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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Jul 30. 2022

08 더 이상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여름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것이 체감된다. 매일같이 집안에 앉아 창밖만 보는 나도 가끔 나갈 일이 있다. 고작 10분도 안 되는 심부름 정도지만. 새삼 뜨거운 햇빛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전염병의 중반기, 오랜만에 집 밖을 나섰을 때 피부에 와닿던 바람의 감각이 생소했던 것처럼 말이다.




번번이 집 안에 있기를 선택하는 것은 어차피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든 돌아와야 한다면 목표 없이 나가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나에게 바깥은 언제나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에 불과하다. 왠지 밖에서는 어떤 급한 일도 없는데 편하지 않다. 카페에서 혼자 쉬어도, 느긋하게 책을 보러 서점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어디든 무서워했던 중학교 시절의 나에게서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도 같다. 긴장과 불안을 숨기는 것에만 능숙해져서, 짐짓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닌다.


긴 실내 생활은 흥미로운 변화를 가져다준다. 몸은 집 안의 정적인 공기, 편한 옷, 장거리의 움직임이 없는 상태 등의 극단적 평온함에 적응한다. 그런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환상이나 다름없다. 생각하는 것, 상상하는 것, 만들어내는 것 모두 관념적 영역에 더 가까운 성질을 지닌다. 심지어 같은 방에 같은 자세로 몇 달씩 있다 보면 그 익숙함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물건 하나하나보다, 그 물건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 더 크게 느껴진다. 있다고 생각하지 않던 것이 사실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고나 할까.


그러다 갑자기 외출하면 바깥이 이렇게 밝고 시끄럽고 다채로운 곳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공기가 움직여 바람을 만들고 나뭇잎을 움직인다. 구름이 떠가고 새가 난다. 자동차 바퀴가 아스팔트에 마찰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강아지가 산책한다. 나와 선풍기만 움직이는 집안과 달리 끊임없이 무언가가 움직이고 어떤 일이 일어난다. 세상은 이렇게 존재하고, 나는 중력을 받아 이 땅 위에 단단히 서 있음을 느낀다. 생각으로만 존재하고 있던 골방의 나는 가끔 밖으로 나와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 물리적으로 현신한다.


자연의 풍광이 인간에게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 안에 존재하는 나를 공고히 하는 성질. 산이 있고 내가 있고 하늘이 있다. 수천 광년 떨어진,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별의 빛이 내 눈으로 들어와 머릿속에 박힌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고 나도 그렇겠지만, 이 순간의 나는 완전히 존재하고 있다. 중력이 나를 끌어당겨 땅에 붙여 놓는 것이 느껴진다. 만원 지하철 안에 서 있던 때의 중력은 그토록 원망스러웠는데, 어째 별 아래 선 우리는 다리가 아파도 감격하는지. 그런 생각을 하면 인간은 놀랍도록 단순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존재하고 있는 상태 자체가 신기할 때가 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영향을 주고받아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경험과 기억으로 내가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변형된다. 자기중심적으로 재편된 기억은 믿을만한 것이 아니다. 진실의 조각이 산재한 기억은 상상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나는 환상이나 다름없는 걸까? 내가 경험하는 것들은 어떻게, 어디까지 나에게 영향을 주는 걸까? 알 수 없다. 어쩌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부분, 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 관념적인 나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거짓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 이후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으로 나오는 것은, 담금질과 같다. 생각으로만 살아가는 인간은 흐리고 물렁하다. 움직여 살아가는 인간은 물리적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단단해진다. 신체의 물질성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때때로 필수적이다. 방 안에 앉아 머리만 쓰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도 같다. 심장이 뛰고 피가 도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존재가 확고해지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다. 물론 그런 것과 상관없이 밖으로 나온 나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단순히 존재하기 때문에 겪는 일들을 생각해본다. 여기에서 이 순간을 경험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확률을 뚫고 왔어야 했는가? 모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는 누군가? 그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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