잊지 않고 있으므로 언제든 올 수 있는 우연한 순간에 그것이 눈에 띄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인상 깊은 음악을 들으면 너무 좋아하면서 마주한 순간을 즐기다 그렇게 아쉽게 헤어지고 만다. 그리고는 다시 나의 믿음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다시 만나면 그땐 어떻게든 그 음악을 알아내고 찾아내려 노력해 내 목록에 저장해 둔다. 그리고 그 음악 하나로 연관된 앨범들과 다른 음악가들을 알게 되는 것으로 조금씩 천천히 음악 목록을 채워 나가는 것이다.

우연히 만나는 기쁨으로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많은 음악 목록을 채워보고 싶은 건, 요즘 들어 음악 듣기로 기운을 회복하는 것 같아서다. 작은 공간에서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고, 하루 종일 이어지는 하나 같이 좋은 음악들을 많이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못하는 나는 뭔가를 하면서 음악조차 듣지 못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해보자 하다가 결국엔 그 음악들 찾는 데 시간을 보내 일에 집중을 못하게 된다. 내가 싫어하는 음악을 듣고 싶지 않으니 꼼꼼하게 찾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난다. 그래서 나만의 음악 목록을 미리 많이 잘 정리해 두는 것이 숙제가 되고 말았다. 이럴 땐 여러 가지 일을 후딱후딱 처리하는 사람들의 힘이 부럽기도 하다.

내 귀에 달고 좋은 음악을 즐기는 것엔 어떤 책임도 신중함도 필요하지 않다. 음악이란 영역이 어쩌면 나의 가장 자유롭고 순진한 취미의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가진 평등한 감각기관에 가장 즉흥적인 느낌으로 다가가는 음악은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일 거다. 세상에 내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나만이 좋아하는 음악들로만 가득한 음악 곳간의 재생 버튼을 누르면, 흔치 않은 만족감을 사실 이런 작은 것들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며 기분 좋은 휴식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해가 가기 전에 해두어야 할 일이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생각이 났다. 꼭 해두어야지.  

    

[출처] 20.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얘기 - " 꼭 꼭 채우고 싶어. "|작성자 onlyweek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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