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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ug 01. 2022

빵 할머니

종이에 수채, 색연필


리는 모두 그 할머니를 좋아했다. 할머니에게선 항상 고소하고 부드러운 버터 냄새가 났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은 할머니를 버터라고 불렀는데 할머니도 우리의 지은 그 이름이 싫진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큰 호수가 보이는 시골마을의 오래된 보육원에서 살았던 키가 작은 평범한 아이였다. 내가 살던 곳은 크고 통통한 소시지가 유명한 마을이었는데 소시지를 파는 사람들은 소시지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안타깝게도 이웃에게 따뜻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사림들은 다 느끼고 있었겠지만 먹을 것이 다양하지 않은 그곳에서 여러 맛의 소시지를 파는 것에 그저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리엄 보육원은 가난한 목사 부부가 운영했던 작은 보육원이었는데 그 두 분은 항상 아이들에게 충분히 음식을 먹이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던 분들이었다. 특히 내가 아버지라 불렀던 제레미 목사님은 식사기도를 할 때마다 마지막에 꼭 눈물을 흘리곤 했다. 똑같은 음식을 먹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항상 아이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컸던지 아이들을 꼭 안아주곤 했다. 나는 가끔 그 보육원을 찾아가는데 키가 많이 크지 않은 것에 제레미는 아직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어렸던 나와 내 친구들은  수프와 마른 빵, 누군가 가끔 주고 가는 닭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배를 붙잡고 거리를 돌아다니곤 했다. 하루는 찬 바람이 유난히 심한 겨울날이었는데 그날이 버터 할머니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빨간 앙고라 모자에 보랏빛 눈화친로안 한 통통한 채구의 할머니였는데 할머니에게서 나는 버터 향에 이끌려 나와 친구들은 그 냄새를 따라 할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런 우리들을 보고 할머니는 나무 바구니에 있는 빵을 나눠주곤 했는데 그 빵에서도 할머니에게서 났던 버터 냄새가 났다. 역시 빵에서도 고소한 버터향이 났다. 그 빵이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유난히 배가 고픈 날에는 길목에 앉아 그 할머니를 기다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버터 할머니는 젊은 시절 마을에서 꽤 유명한 미인이었다고 했다. 전쟁에 나간 남편이 양다리가 잘린 채로 온 후 할머니가 생계를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고 제봉일을 시작하면서 할머니는 점점 몸이 약해지기 시작했고 남편은 삶을 비관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로 몇몇 남자들이 할머니에게 청혼을 했지만 할머니는 어떤 누구의 청혼도 받지 않은 채로 제봉일을 했다. 사람들은 할머니를 독한 여자라거나 어떤 심보 일지 모른다며 점점 할머니를 따돌리기 시작했고 할머니에게 청혼을 했던 사람 중 결혼을 한 남자가 있다는 것이 퍼지자 할머니를 마을에서 내쫓아 버렸다. 그 후 할머니는 무슨 이유에선지 머리가 백발이 되어버린 모습으로 다시 마을에 돌아와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에 얽힌 이야기를 마치 구전동화처럼 얘기하곤 했고 할머니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는 할머니가 라탄으로 짜인 바구니에 빵을 잔뜩 담아 골목을 지나가는데  젊은 두 여자가 할머니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할머니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수근거리던 두 여자는 할머니가 지나가고 버터를 바른 빵의 향을 맡은 건지 할머니의 버터향을 맡아서 그런 건지 표정이 오묘하게 변해갔다. 마치 그 냄새에 반해버린 사람 같아 보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에게서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할머니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사람들도 할머니의 집 문 앞까지 찾아가 빵을 팔 생각이 없으시냐며 공손하게 물을 정도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빵을 팔지 않고 매일매일 사람들을 초대해 빵을 나눠주고 따뜻한 차를 주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보육원 아이들에게도 매주 빵을 주었고 가난한 사람들의 집 앞에 몰래 빵을 두고 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공짜로 빵을 나눠주고 가난한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빵을 주는 할머니를 돕기 위해 과일과 야채들을 할머니의 집 앞에 가져다할머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그것들로 더 다양하고 배부른 빵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소시지를 사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소시지를 팔던 상인들은 할머니에게 찾아가 자신들이 만든 소시지로 빵을 만들어줄 것을 부탁했다.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들이었던 소시지 상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만든 소시지를 나눠주기도 하고 벌여들인 돈으로 시작니에게 오븐을 선물했다. 나의 정겨운 보리엄 마을은 그렇게 버터빵 향으로 가득했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이제 보리엄 마을을 떠나 있지만 이따금씩 할머니의 버터 바른 빵 냄새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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