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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Sep 19. 2023

계획 세우는 시간이 아깝다고요?

계획을 잘 세우는 것도 실력이다


  FM이라는 게임이 있다. 정식 명칭은 풋볼매니저(Football Manager)인데, 축구팀 감독이 되어 내 팀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게 목표다. 훌륭한 선수를 영입하고, 효율적인 전술을 짜고,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훈련시켜야 한다.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팀의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는 단순한 논리의 게임이다. 엄청난 중독성으로 인해 3대 악마의 게임 중 하나로 불리는데, 처음에 게임 방식을 익히는 데에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들다. 나도 군대 가기 전에 FM을 접했는데 결국 내 이름을 딴 경기장을 짓고 (감독으로 크게 성공하면 경기장까지 지을 수 있다) 게임을 마쳤던 기억이 있다.

  FM은 유저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게임의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별 볼 일 없이 감독의 커리어가 끝날 수도 있고, 5부 리그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켜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명성을 떨칠 수도 있다. 주인공이 항상 이긴다는 뻔한 결론이 없기에 더 짜릿하고 그래서 더 쉽게 중독된다.


  게임보다 더 게임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게 현실이다. 스포츠에서 감독의 역량은 경기 결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연패를 거듭하며 빌빌대던 팀이 새로운 감독을 만나 환골탈태하는 사례는 제법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02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대표팀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와서 보면 굉장한 멤버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월드컵 직전까지만 해도 대표팀에 기대를 건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 우리와 맞붙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보다 우리가 몇 수 아래였음은 자명했다. (선수단 몸값이 몇 십배는 차이 났을걸?) 히딩크 감독은 특유의 훈련방식과, 전술, 리더십 등 능력을 십분 발휘해 기적 같은 성과를 일궈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레스터시티라는 팀이다. 직전 시즌 14위에 불과했던 팀이, 바로 이듬해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로 손꼽히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해 버렸다. 맨유, 맨시티, 리버풀, 첼시, 아스널, 그리고 토트넘까지, 내로라하는 팀을 모두 제치고 차지한 우승이다. 우리나라가 4강에 이른 것보다 더 큰 이변이다. (이듬해에는 주전선수들을 타 팀에 빼앗기며 거짓말처럼 12위를 차지했다) 월드컵은 토너먼트 시스템이라 두 세경기만 운 좋게 승리해도 높은 등수를 차지할 수 있는데 비해, 프리미어 리그는 한 시즌 36경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운으로는 결코 우승할 수 없다. 레스터시티의 이변에도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이 역시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감독 덕분에 이변이 생겼을까? 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죽기 전에 다시 볼 수 있을까?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갑자기 FM에 이어 축구 이야기를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여러분 각자는 다른 지능과 체력을 타고났지만, 본인이 가진 하드웨어(지능, 체력)를 어떤 소프트웨어(전략, 계획)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아무리 타고난 머리가 좋고 체력이 좋아도 시험에 대비하는 똑똑한 전략과 계획이 없다면 자신이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반대로 머리가 나빠 공부에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체력이 약해 잠을 오래 자야 하는 사람도 효율적인 계획 하에 공부한다면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다. 공부 방법만 중요한 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방법과 전략도 못지않게 중요하며 이 또한 실력의 일부다.

  축구에 단 하나의 포메이션(상대편의 공격과 방어 형태에 따른 팀의 편성 방법)만 존재하는 건 아니듯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오직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방식은 각기 다를 수 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니, '나는 P니까 계획 안 세워도 돼'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 공부는 느긋하게 다니는 여행 같은 게 아니라, 다른 이보다 앞서야 하는 치열한 전투다. 오늘은 계획을 세울 때 유의해야 할 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1.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사자

  

  별거 아니어 보여도 엄청! 중요하다. 다이어리가 자신의 스타일에 맞아야 손이 간다. 다이어리가 다 비슷해 보여도 속지 구성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다이어리는 월 단위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고, 월/주/일간으로 구성된 것도 있다. 고시공부를 한다면 일간 계획을 적을 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속지가 월 단위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곤란하다. 그 외에 크기나 디자인, 소재, 무게 등이 마음에 드는지 살펴 오래 두고 쓸 녀석으로 고르자. 나는 한 개의 다이어리를 매년 속지만 교체해 가며 3~4년 간 사용했다.


