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I. 왜 나의 점수는 오르지 않을까
※ 아래 내용은 <PSAT 원래 이렇게 푸는거야>에 수록된 본문입니다.
출판사와 협의 후 도서 원문 일부를 브런치에 수록합니다. (구매링크는 본문 하단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치렀던 시험 대부분은 암기와 이해를 통해 쌓은 지식을 평가했다. 외워야 하는 내용이 다를 뿐 대비 전략은 같았다. 학교와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암기하고 문제를 풀면 그만이었다. 쏟은 시간과 성적이 비례했기에 성실함이 최우선의 가치였다. 그렇지만 PSAT에서는 그간의 방식이 도통 통하지 않는다. 많은 문제를 풀어도 성적이 오르지 않고, 학원 강의를 열심히 들어도 지지부진이다. 지금까지 잘 활용했던 갖가지 공부법이 죄다 무용지물로 느껴질 정도다. 그 느낌이 맞다. PSAT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시험이다. 기존의 공부법이 통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1. 지식을 평가하는 시험 (이하 암기 시험)
: 초중고 중간·기말고사, 고시 2차 시험, 수능,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
2. 판단력을 평가하는 시험 (이하 집중력 시험)
: PSAT, LEET, NCS를 비롯한 각종 인적성 평가
대개의 시험은 위 두 유형 중 하나에 해당한다. 암기 시험은 학창시절 중간고사를 생각하면 쉽다. 아는 문제를 푸는 데는 1분이면 충분하고 모르는 문제는 1시간을 줘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이해를 수반해야 하는 수학이나 영어도 공식이나 단어를 암기해야 함은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국어 비문학 문제 정도만이 PSAT과 유사했다. 반면 PSAT은 아무리 쉬운 문제라도 30초 만에 풀기란 어렵고,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1시간을 주면 누구나 풀 수 있다. PSAT은 집중력 시험의 큰형뻘이다. PSAT은 특정 분야에 대한 사전지식을 테스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IQ 테스트처럼 선천적 역량을 측정하는 시험은 아니다. (IQ 테스트는 선천적 능력인 지능을 측정하기 위한 테스트로 위 분류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IQ가 높으면 PSAT에 유리할 수는 있겠으나, 이는 모든 시험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PSAT은 실제 업무 현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하여 상황에 대한 빠른 이해와 순간적 판단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실무 역량(잠재력)의 확인이 목적이다. 대체 PSAT이 실무와 무슨 연관이 있냐고?
현장에서는 제한된 시간 내에 여러 현안에 대응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는 바쁠 때 일 평균 50통의 메일과 10통 내외의 전화를 받았다) 이때 우선순위를 빠르게 판단하는 게 중요한데, 만사를 제쳐 놓고 해결해야 하는 시급한 현안(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이 있는가 하면, 신중히 처리해야 하는 현안(소송, 법령 개정, 외교적 문제 등)도 있으며, 때로는 개입 시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되는 현안(정부개입에 따른 시장 교란 등)도 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크고 작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PSAT 문제를 푸는 건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과 유사하며, 여러 문제 중 어떤 문제를 먼저 해결할지 (또는 버릴지) 결정하는 것은 현안 해결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아래 표를 보자.
이처럼 PSAT은 실제와 유사한 환경에서의 문제해결능력(업무 적격성)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일종의 모의 실무 테스트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단의 예시를 참고하자) 현장에서는 실수가 없고 판단이 정확한 사람, 위급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을 두고 일을 잘한다고 평한다. 이런 사람들이 PSAT도 잘 푼다. 그런데 학원 강의를 듣고 모의고사를 푼다고 이런 역량을 키울 수 있을까?
긴박한 상황에서 집중력과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주체적으로 훈련을 해야 한다.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거나 맹목적으로 문제만 풀어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PSAT은 외양만 시험의 형태를 띨 뿐 실체는 스포츠에 가깝다. 이러한 PSAT의 본질은 모른 채 평소 암기 시험에 대비하듯 ‘공부’하려 했으니 결과가 좋았을 리 만무하다. 학원 덕에 점수가 오르긴 했다고? 같은 시간을 들여 올바르게 훈련했다면 더 높은 점수를 획득했으리라 장담한다. 아무리 교재를 읽고 강의를 들어도 실제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수영을 잘할 수 없는 것처럼, PSAT 또한 실전에 적합한 훈련을 거쳐야 실력을 기를 수 있다.
