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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Jul 29. 2022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이야기

17." 소중한 깜짝 선물. "

2014.11.05


재작년의 일이다. 열의를 갖고 작업실을 구해 작업을 했지만 유지할 상황이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철수 한 날이었다.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오는 날짜가 다가올 때라 말라가는 잔고를 확인하고, 용달을 부른 후에 비용을 인출하러 갔는데 바로 그 사이에 카드비가 빠져나가 용달비 5만 원을 뽑을 수가 없었다. 잠시 기가 막혀하다가, 얼마 붓지 않은 적금을 깨 용달비를 지불해 작업실의 책상이며 짐을 실어다 원룸에 꾸역꾸역 들여놓을 수 있었다.

기진맥진해서 겨우 앉을 곳을 찾아 숨을 돌리며 본 방안이 너무나 갑갑했다. 안 그래도 작은 원룸에 큰 짐들이 더 들어왔으니. 마음도 갑갑했다. 가구들을 옮겨서 공간을 다시 정리해야겠다, 해야겠다, 하면서는 계속 몸은 늘어지고. 몸과 다르게 머릿속은 이런저런 무거운 생각들을 멈추지 못했다. 일단 집안에 버릴 것들을 미련 없이 싹 내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할 때 눈에 들어온 것은 꽤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옷더미들이었다.

언니들이 주는 옷을 받아다 한 두 번 정도 입고는 자주 입지도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뭘 쉽게 버리는 성격이 아닌 탓에 쌓아두고 있었다. 당장 옷 정리를 해 김장비닐에 가득 주워 담자 두 꾸러미가 나왔다. 그런데 예쁜 패턴이 있거나 색감과 소재가 좋은 옷들이 또 아까워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들로 뭔가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초등학교 때부터 모아 온 작은 구슬들이며 무슨 조각들과 함께 이참에 장신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워낙 예쁜 천조 가리나 잡동사니를 아까워해 쓸데가 있으려니 하면서 모아두곤 했는데, 오늘에야말로 수집한 보람도 느끼고 그것들을 다 써서 공간들도 비워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만들기 시작한 것은 옷 앞섶에 다는 코르사주였다. 계획하고 스케치를 하고 할 것 없이. 마음 가고 손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있는 것들을 모으고 자르고 접고 붙여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가 있었다. 그림 작업을 할 때 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자유롭고 느낌이 충만한 작업에 오랜만에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그렇게 좋아 만들다 보니 밤을 새우고, 다음날도 연달아 작업을 하였다. 만들어 놓고 보니 양이 꽤 되었다. 우울하고 낡은 기분들이 승화된 제각각 다른 모습들의 한 점 한 점들을 보고 있자니 이럴 수도 있구나 싶고 뿌듯하기도 하면서 우습고, 웃기니 기운도 났다.

만든 것들의 반응이 괜찮아 팔아볼까 하였고, 인천의 한 축제에 가서 다 팔았다. 장사는 처음 해보는 거라 신기하기도 했고 손님도 불러가며 열심히 했다. 돈주머니가 차오르는 쏠쏠한 기쁨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만든 것이 가치를 갖고 돈과 교환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사람들이 그것을 들고 그 가치에 기뻐하며 가슴에 달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있는 현장감이란 걸 느꼈던 것 같다. 그토록 생으로,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누군가와 교류하는 게 얼마 만이었던지.

그러한 보람과 즐거움도 느꼈고 축제 이후에 꾸준히 만들어 더 열심히 팔아보라는 권유들도 있었지만 생계로 만들어 꾸준히 하지는 못하였다. 대신 간간히 기회를 살려 한 번씩 만드는 판을 벌이고는 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에선 코르사주 만들기에 좀 더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하는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 각자 방에 굴러다니고 버려진 짝 잃은 귀걸이나 구슬 또는 사연 있고 정들어 못 버리는 아주 작은 것들을 각자 하나씩 가져오시면 그것을 주 재료로 삼아 의미 있는 액세서리를 만들어 드리겠다고 하였다. 특이하게 생긴 클립, 떨어진 펜던트, 배지 등등 여러 가지를 가져다주셨고 그것들로 액세서리들을 만들어 잡동사니의 주인들에게 돌려드렸다. 다들 정말 맘에 들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꺼이 액세서리를 받아 착용도 해 보시고 좋아하셨다. 주인이 있는 물건들이라 만들면서도 뿌듯하였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일부를 교환하는 과정 자체가 하는 즐거움이었다.

액세서리 만들기는 수입이 될 수 있는 방편이라기보다 팔든 교환하고 나누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교류를 하고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고리로 의미가 컸다. 마음이 작업에 치이고, 사는 물리적인 공간조차 작업에 치여 어떻게든 정리해 내 보려던 상황이 나에게 위로의 깜짝 선물을 준 것 같았다. 혼자 골똘히 작업한 것들이 쌓여만 가고 그것들이 외부로 나가 어떤 의미를 구하거나 만들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비슷한 상황에서 작업을 하던 몇 없던 사람들이 종종 공감하는 일이었다. 돈도 포함해 만들어 낸 것들에게서 오는 피드백들에 대한 의문이었다. 한 언니는 쌓이는 것들을 어디 선물이라도 주고 싶다고 했다. 나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개인적인 고투를 하며 에너지를 쏟아 만들어내는 것들에게서 오로지 나의 만족만으로 만족할 수도 있지만, 자급자족으론 더 나아갈 수 없어 그 이상을 바라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적어도 내가 하는 이 일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믿는 만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하게 된다. 이렇게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에 현재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견뎌낼 만큼 강하지 못한 나에 대한 회의와 행하는 즐거움 자체에 만족하지 못하는 낯선 나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은 자신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도움이 되는 존재임을 확인하며 자신을 증명하는 시간이기에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액세서리를 만들고 팔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은 내가 예상치 못한 방식이었지만 마침 필요했던 중요한 시간이었고 내가 가질 수 있는 결핍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나에게 소중한 한 복잡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고,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해보고 즐거움들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나에게 주어지고 마주치는 것들을 천을 모으고 구슬을 모으듯 하나하나 모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그것들을 모아 또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순간이 오면, 그로 인해 또 어떤 소중한 깜짝 선물을 안아볼 수 있을까.      

[출처] 17.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얘기 - " 소중한 깜짝 선물. "|작성자 onlyweek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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