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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Jul 22. 2022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이야기

16." 공사가 싫어요. "

2014.10.29


한동안 바로 집 맞은편에서 작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침부터 해 저물 때까지 하는 시끄러운 공사가 두 달인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는데, 공사가 끝나고도 아침 새벽에 놀랄 정도로 캉캉거리곤 해 보았더니 들어온 것이 건설자재 사무소였다. 앞으로도 그 쇳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니 너무나 싫었다.

최근 들어 이 동네 주변이 계속 크고 작은 공사판이라 아예 가까이 건축자재 빌리는 곳이 들어선 모양이다.

항상 사는 곳이나 다니는 곳 주변은 공사 중이다.

내가 달리 공사를 부르는 몸은 아닐 텐데.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항상 공사 중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돌 나르기나 잡초 뽑기 같은 작은 부역에 동원되기도 하고 진창길을 예사로 걸었다. 한참 나중에 찾아가 보았던 초등학교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실감하게 했다. 지형마저 바뀌어 옛 모습을 전혀 찾아보기가 힘들었으니. 반면 찾아갔을 당시 8년간 별 변한 모습 없이 창문 시트지 마저 그대로였던 고등학교는 놀랍고 의아하기까지 했었는데, 그 학교는 아예 새로 지은 곳으로 이전을 앞두고 있었다.

대학교도 마찬가지. 입학 때부터 정문을 짓고 있어 좁은 통로에 몸 사리며 지나다니는 것이 만성이 되었다. 바닥 뒤집는 공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정문을 다 짓고서는 후문 쪽 건물 공사에 들어갔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의 집들 주변도 내내 공사 중이었다. 주택가 안에 카페가 들어오고, 길가에 새 빌딩이 지어지고, 가까이 지하철 입구가 뚫렸다. 공사가 진행되면 집세는 올라갔고 자연스레 점점 잠잠한 외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온 이곳은 당시 신촌 한복판에 이런 중국 뒷골목 같은 곳이 있었냐며 지나가던 행인들이 감탄할 정도로 조용하다 못해 으슥하기도 한 모습이었다. 동네가 예로부터 음기가 세 원래 점집이 많다는데, 얼마 남지 않은 점집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어 더욱더 으슥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랬던 곳인데 공교롭게도 이사와 얼마 안 되어 바로 옆 오래된 상가 철거가 시작되었다. 이쯤 되면 공사의 물결에 밀려다니는 꼴이다. 상가는 옛날에 아버지가 일했던 곳이기도 해서 철거하는 앞을 오가며 괜한 아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철거 후엔 묵히기도 오래 묵혀 주민들 원성을 사더니 갑자기 삼일 만에 주차장이 만들어졌다. 뻥 뚫려 시원하니 좋긴 했는데 또 곧 훤히 드러난 길가로 상가가 하나둘씩 들어와 공사가 계속된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사장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공사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요즘 세상에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만, 장소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에겐 긴 시간 무르익어 생겨난 소중한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봉변일 수도 있는 일이다. 유행하는 옷으로 갈아입듯 쉴 새 없이 모습을 바꾸는 거리들에선 이야기들이 태어날 겨를이 없다. 거리의 빠른 흐름과 짜릿함도 멋지고 즐길 만한 것이지만, 다시 찾아올 기약도 부질없이 다 소비되어 사라짐만 반복하는 그런 풍경들이 더 많아지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도시에서 이런 불만 자체가 부질없는 것이려나. 이런 불만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곳곳에서 장소성을 살려 많은 사람들이 더욱 많은 이야기들을 만드는 사례들 또한 많이 이어져 오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공사가 가져다주는 긴장과 자극들이 무엇보다 힘들다.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꼬박 두드리고 자르고 깎는 소음에 이쯤 하면 적응도 될 텐데 그렇진 않고 귀며 심신이 지친다.

건축자재상이 들어온 곳이 전 점집 자리다. 아마 이제 여기 많다던 귀신들도 사람이며 소음이며 강렬한 햇볕이며 양기가 탱천 하니 다 도망갔을 거다. 사람인 나도 계속 공사 중인 도시에서 아마 죽을 때까지 공사판을 거닐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피곤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다.       


* 장소와 공간의 빠른 변화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워낙에 비슷하게 많은 편이라 올릴까 말까 했는데 올릴게요. ‘나무늘보’에겐 지나치기 어려운 이야기일 테니까요.

* 지지난주에 펑크를 냈더랬습니다. 양해 글만 쓰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죄송합니다. 못쓴 것을 이렇게 연이어 올립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드려요.   

   

[출처] 16.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얘기 - " 공사가 싫어요. "|작성자 onlyweek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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