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의 기쁨과 슬픔 중 슬픔 편.
‘평화’롭고 싶은 토요일이다.
지금 나는 독일 한 카페에 앉아서 핫초코와 애플파이를 먹고 있다. 매장 안엔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브런치를 주문해 먹고 있는 연인이 있고, 가벼운 멜로디의 밴드 노래가 매장에 흘러나온다. 창문 너머 테라스에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을 즐기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낭만적인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이런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난, 완전히 젖어 축축한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어느덧 독일 25일 차, 이제 다시 한국에 돌아가도 괜찮지 않나 싶다.
적응했다고 믿었던 독일 생활은 사실 독일 생활의 아름다운 부분만 본 것이다. 운 좋게도 20일 전까지는 알지 못하다가, 조금 마음이 풀어진 이후에서야 독일 생활에서의 고난을 경험했다. 어쩌면 일종의 신고식과도 같은 일이기도 하다. 모든 일은 바짝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는 벌어지지 않는다. 약간의 틈이 생겼을 때, 그때에서야 온갖 일들은 닥쳐온다. 그러나 알면서도, 풀어지는 마음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독일에서의 생활이 꽤 좋았다.
불행의 시작은 목요일부터였다. 코블렌츠를 가기로 한 날이었고 나는 플릭스 버스를, 친구는 기차를 타고 출발하기로 했다. 친구는 학생 기차 이용 티켓이 있었고, 여행객으로 간 나는 티켓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먼저 출발했고 이어서 나는 플릭스 버스 정류장에 갔다. 이미 한 번 타본 적 있는 버스이기에 어떤 문제도 없을 줄 알았다.
미리 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도착할 시간에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꼈고 그건 내 주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나처럼 여행을 온 모습이었다. 무거운 캐리어 하나를 들고 격양된 목소리로 친구와 버스 연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에게 다가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현재 버스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버스는 다행스럽게도 마인츠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제야 안심하고, 젤리를 나눠 먹고 다시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버스 정류장도 이곳이 맞다고 했다. 30분이 지났을 무렵, 아직도 버스가 도착하지 않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버스 위치를 확인했는데 이미 이 지역을 떠나 빙엔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버스 예매로 인해 10유로를 썼지만, 나보다 먼저 출발한 친구가 코블렌츠행 기차를 타고 있었기에 더는 버스를 기다릴 수 없었다. 마침 3분 뒤에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고, 나는 재빨리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헐레벌떡 도착했다. 헉헉거리며 기차를 탔고 결국 늦었지만 코블렌츠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힘든 하루였기에 코블렌츠의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그 주에 하이델베르크를 다녀왔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만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어렵게 왔기에 마음을 다잡아가며 구경했다.
어쨌든 모르는 도시를 구경한다는 건 꽤 멋진 일이다. 코블렌츠 성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넓고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강을 건넜고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은 하이델베르크와는 또 달랐다. 빨간 지붕이 가득했던 하이델베르크와는 달리 코블렌츠는 톤 다운된 색의 지붕이 많았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이곳의 풍경도 역시 좋았다. 그래도 오길 잘했다며 친구와 이야기하고는 다시 내려갔다.
문제는 또 돌아가는 기차에서 발생했다. 우리가 타려는 기차는 RE2 기차였다. 미리 정해진 플랫폼에 가 있었고, 딱 그 시간에 기차가 도착했다. 차에 타고 경치를 좀 구경하려고 하는데, 친구가 아무래도 기차가 바뀐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시 보니 RE2가 우리가 타자마자 RE1로 바뀐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은 한국에서 겪어본 적이 없다. 타고나니 번호가 바뀌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우리 말고 몇 명의 사람만이 이 상황을 인지하고 다시 기차를 내렸다. 이미 20분 정도 간 상태였는데, 다시 내려서 반대편 코블렌츠행을 타야만 했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또 검표하는 분을 만났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말로는 우리가 re버스를 구매했기 때문에 똑같은 re 버스표를 구매해야만 한다고 말하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내 잘못도 아닌 일에 시간이 계속 집에 가는 시간이 늦어진다는 사실이 화가 났고, 억울했다.
아침에도 버스에서 한 차례 일을 겪었기에 갈 때는 아무 일이 없을 줄 알았지만, 또 똑같이 당하자 기운이 쭉 빠졌다. 다시 기차를 탔고, 또 이런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상황을 검표원이 이해했고, 우리는 비로소 집에 올 수 있었다. 이게 내가 목요일에 겪은 일이다.
