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희 Jul 01. 2022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이야기

13." 아이고 의미 있다. "

2014.09.17


올해의 추석이 지나갔다.

한국 사람들 모두가 지낸다는 전통 명절인 추석이지만 실상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각각의 가정마다 개인마다 다르다.

정말 뉴스에서 살갑게 전하듯 전통적인 의미대로 흩어져 살던 대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같은 핏줄의 근원인 조상님을 모시고 맛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몇이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집은 제사도 지내고 전통적인 법칙을 따르는 편이어서, 추석을 포함해 전통적인 의미의 명절이 당연한 느낌으로 좋았고 그렇게 유지되리라는 믿음이 20대 초반까지도 있었다. 그때 만난 새로운 친구들 중엔 이미 명절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느꼈던 것들을 매 해가 지날수록 나도 조금씩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명절엔 당연히 내가 자라온 곳으로 소환된다. 소환이라고 말한 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이다. 그리 굳이 명절에 대한 의지가 없다. 좋다는 것도, 싫다는 것도. 이상한 본능이라 할 수도 있겠다. 명절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적이 없다. 마땅히 가기 싫고 피하고 싶은 적이 없었다. 어떤 갈등이 있든지 간에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에게 항상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게 꼭 명절이라고 특별한 것도 아니어서 굳이 명절을 쇠어야 할 이유가 사실 없는 것이기도 한데. 아마 언젠가 한 번쯤 이번 명절엔 내려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건 부모님께 굉장히 이상한 일로 느껴지실 것이다. 그리고 그걸 곧 서운함으로 느끼실 것이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우리 집에서의 명절은 점점 나에게 시대의 변화를 겪는 한 집안의 연극적인 무대로 다가왔다. 옛날엔 북적이고 시끄러웠던 명절이 분명 있었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점점 바뀌어져 갔으니까. 그 사이사이의 세월엔 가족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복잡한 갈등들이 있다. 무엇도 할 수 없는 그럴 필요도 못 느끼는 나는 멀찍이서 바라보는 관람객이 되었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관람객은 나뿐만은 아니다. 어리든 나이가 많은 어른이든 각자의 다른 삶의 태도와 욕망으로 자신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지워져 자라온 규칙이 있는 곳으로 소환되어, 또 누군가는 전혀 자기와 상관없는 곳에 끌려오다시피 와서 명절 제사라는 퍼포먼스를 하고 어색한 식사를 하고 조용한 갈등을 하고 어색해서 잠을 자다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지 않을 어색하지 않은 시간에 맞춰 돌아간다. 그 무대는 옛날엔 시끄럽고 단순했다면 지금은 더욱 복잡하고 첨예하고 팽팽한 긴장감과 세월이 흐를수록 수많은 이야기들이 얽힌 드라마를 보여준다.

비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지속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자신의 정체성과 이 의식이 결속되어 있는 사람들. 이렇게 멀찍이서 방관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겐 얼마나 큰 무력감과 정처 없는 원망을 느끼게 할까.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배고프지 않은데 먹어야 해서 먹는 밥처럼 무미건조한. 그래서 한편으로 생각도 많고 우습고 재미있기도 한 명절이다. 즐거웠다.      

[출처] 13.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얘기 - " 아이고 의미 있다. "|작성자 onlyweekdays


이전 13화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