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성덕, 이자까
온 국민이 미니홈피 하나 정도는 갖고 있었던 그 시절 어느날, 미니홈피 쪽지로 문자 하나가 왔다. "혹시 00여중 나온 000 아닌가요?" 쪽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자마자 알았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같이 보낸 친구라는 것을. 나는 바로 답장을 보냈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은 우리는 통화를 했고 나는 바로 KTX표를 예약하고 그 주 주말 부산으로 향했다. 따져보니 30여년만이었다. 설레는 가슴과 머릿속을 스쳐가는 추억들 덕분에 가는 길이 먼지 지루한지 조차 모르고 혼자 뭉클했다가 미소를 지었다가 또 만나면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하나 어떻게 변했을까를 생각하다보니 3시간이란 시간을 금방 흘러갔다.
부산역이다. 엄마 아빠가 다 살아계셨고, 힘들지만 행복했던, 스포츠기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지금 나를 있게 한 곳.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고 서둘러 기차에서 내려 역사로 올라가려던 순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친구였다. 쪽지를 보낸 친구와 늘 몰려다녔던 또한명의 친구. 내가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그냥 기다릴 수가 없어서 플랫폼까지 내려와 있었다고. 30년 세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린 단번에 알아봤고 바로 서로를 안아줬다. 고등학교 시절 홀연히 전학을 가버린 나 때문에 우리는 어디로 대학을 갔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궁금한게 너무 많았지만 나중에 이야기 하잔다. 친구들이 기다린다고. 내가 온다고 도대체 내가 뭐길래 친구들은 부산에서 한창 뜨고 있던 패밀리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이야기가 많았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또 한명의 친구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의 근황을 묻고 내가 하고 있는 듣더니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어릴 때 말버릇처럼 그렇게 하고 싶다던 그 일을 진짜 하고 있구나!"
맞다. 나는 부모님께도 털어놓지 못했던 나의 꿈을 친구 한두명에게만 이야기를 했었다. 당시만 해도 스포츠관련 일은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고 여자가 스포츠계에서 전문가가 된다는게, 아니 전문가가 아니어도 이 업계에서 일을 한다는 자체가 생소할 때였기에 어쩜 나의 말은 그냥 어린 소녀가 꿈꾸는 희망 딱 그 정도로만 생각이 됐을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얼마나 허황된 꿈이란 말인가. 아무 정보도 없고 뭘해야 스포츠계에서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 수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는 그때 나는 어떻게 그런 꿈을 꿨단 말인가. 잊고 있었지만 나는 그 꿈을 이뤄낸 것이었다. 순탄치 않았지만 돌아돌아 나는 내가 좋아했던 선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일을 함께 하기도 하며 20년 넘는 시간을 보냈고 지금까지도 스포츠계 핫 이슈과 선수들을 쫓고 있다. 성공한 덕후 성덕이 바로 나였던 것. 좋아해서 하고 싶었고, 그래서 가장 잘 하는 일이 된 스포츠전문작가. 그렇다. "내가 진짜 이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