최근 LEET를 준비하는 지인이 DNA, RNA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걸 보았다. 왜 그런 책을 읽냐고 물었더니 강사가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관련 서적을 읽으라고 조언했단다. 그 강의는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LEET 언어이해 (LEET 언어이해는 PSAT 언어논리와 유사하다) 과목의 문제를 수십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가르치고, 배경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관련 서적을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있었다. 나름 인기강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피해자 수가 가늠이 되지 않아 아찔했다.
PSAT 수험생들에게도 문제를 풀 때 배경지식이 필요하냐는 질문을 심심찮게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PSAT은 암기 시험이 아니므로 배경지식은 필요 없다.
출제지침에도 ‘특정 분야에 대한 사전지식이 문제풀이에 도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이는 출제 검토 시 문제의 폐기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판단기준이 된다. 통상 ‘지문에 담기지 않은 지식이 문제의 답을 도출하는 데에 현저하게 유리하게 작용하는지’의 여부로 판단한다.
과학, 금융 등의 지문에서는 일부러 지나치게 전문적인 용어의 사용은 지양하고, 문외한이 읽어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한다. 지문에 등장하는 개념이 너무 난해할 경우 (분야와 관계없이) 일부러 첫 문단에 개념(키워드)을 설명하는 문단을 추가하기도 한다. 아무리 보완해도 배경지식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 문제를 폐기한다. 이것이 별도의 시간을 들여 배경지식을 쌓을 필요가 없는 이유다.
물론 배경지식이 있으면 유리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배경지식은 문제를 맞히기 위한 필수 요소가 아니다. 그러므로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PSAT 지문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만 권의 책 중 한 권의 내용을 발췌하거나, 혹은 출제자의 머릿속 지식을 풀어내 구성한다. 즉, 출제범위가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방대하다. 따라서 배경지식을 쌓아 대비하겠다는 전략은 무척 비효율적이다. 배경지식이 간혹 독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익숙한 주제가 등장하면 선입견을 갖거나 긴장이 풀려 실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PSAT은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설계된 시험이다. PSAT이 바라는 인재상(?)은 ‘아는 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 ‘낯선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다. 머릿속 지식은 2차 시험에서 뽐내자.
이 시험은 ‘새로운 정보를 정확하게(오류 없이) 이해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이때 정확한 이해는 집중력에서 나온다. 출제자가 던지는 다양한 유형의 질문은 지문 속에 등장한 다양한 키워드(A, B, C 등) 사이의 관계를 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문 속 개념 간의 관계만 파악하면 배경지식이 전혀 없어도 질문에 답할 수 있다.
PSAT은 시간 관리가 생명이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모든 시험의 공통점이지만, 시간을 확보할수록 점수가 오르는 시험은 많지 않다. 시간만 여유롭다면 문제를 더 맞힐 수 있는 PSAT과 같은 시험에서는 시간 절약이 점수 상승으로 직결된다. (암기 시험은 시간이 충분해도 점수가 크게 높아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PSAT에 대비할 때는 시간을 절약하는 법을 함께 익혀야 한다. 시간 관리만 잘해도 평균 2~3점은 우습게 오른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능력보다 문제마다 2~3초씩 단축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PSAT은 1차 시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PSAT을 준비하면서도 다음 관문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년 내내 PSAT에 시간을 쏟으면 2차 시험을 공부할 시간이 없다. 1차에서 떨어지나 2차에서 떨어지나 불합격이기는 마찬가지다. 최종합격을 위해서는 2차 시험의 공부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PSAT 준비는 시험 2~3개월 전부터 시작하면 충분하다. 더 오래 준비한다고 더 높은 성적을 받는 것도 아니다. 시험이 임박했을 때 집중해서 훈련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2차 시험을 준비하면 된다. 심지어 PSAT에 집중하는 그 기간에도 경제학, 행정법 등 주요 과목은 손에서 놓아선 안 된다. 1차 시험에 전력투구할수록 합격과 멀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브런치북 <PSAT 공부가 아닌 훈련이다>가 <PSAT 원래 이렇게 푸는거야>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2023년 기출문제 분석을 더했고, 본문의 많은 내용을 수정보완했으며 기존 브런치북에 싣지 못했던 내용도 더했습니다. 무엇보다 현직 사무관 10여명의 감수를 통해 설명이 모호했던 부분을 명료하게 다듬었습니다. 이제 종이책으로 편하게 만나보세요.
<도서 구매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