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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ug 01. 2022

메리 고모

종이에 파스텔, 색연필, 크레용


기다림을 인내하고 조금씩 얼굴을 내민 꽃들에 세찬 봄비가 내렸다. 꽤 차갑고 강한 비여서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여린 풀잎들이 세차게 흔들렸다. 봄은 왔지만 여전히 겨울인 두 남매가 있다. 

 페리는 비에 맞아 정신없이 흔들리는 풀잎들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집 앞 정원에 있는 메리 고모의 화분들에 핀 풀잎들이었다. 

고모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했어서 페리 역시 비가 오는 날을 좋아했다. 페리와 티모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결혼을 하지 않은 메리 고모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메리 고모는 쌍둥이를 정말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지독한 곱슬머리 때문에 처음 고백한 남자에게 차인 후 마구 성질을 부린 날에도  고모는 페리의 곱슬머리를 만지며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못 알아본 바보는 만나주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며 위로했다. 페리는 고모를 끝내 엄마처럼 생각하진 못했지만 고모는 페리를 딸처럼 생각했다. 이 사실이 페리에게는 가장 큰 아픔이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온 티모와 페리는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비가 점점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쌍둥이의 앞에 놓인 체리나무 탁자 위에는 고모가 좋아하던 말린 크렌베리와 아몬드가 둥그런 나무 접시에 담겨 있었다. 시간과 장소는 그대로인데 메리 고모만 없어진 집에는 더 이상의 온기가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티모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소중한 것들은 항상 가져가는 신이 싫었다. 메리 고모의 성경책도 보기가 싫었다. 아빠도 엄마도 이제는 고모까지 없어진 상황에서 티모는 동생 페리까지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서 이런 걱정을 하게 하는 이 상황도 싫었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는 웃으려 하지 말고 울 생각 이리라는 고모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티모는 정말이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건 페리도 마찬가지였다. 비가 거의 그쳐갈 무렵 정적을 깨고 페리가  티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팀, 이 남은 아몬드 말이야 다 눅눅 해졌네" 

그 말에 그 둘은 그제야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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