이렇게 하루의 경험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불행은 금요일에도 계속됐다. 금요일은 독일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뒤셀도르프로 향했다. 6개월 동안 문자로만 연락하던 탄뎀 파트너와 만나는 첫 번째 날이기도 했다. 역시나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독일어로 대화했고 말이 통함에 신기함을 느꼈다. 친구에게 준비한 편지와 선물을 주고, 마음 아픈 이별을 하고 다시 프랑크 푸르트에 도착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나는 이미 아침에 프랑크푸르트와 마인츠를 이동하는 데이 티켓을 구매했는데, 여행이 끝나고 마음이 풀어져서 그만 그 티켓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티켓 문제가 없었기에 이번에도 그저 그럴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S반에 검표원이 탔고, 나는 내 티켓을 보여주려고 핸드폰을 꺼냈는데 갑자기 내 티켓이 애플리케이션에서 뜨지 않는 것이다.
당황스럽고 긴장되는 마음에 갑자기 심장이 벌렁벌렁해졌다.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어쨌든 내 상황을 독일어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에 번역기를 돌려서 상황을 설명했다. 이제껏 만나본 어떤 검표원보다 더 강경한 검표원이었다. 문득 지금까지 만났던 검표원들이 친절한 편이었다는 것을 이번 경험으로 깨달았다.
고개를 가로젓던 검표원이 주소, 여권 번호 등을 물어보길래 나는 티켓 조회를 하려는 건 줄 알고 모두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것은 60유로의 벌금 영수증이었다.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한국에서도 벌금을 문 적이 없었는데, 독일에서 겪게 된 것이다. 별 일이 다 있다고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아직도 마음이 좋지 않다. 내가 영어를 좀 더 잘했으면, 내가 독일어를 좀 더 잘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답답함이 머리에 계속 남았다. 내 의사를 표현하지 못함에서 오는 억울함이 이런 마음이었음을 그날 깨달았다.
결국 벌금 영수증과 함께 S반에서 내리고 다시 어플을 확인해 보니, 비로소 티켓이 다시 뜨기 시작했다. 너무도 황당한 경험이었다. 와이파이 문제였을까? 게다가 티켓 검사로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해서 우린 밤 중에 낯선 곳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와야만 했다. 어두운 밤의 독일 길거리는 무서웠지만, 그보다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벌금 영수증에 이미 머리가 복잡해져 있었다. 정신없이 집에 돌아오고, 긴장으로 인해 복통마저 있어서 약 한 알을 먹고 잠이 들었다.
잠자기 전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벌금을 해결하고자 DB에 메일을 보내는 일이었다. 딱 금요일 밤이었기에 주말에 내 글을 보지 않을 것을 잘 알았고, 기다림이 힘들었다. 7일 안에 돈을 납부해야 했기에 월요일에 나는 상황을 정리하러 다시 프랑크푸르트 역사관에 가야만 한다.
여러 복잡한 상황 속에서 달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동네를 비쳤다. 저렇게 가까이 있는 듯 큰 달은 독일에 와서 처음 봤고, 주변은 전부 컴컴한데 달만은 밝게 빛났다. 여느 때였더라면 당장 핸드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었겠지만 그때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달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달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아주 약간은 위로가 됐다. 내 마음은 심란한데 달빛은 참 밝았다.
그렇게 토요일이 됐다. 목, 금요일 모두 정신이 없었던 하루가 지나갔고, 나는 오늘 눈을 뜨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모든 잡념을 잊고 잠으로 이 모든 상황을 도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피도, 잡념을 하는 건 얼마 남지 않는 내 독일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다.
그래서 오늘도 밖으로 나왔다. 자전거나 타며 상념을 잊으려고 했지만, 자전거를 빌린 동시에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거짓말처럼! 불행도 이런 불행이 있냐며 하늘도 원망스럽고 힘들었지만, 오늘 집에만 있기는 정말 싫었기에 다시 집으로 가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정말 억수로 쏟아졌고, 순식간에 어두워진 거리가 무서웠기도 했지만 계속 걸었다. 그리고 한 카페에 도착했다. 이미 쫄딱 젖었지만 바지를 좀 말리면서 글도 쓰고 싶었다. 삼일 동안 일어난 일들을 적고 적고 끝까지 적어서 아예 잊어버리지 않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 상황을 글로 남기고 싶어 하는 내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고민해보기도 했다.
