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초록 숲은 낮에 보면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가는 햇빛이 스며들어왔다. 아무리 나무들이 요새 같다 한들, 나뭇잎의 잎맥은 고왔고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는 동물들은 다채로웠다. 아름다운 숲이었다.
그러나 어둔 초록 숲의 밤은 더 이상 햇빛도, 초록빛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어둠만 있었다. 앞에 무엇이 서 있거나 쓰러져 있다 해도 보이지 않았다. 한은 그런 숲의 밤마저도 좋아했다.
"저는 밤이 좋아요. 고요하잖아요. 어떤 마음도, 비밀도 어둠 속에 숨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아늑해요."
한은 대담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대담이는 빛을 더 좋아해요. 아직은... 어른이 돼서도 그럴 수도 있지만 어둠이 무섭대요. 그럴 수 있어요. 밤에 보는 산은 검다 못해 모든 걸 빨아들이는 엄청 큰 동굴 같아 보이거든요.
저는 대담이를 마을로 데려다주고 있어요. 저는 숲보다 마을이 더 두려워요. 하지만 대담이를 위해서라면...
대담이 손은 작아요. 저도 이럴 때가 있었겠죠? 두려울 때는 손을 잡아주고 싶었어요. 길을 잃지 않게, 곁에 있다고 알려주는 거잖아요. 제가 어릴 때 누군가가 그래주길 바랐어요... 이제는 제가 누군가를 위해 손을 잡아줄 수 있다는 게 기뻐요."
대담은 겁이 나지 않은 척했지만 한과 잡고 있지 않은 손에 땀이 차는지 바지에 손바닥을 벅벅 문질렀다.
"그러게, 더 일찍 집에 가야 한다고 했잖아."
"그래도 오늘 정말 재미있었는걸."
"그러긴 했어."
"앞으로도 이렇게 한이 나 데려다주면 되잖아."
"나는 마을 앞까지만 데려다 줄 건데? 집까지는 너 혼자 가야 돼."
"그,그건 뛰어가면 되지, 뭐."
"언제든지 마을까지 데려다줄 수는 있어. 그래도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다음에는 노을 보고 나서 바로 집으로 돌아 가자, 대담."
"알았어."
마을에 다다르자 한은 있지도 않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대담과 있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대담에게는 집으로 향하는 입구이자, 한에게는 영원히 출구였던 숲과 마을의 경계에 서서 둘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떠나는 대담의 뒷모습과 함께 보는 마을은 더욱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한은 알 수 없었다. 마을이 자신에게 외로움까지 안겼을 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들을 떠나보내는 불안함을 품게 할 줄.
한 가지는 모른 채 하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질투. 한은 온기가 반겨줄 집으로 향할 수 있는 대담이 부럽다 못해 질투가 끓었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마음이 퍽 식었다.
대담이가 뒷모습이 아닌 환한 얼굴로 뛰어오는 낮이 그리워졌다. 그 풍경은 마을이 아니라 저기 저 깊은 숲일 테지.
한은 사무치는 외로움이 슬프고 작은 아이에게 닿지 않길 바라며 또다시 그날처럼 마을을 향해 등을 돌린 채 어둔 초록 숲으로 조심스레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