2. 월간, 주간, 일간 계획을 세우자


  계획은 장기 계획, 큰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정책을 짤 때도 5개년 계획을 수립(경우에 따라 10년 이상의 장기 계획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국토종합계획이 대표적인데, 제5차 국토종합계획은 2020~2040, 무려 20년짜리 장기 계획이다)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해마다의 정책 계획을 수립하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 5년간 이끌어갈 국정과제(보통 100가지를 선정)를 선정하고 이에 맞추어 세부 과제를 채워나간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내신 공부는 단기전이므로 장기 계획이 필요 없이 그때그때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대비하면 됐다. 그러나 고시는 다르다. 최소 1년 반에서 2년의 계획이 필요하다. (시험은 1년 주기로 반복되지만 초시에 합격할 심산으로 달랑 1년짜리 계획을 세우는 건 만용에 가까운 일이다) 대학 학기 이수를 함께 고려해야 하고 남자의 경우 군복무 시기도 생각해야 하니 장기 계획은 필수다.

  1년 이상의 장기 계획은 월 단위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분기/반기 등 더 큰 단위의 계획도 세울 수 있겠으나 큰 실익은 없다. 복잡할 것은 없다. 이번달은 경제학 예비순환, 다음 달은 행정법 예비순환, 그다음 달은 행정학 예비순환..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우면 된다. 헌법은 언제 준비할지, PSAT은 언제부터 대비할 지도 계획에 포함해야 한다.

  월간 계획을 세웠다면 주간 계획을 세우자. 월간 계획을 바탕으로 세부 목표를 설정하면 되므로 어렵지 않다. 다만 월간 계획만 믿고 주간 계획을 건너뛰는 우를 범하지 말자. 주간 계획을 세워봐야 월간 계획이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지 검토할 수 있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목표를 설정해야 의욕이 샘솟는다. 너무 무모하거나 이상적인 계획을 세우면 의욕이 살지도 않고 달성하는 맛도 없다. 머릿속으로 '되겠냐?' 하는 생각이 든다면 계획을 수정하자.

  월간, 주간 계획은 미리미리 세우는 계획이다. 미리 세우는 만큼 계획이자 동시에 목표가 된다. 그러나 일간 계획은 다르다. 매일 아침 세우는 계획이다. 주간 계획(목표)에 맞추어 그날의 과제를 설정하면 된다. 우선순위와 과제의 성격등을 고려하여 적절히 배치하자. 중요한 과제는 앞 순서로 배치하고, 하기 싫은 과제도 앞 순서에 두자. (달성해야 하는 과제 옆에 번호를 매기면 우선순위를 따지기 쉽다. 표지(?) 사진을 참고하자) 하기 싫은 공부를 후순위에 배치하면 한 달 내내 손도 대지 못할 수 있다.


3. 중장기 계획은 역진 귀납식으로 세우자


  장기 계획을 세울 때 유의해야 할 점이다. 긴 기간의 계획을 세울 때에는 항상 시험 당일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와야 한다. 일종의 역진 귀납(본래 경제학에 등장하는 용어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시험 전날에는 벼락치기를 해야 하고, 그럼 시험 2주 전에는 벼락치기할 단권화 자료가 마련되어 있어야 하고, 한 달 전에는 문제풀이가 다 끝났어야 하고,.....(중략)... 그럼 여섯 달 전까지는 기본강의를 다 들어야겠네' 이런 식이다.

  이렇게 역진 귀납식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시험이 임박했을 때 진도를 다 나가지 못하거나 중요한 부분을 빼먹게 되는 등 계획 자체에 결함(계획대로 공부했음에도 빠진 부분이 존재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장기 계획은 목표와 성격이 비슷하므로 막연하게 수립해서는 현실성이 떨어지기 쉽다. 시험일을 기준으로 하루 전, 이틀 전, 삼일 전... 이렇게 역순으로 계획을 세워보자. 그럼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답이 나온다.  


