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4. 혹

시대가 가져다 준 상처

by 정준민



은희는 중2가 되어서야 귀 아래쪽에 혹이 생긴 것을 알게 된다. 의사 선생님이 왜 지금까지 몰랐냐고 묻자 은희의 답.


“이제야 알았어요.”


그렇다면 갑작스레 알게 된 혹의 상징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장 보통의 존재인 은희가 80~9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그저 존재하기 위해, 나아가 앞으로를 살아가기 위해 갖게 된 상처라고 할 수 있다.

오빠에게 받게 되는 가혹한 폭행, 부모님의 차별과 은근한 무시, 남자 친구와 후배 수희에게 받게 되는 배신감, 단짝 친구의 배신으로 느끼게 되는 분노, 속마음을 알아준다고 생각한 영지와의 갑작스러운 단절과 죽음. 이런 상처들이 지금까지는 상처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폭력을 당한 것이었고 상처였음을 알게 되는 중학교 2학년의 은희. 이는 영지가 은희에게 해 준 말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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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그 상처가 이상한 것이고 무조건 부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존재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보편적인 상처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저 위로해주는 영지의 존재는 특별하다. 이는 혹을 제거할 때, 흉터가 남을 수 있다는 것에 강하게 반응하는 아버지의 태도와는 상반된다. 흉터가 남는 것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상징하는 것은 은희의 상처를 부정하고, 은폐하려고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은희의 오빠 대훈의 폭력을 알고도 묵인하는 부모님(그 시대의 어른들)의 태도가 어떤 시대정신과 사고방식으로부터 나오는지를 알게 해 준다. 이런 부모님의 사고방식을 알게 모르게 당연하듯 받아들이고 있던 회복 중인 은희를 영지가 찾아가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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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알았지?”


1994년의 강남 대치동, 가장 보통의 존재 은희. 그녀는 시대가 가져다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고, 삶을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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