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독일어 더빙으로 본 영화 <미나리>

독일 영화관에서 본 <미나리>, 그리고더빙 문화

by 북극성 문학일기

<미나리> 영화 리뷰나 영상 언어 관련해서는 사실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또한 나는 이민자도 아니기에 영화 전반적으로 녹아져 있는 이민자 정서를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저 가볍게, 독일에서 영화관을 방문해 한국 배우가 나온 영화를 본 경험을 짧게 적고자 한다.



독일에 와서 그동안 도서관, 카페, 음식점을 기웃거리면서 다녀봤다. 코로나로 인해 적극적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한 번씩은 가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독일 영화관에 방문했다. 뭔가 색다른 건 없을까?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일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면서부터는 이런 고민을 하곤 한다.


어느 주말이었다. 한 달간 아일랜드에서 생활한 적 있는 친구와 전화하다가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올해 우린 영화 수업을 함께 들었고 독일 실험 스릴러 영화인 Run Lola Run을 배웠다. 주인공이 마치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영화 기법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친구에게 독일 여행담을 들려주며, 프랑크푸르트 영화 박물관에서 런 롤라 런의 빨간 가발을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업으로 다룬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되는 일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통화를 하며 친구는 여행 기간 동안 엽서 모으기, 국기 그려진 배지 사기, 나 자신에게 편지 보내기, 그 나라 가수의 음반 사기 등의 여행 팁을 공유해줬다. 또한 최대한 다양한 장소를 가보라고 조언했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다 보니 문득 독일 영화관이 궁금해졌다.


문제는 영화였다. 영화관에 가면 영화를 봐야 하는데 독일 영화를 보면 알아듣지 못할 거고, 그렇다고 독일어 자막으로 영화를 보자니 언어 실력으로 인해 그것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영화 미나리가 생각났다. 윤여정 배우님이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소식을 나 역시 뉴스로 접했다. 그러나 지금은 벌써 7월, 벌써 3개월이나 지났기에 지금도 영화관에서 상영하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딱히 찾아보지 않고 시간은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할 일이 딱히 없는 주말이었다. 일요일에 문을 닫는 가게가 많아서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려나 고민하다가 다시 영화관이 떠올랐다. 마인츠에도 영화관은 꽤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인지 임시 휴업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여러 영화관을 찾아보다가 미나리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발견했다. 설레는 마음에 바로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고 결심했고 사이트에서 예약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안내 문구가 영화관 사이트에 명시돼 있었다. 보고 싶은 시간대, 볼 영화, 그리고 인적사항을 기입하고 난 다음에 영화관으로 향했다. 작은 영화관이라서 그런지 1층에는 하나의 상영관만이 있었다. 내가 간 영화관은 따로 티켓이 있지는 않고, 종이를 찢어서 그 위에 내 좌석을 수기로 작성해 주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놀랍게도 영화관에서도 박물관처럼 학생 할인을 해줘서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보고 왔다.



독일 오기 전에 어렴풋하게 사람들에게 독일의 더빙 문화를 들은 적이 있다. 외국 영화를 독일어로 더빙해서 상영하는 거다. 거의 대부분의 외화는 독일어로 더빙해서 상영하는 문화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도 과거에 외화를 더빙하기도 했고, 현재도 어린아이들이 주로 보는 애니메이션 더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주변 독일 친구에게 물어본 결과, 독일에서도 이런 문화는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이다. 친구의 경우는 독일 더빙 문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쨌든 마찬가지로 미나리도 더빙본으로 상영하고 있었다. 독일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한국어로 쉽게 보나 했는데 정말 아쉬웠다. 영화관에서는 영화 원작을 상영하는 경우에는 원작 그대로라고 따로 표시를 해놓고 상영한다. 내가 방문한 그 주말에는 더빙본만 상영했기 때문에 더빙본으로 보게 됐다.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기에 배우들은 영어, 한국어를 사용했고, 더빙본에서는 이 중 영어를 더빙하고자 했다.


독일어 더빙으로 본 영화지만 중간중간 한국어도 많이 나오고, 무엇보다 그냥 영상만 보더라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기에 영화 줄거리를 따라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 특히 한예리 배우의 눈빛 연기가 인상 깊었다. 딸을 위해 한국에서 먼 곳까지 길을 떠나 와 준 엄마를 향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애틋함이 담뿍 담긴 연기였다. 또한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의 상징성은 연고 없는 타지에서 정착하고자 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했다. 나는 한 달 여행으로 독일을 왔지만, '내가 진짜 여기서 정착한다면?' 겪게 될 일들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좋은 영화였고 낯선 곳에서 보게 돼 더욱 이입이 된 영화였다. 반면, '더빙' 부분에서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우선, 독일에서 미나리를 더빙하면서 한국어는 원래 배우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주고, 영어를 사용할 때만 독일어로 더빙하기로 기획한 줄 알았다. 모니카 역이 한국어를 할 때는 한예리 배우 목소리가 나오고, 영어를 사용할 때는 독일어로 더빙돼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티븐 연이 연기한 제이콥 역도 한국어, 영어를 모두 사용하는 거로 알고 있지만 더빙본에서는 독일어로만 더빙했다. 이런 점이 혼란스러웠다.


또한 윤여정 배우의 목소리 더빙은 두 사람이 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 한 번 영화를 보러 가서 목소리를 들었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윤여정 배우가 영어 할 때 영어를 더빙하는 사람,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를 빠르게 섞어서 말할 때 한국어를 더빙하는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윤여정 배우의 목소리도 들리고, 중간에 독일 더빙 목소리가 들리고, 한국어를 한국어 그대로 읽어서 더빙하는 목소리들이 한 영화에 동시에 들리니 배우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한국어를 굳이 한국어 그대로 더빙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빙으로 인해 약간 어설픈 한국어를 사용하는 건 순자 역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 영화는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뤘기에 양쪽 언어를 모두 사용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특징을 살리기 위해 더빙을 영어만 더빙하고자 했다는 추측을 했지만, 모든 배역에게 규칙으로 적용된 건 아니었다.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이것 역시 독일 문화 중 하나이니 경험해 봐서 좋았다. 또한 나 포함 10명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봤는데, 웃음 포인트가 나와 묘하게 다른 점도 신선했다. 한국 할머니들의 정서를 잘 아는 난 순자가 나오는 부분에서 가장 많이 웃었던 반면, 다른 사람들은 교회 이야기가 나올 때 더 공감하는 듯했다.


어떤 장면에서는 우리가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막내아들 데이빗의 귀여운 모습을 볼 때나, 결말부에서 목도하게 되는 장면들을 보면서 함께 탄식했다. 크지 않은 영화관에서 숨죽였다가 탄식했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했다.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불이 켜졌을 때, 나 혼자서 괜히 이 9명의 사람들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영화 미나리를 독일에서 본 경험을 가볍게 적어보았다. 짧게 적으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다. 독일 더빙문화는 독특했고 더욱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이다. 앞으로 관련 기사를 더욱 찾아봐도 좋겠다. 어쨌든, 한국에 도착하면 미나리를 다시 보려고 한다. 독일에서의 경험이 덧대어져 더욱 다층적으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keyword
이전 19화#18.온전히 다 좋을 순 없어, 그것 또한 여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