4. 일간 계획은 평소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120%만큼 짜자


  일간 계획은 눈앞에 놓인 사탕처럼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 이거하고 이것도 해야지..!"라고 말하면서 의지를 다잡을 수 있다. 유의할 점이 하나 있다. 비현실적인 계획도 문제지만, 너무 적은 양의 계획도 문제다. 주간/월간 계획은 현실적으로 짜되, 일간 계획은 120% 수준으로 짜야한다. 하루에 통상 6~7가지의 과제를 달성하고 있다면 계획에는 8~9가지의 과제를 적자. 그래야 하루종일 으쌰으쌰 하면서 그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릴 힘이 생긴다. 조금만 더 집중하면 한 가지 더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다. (다만 너무 과한 수준(예 : 15~20개)의 과제를 설정하면 애초에 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의욕이 저하되고, 되려 5가지의 과제도 달성 못할 수 있다)

  

5. 양보다 질이 중요한 경우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자


  간혹 양보다 질이 중요한 과제가 있다. PSAT이 대표적이다. 'PSAT 120문제 풀기'와 같은 양적인 계획을 세우면 개별 문제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 문제를 대충 풀게 되더라도 120문제를 채우고야 마는 식으로 공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PSAT 90분 풀기'와 같이 시간을 단위로 계획을 수정하는 편이 좋다.

  한 가지 경우가 더 있다. 양적인 목표를 세우기 부적절한 과제들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영단어 암기를 싫어했는데, 이와 관련한 계획은 항상 '시간' 단위로 세웠다. 하루에 30분은 꼭 단어를 외우자는 취지였다. 원래는 '단어 30개 외우기'와 같이 양적인 목표를 설정했었는데, 단어가 잘 외워지지 않는 날엔 몇 시간을 투자하고도 계획을 지키지 못했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의욕만 저하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후 시간을 단위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단어 30개 외우기'와 같은 목표보다 지키기 쉬웠고 의욕이 저하되지도 않았으며 습관들이기도 좋았다. 2차 과목 중에는 행정법이 가장 유사한 성격을 띤다. '쟁점 3개 외우기' 식의 양적인 계획 설정이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쟁점 30분간 외우기'와 같이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편이 낫다.


6. 계획 세우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자


  마지막으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계획 세우는 데에 쏟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이상하게 평소에는 느긋하고 여유 있다가도 계획을 세우려고 펜을 들면, '이럴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공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 일쑤다.

  그러나 계획을 세우는 일은 달리기 전 신발끈을 동여매는 일만큼이나, 아니 더 중요하다. 신발끈 묶는 시간이 아까워 끈을 질질 끌며 달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한번 더 강조하자면, 앞서 <아무리 급해도 재정비는 소홀히 하지 말자> 글에서 '피트 스톱'을 언급한 바 있는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건 피트 스톱을 거치지 않는 행위보다 위험하다.

  하루 계획을 짜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3분~5분 남짓이다. 이 시간을 아깝게 느껴선 안 된다. 하루 일과의 시작이자 합격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지도 없이 낯선 길을 가는 것과 같다. 그러니 지도를 펼치는 시간을 결코 아깝게 생각하지 말자.

  만일 월간/주간 계획을 미리 짜야한다면 당장 다가오는 주말에 하루 날 잡고 카페에서 느긋하지만 꼼꼼하게 짜 보기를 권한다. 계획도 실력이라, 자꾸 짜봐야 나아진다.


 



  행시 2차 발표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지금쯤 누군가는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3차 면접 준비를 시작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묵묵히 내년 시험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열심히 달렸음에도 고배를 마셨다면.. 먼저 그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서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다시 1년을 달려야 한다면 위 내용을 참고하여 계획을 세우기를 바란다. (올바른)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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