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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ug 01. 2022

여름이 지나간 자리

종이에 색연필


소야 솔킨은 초록색을 정말 좋아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할머니가 사는 작은 마을로 가는 길에서 보이던 초록색 나무들과 숲이 생각나기 때문이었다. 초록색은 소야에겐 고향이자 치유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녀는 선생님으로서 첫 학교인 그린 허드 초등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학교 내부가 초록색 또는 연두색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미묘한 초록 계열의 색 조화가 잘 이루어진 학교였다. 소야는 학교에 올 때마다 처음 입학하는 학생들처럼 행복하고 설레었다. 그녀의 밝은 미소는 다른 선생들과 학생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학교에 새로운 남자 선생님이 부임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 남자 선생도 소야의 미소를 좋아했고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소야는 그의 적극적인 구애를 계속 거절하다가 그의 끈질긴 태도에 결국 그와 사귀기로 결심했고 그에게 거절했던 시간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모두 내어주게 되었다. 소야는 점점 그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그의 사소한 행동에 감정이 결정되곤 했다. 그는 가을이 지나 그녀에게 이별을 요구했고 그녀는 처절하게 매달렸지만 그가 다른 학교로 가게 되자 급격히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을 겨울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소야는 더 이상 초록색이 달갑지 않았다. 초록색이 가장 찬란할 여름 그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초록은 더 이상 소야에게 기쁨을 안겨주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서도 웃음은 거의 사라져 갔다.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상냥한 선생님이었지만 풋사과처럼 싱그럽던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인 듯했다. 역대급 더위라는 뉴스 기사가 나올 무렵 그린 허드에는 또다시 새로운 남자 선생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걱정에 그때처럼 마음을 절대 주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고 일부러 그를 차갑게 대했다. 하지만 그는 작년 여름의 그보다 더 뜨겁게 그녀에게 다가왔다. 소야는 누가 이기나 라는 심정으로 그를 더 세게 밀어냈지만 그는 소야가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더 가깝게 그녀에게 다가왔다. 소야는 이 정도면 남자의 마음이 진심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마음을 받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마가 시작되고 다시금 뜨거워졌다가 조금씩 더위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소야는 날씨가 선선해짐을 느끼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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