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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Aug 05. 2022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이야기

18." 어흥 좋다. "

2014.12.03


더위보다 추위를 더 타고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차라리 찌는 여름이 낫다고 생각한다.

시리도록 추운 날에 몸이 움츠러들 때면 뜨끈한 탕에 몸을 푹 담그고 싶어 진다.

수증기가 뽀얗게 가득한 따뜻한 목욕탕에서 뜨끈한 탕 안에 몸을 담그면 추운 날씨에 긴장했던 근육들이 노곤노곤 편안해질 텐데. 매일 집에서 물을 끼얹는 샤워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목욕은 단순한 씻어내기보다 좀 더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좋은 휴식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주말엔 꼭 집 근처 공중목욕탕에 가서 두 세 시간씩은 씻곤 했다. 원주에서는 줄곧 '금풍장'이라는 목욕탕을 다녔다. 그 동네 주변에 하나 남은 작은 목욕탕. 들어가서 씻을 자리 준비하고, 샤워하고, 탕에 몸 담그고 불려서 때를 밀기 시작. 피부가 약해 금방 빨갛게 일어나서 우유를 묻혀 살살 밀었다. 그리고 누구랑 서로 등도 밀고 헹구고 머리 감고 나와서 몸단장하면 금방 두 시간이다. 넉넉하게 늑장도 부리면서 목욕을 즐기려면 세 시간은 필요하다. 하염없이 그날의 때가 멈출 때까지 몸을 문지르다 보면 머릿속의 묵은 때도 떨어져 나오는 듯 머릿속이 맑아지며 정리가 되곤 했다.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생각의 순환에 도움이 되는 걸까? 화장실에서 좋은 생각을 얻는다는 사람들도 꽤 많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실컷 목욕을 즐기고 나와 맞는 바깥공기는 새것 같았다. 새 세포에 맞는 새 바람. 그리고 산뜻하게 다시 한 주를 맞이할 수 있었다.

이런 목욕은 안 한 지 한 3-4년 정도 된 것 같다. 서울에도 와서 주변 목욕탕이라기엔 그리 가깝지도 않은 곳들이었지만 한동안 찾아가 씻곤 했는데, 다니던 목욕탕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가장 커다란 대형 찜질방만 남아 찜질방에서 목욕을 하게 되면서부터 점점 발길이 뜸해진 것 같다. 목욕탕이라면 다 같은 느낌인 줄 알았는데 온기도 분위기도 달랐다. 아무래도 큰 찜질방에서는 때가 잘 밀리지 않았다. 오는 사람에 비해 큰 탕이나 사람이 많지 않은 탕은 공간이 더워지질 않아서 몸이 금방 식고 때가 잘 나오지 않는다. 새벽에 자주 갔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탕 안에는 사람이 없었고 혼자 큰 탕에서 씻을 때도 있었다. 그땐 춥기까지 했다. 찜질방이 생긴 오래전 당시 정말 대단한 복합 문화공간이라고 생각하며 신나고 좋은 휴식장소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탕 안에서 느끼는 개운함과 만족의 정도는 작은 목욕탕보다 훨씬 비싼 값을 받으면서도 제 값을 못하는 것 같다고 점점 느끼게 되었다. 스마트폰 출현 당시 통화의 질로 2G 폰과 스마트폰을 비교했던 말들처럼. 목욕탕에서는 목욕이 가장 중요한 나에겐 제 기능에 충실한 작은 탕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무렵이 막 사람들 손에 스마트폰이 들릴 즈음이었구나.

작은 탕에선 아침 일찍 갔을 땐 인심 좋은 세신사 아주머니께서 공짜로 등을 밀어주시기도 한 일도 있었다. 열심히 씻고 있는데 말도 없이 갑자기 내 등을 밀기 시작하신 거다. 마음은 너무 감사했지만 사실 너무 놀라서 테러를 당하는 것만 같았다. 괜찮다며 사양을 하는 나의 어깨를 단단히 쥐시고는 너무나 밝게 ‘내 딸 같아서 그래~’ 하시는데 나는 이를 꽉 물고 등을 맡길 수밖에 없었고 하루 종일 등이 화끈거렸었다. 어쩌면 작은 목욕탕이고 큰 목욕탕이 고를 떠나 가장 필요한 것은 목욕탕을 지키는 아주머니들의 화끈하고 뜨끈한 온기들이구나 싶다. 따뜻하다기보다는 뜨끈한. 왁자한 수다들과 목욕을 즐기는 왕성한 방식으로 목욕탕을 종일 내내 달구어주는 사람들의 온기.

결국 원주에 갈 때마다 다니던 목욕탕을 들렀다. 오래되고 아담하지만 주말엔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사람 가득한 뜨끈한 목욕탕에선 맘도 편하고 때도 잘 나오고 피로도 확실히 싹 풀렸다. 대중목욕탕에서만 얻을 수 있는 충만한 편안함이 좋다. 모두가 옷을 훌훌 벗고 물에 온몸을 담그고 다 같이 나눌 수 있는 소중한 편안함. 건조하고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어 주는 매력적인 목욕탕에서의 휴식이 오랜만에 간절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는 밀림 쟁이 흑흑;;죄송합니다.

12월엔 자주 뵙겠습니다. 모두들 연말 준비 잘하시길 바라요~!!

       

[출처] 18.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얘기 - " 어흥 좋다. " |작성자 onlyweek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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