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3. 빛과 어둠

“제 삶도 언제가 빛이 날까요?”

by 정준민

영원한 집은 존재할 수 없다는 깨달음은 삶에 빛과 어둠이 뒤섞여 찾아온다는 앎으로 이어진다. 영지의 죽음을 애도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몰래 새벽에 성수대교로 가는 차 안. 그곳에서 바라본 터널의 조명등과 어둠. 이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미장센은 은희가 삶에 있어 영원한 빛도, 영원한 어둠도 존재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제 삶도 언제가 빛이 날까요?”


영지에게 저런 질문을 던지며, 어둠만이 자기 삶을 가득 채운다고 느꼈던 은희가, 이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삶에서도 빛과 어둠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단지 빛도 어둠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영원하지 않지만. 이제 은희는 영지가 해주었던 말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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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어둠의 순간. 그 순간에도 다음에 찾아올 빛의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게 된 것. 이는 80~90년대의 대한민국이 가장 보통의 존재인 은희에게 준, 그리고 그저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갖게 된 상처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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