카페에서 나는 '급조된 행복'을 즐겼다. 힘든 상황을 잊는 법은 여러 방법이 있다. 그중 오늘은 마음이 더 이상 놀랄 일 없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하는 '급조된 행복' 방법을 사용했다. 맛있는 음료와 빵으로 당을 충전하고, 집이 아닌 카페에서 글을 쓰는 비일상성은 급조된 행복으로서 조건이 충족됐다. 나는 달다구리한 음식을 먹으며 두 시간째 이 글을 쓰고, 오렌지주스도 하나 더 시켜서 먹은 뒤 카페를 나섰다.
온 지 1시간쯤 지났을까. 이제 다행히 비가 그쳤다. 아직도 내 운동화와 양말은 축축하지만 기분은 좀 나아졌다. 해가 나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다시 거리에 돌아다닌다. 이런 변덕스러움도 마인츠에선 참 일상적인 날씨다. 카페에서 나와서 비로 인해 못 탔던 자전거를 탔다. 어디든지 달리고 싶었다. 자전거 정말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곳에선 어쩐지 혼자 걸어 다니는 게 영 불편하다. 사실 자전거 정말 좋아하는 것도 맞다.
라인강을 따라 익숙한 코스로 라이딩을 하다가 맥주집에 들렀다. 전부터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망설였는데, 오늘은 갈까 말까를 세 번 망설이다가 내친김에 들어갔다. 이 역시 '급조된 행복' 중 하나였다. 목, 금요일의 찝찝한 기분을 이겨내려면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다행히 어찌해서 주문이 되었고, 자전거가 있으니 알코올 프리 0도짜리 맥주를 마셨다. 강가 바로 앞에 있는 이 맥주집은 풍경 맛집이다. 알코올 프리 맥주만 시켜놓고 물결만 멍하게 감상했다.
그렇게 혼자 앉아있는데 한 독일인 할아버지가 독일어로 말을 걸었다. 그 카페테라스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강을 바라보며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알아듣지 못했다. 그 할아버지는 사실, 내가 아까 라이딩할 때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던 할아버지였다. 근처에 맥주집 겸 카페가 딱 한 곳이라 우리의 동선이 겹쳤다.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나에게 건배사를 하자고 했다. 젊은이들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독일 할아버지와 프로스트! 를 외치며 건배했다.
한번 일 줄 알았는데 조금 뒤 한번 더 외치자고 말씀하셨고, 또 한 번 더 했다. 그래 또 언제 여기서 독일 할아버지랑 건배를 해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도 역시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건배를 했다.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진짜 별 경험을 다 해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꿀꺽꿀꺽 알코올 프리 맥주를 다 마시고 할아버지께 인사하고 나왔다.
그러고 집에 오는데 처음, 집에서 나갔을 때와 달리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원래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듯이 여행에도 마찬가지일 거야, 라며 한 달 내내 '희'만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했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신경 쓰이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언젠간 추억이 될 수 있다. 단, 시간이 지나야...! 추억이겠지. 벌써 나에게 일어난 '애'의 감정은 이렇게 길고 긴 글을 쓰게 하고 있다. 찐한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을 내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 단, 월요일에 무사히 이 일을 마무리해야 그나마 액땜했다고 생각하겠다.
온전히 모든 일이 좋을 수는 없다. 그게 아무리 여행 목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미 안 좋은 일들을 겪었으니 결국 첫 마음을 다시 지키는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이 났다. 조심조심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첫날처럼. 앞으로는 독일어랑 영어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곤란한 일이 생겨도 논리적으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공부하겠다는 식의 으레 하는 다짐도 또다시 해본다.
어쨌든 나는 오늘, 내게 찾아온 소소한 불행을 생각하는 마을을 떨쳐내고자 했다. 급조하긴 했지만, 행복들을 찾고자 노력하는 토요일 오후 시간을 보냈다. 그건 내가, 시간을 소중히 보내야 하는 '한 달 살이'이기 때문이다. 불행만을 생각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어쩌면 여행에서의 희로애락도 한 달 분량으로 짧고 굵게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닐까. 별 생각을 다 해본다. 어쨌든 내일도 내일의 새로움을 찾아 도전한다. 그게 내가 슬픔을 잊는 방법이고 내가 세계를 알아가는 방식이자 발버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