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친구와 독일에서 1달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

우리의 만남과 독일에서의 일상

by 북극성 문학일기


스무 번째로 쓰게 될 글은 독일에서 함께, 한 달 동안 살고 있는 친구 이야기로 쓰고 싶었다. 독일어 공부를 결심하게 된 여러 계기 중 하나의 계기가 바로 이 친구였고 독일에 한 달 살이로 올 수 있었던 이유도 친구 덕분이다. 스무 번째 글을 쓰는 특별한 오늘은, 내 친구 A에 관해 써보고자 한다.




-우리의 만남

우린 대학교 새내기 때 학교 교양 수업에서 만났다. 그 수업은 졸업하기 위해서는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는데, 새내기들에게 학교 소개와 더불어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5명 정도가 팀을 이뤄서 매주 발표하는 소규모 프로젝트를 매주 했다. 그 교양에서 친구 A를 그때 처음 만났다. 사실 그때의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흥미진진한 내용을 다루는 게 아니었고 팀플로 만난 인연이 대개 그렇듯 한번 보고 말 사이라고 여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우리 조는 매주 프로젝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고 급기야 마지막에는 좋은 팀워크로 얼떨결에 학교 상까지 받게 됐다.


1학기가 끝나고 수업도 끝나면서 A도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국문과, 친구는 독문과였기에 우린 서로 별다른 접점이 없었기도 했다. 3학년이 되고, 우리는 엉뚱한 장소에서 다시 재회한다. 바로 '문화 콘텐츠'를 배우는 학과에서이다.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 청강을 신청한 수업에 A도 앉아 있었다. 1년 사이에 스타일이 많이 달라진 A는 호탕한 웃음과 붙임성은 여전했다. 10명도 채 듣지 않는 그 수업에서 우린 매주 마주쳤고 인사를 건넸다.


우연은 계속 만들어졌다. 독일 문학 작품을 읽고 토론을 하는 학회에 들어간 첫날, 또 A를 보게 된 거다. A는 독문과 활동을 아주 열심히 하는 친구였고 학회도 참여하고 있었다. 거듭된 우연이 우리를 인연으로 만들었다. 같은 사람을 우연히 3번 보면 결혼해야 한다고 했다며 A는 농담했다. 접점이 그만큼 많다는 건 우리의 지향점이 비슷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후로도 우린 학교 복도에서, 계단에서, 학생회관에서 자주 마주쳤다. 그리고 어느새 눈 떠 보니 이렇게 친구가 돼 있다. 인연이란 참 모르겠다.



-배우와 관객

A는 독일 문학을 바탕으로 한 연극의 배우로서 대학 학술제에 참여했다. 독일어에 관심은 가지만 선뜻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했을 때, 학교 게시판에 있는 원어연극 포스터를 봤다. 원어로 말하는 연극을 본 적이 없기에 이번 기회에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가족들과 함께 우르르 연극을 보러 갔다. 지금 생각해도 의아한 건 정작 내가 학술제에 연극배우로 참여했을 땐, 가족들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는 거다. 또한 학술제에는 보통 배우들이나 관계자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니면 잘 오지 않는다. 규모가 큰 학술제 연극이었기에 기대감을 갖고 가족들과 함께 보러 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우연히 A를 봤다. A는 극의 주인공을 맡아서 연기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직접 듣는 독일어 발음은 거세게 느껴졌지만 진지한 주제에 관해 논하는 연극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A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떨릴 텐데도 연기를 잘했고 덕분에 관객인 나는 완전히 몰입하면서 연극을 볼 수 있었다. 그날, 뽑기에 당첨돼 독일어 학원 쿠폰을 받았고 쓰지는 않았지만 부적처럼 늘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A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 독일어는 내게 독일어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때 싹튼 독일어라는 씨앗이 지금까지 더디지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금 알게 된 다른 독문과 지인들도 모두 배우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렇게 우린 팀플에서 만난 팀원, 청강생과 수강생, 학회원, 관객과 배우 등 다양한 관계로 만났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교환학생을 포기한 나와 방문학생이 미뤄진 A는 당면한 상황도 비슷했다. 교환학생을 완전히 포기한 나와는 다르게 A는 이번에는 꼭 가야겠다며 독일행을 선택했고, 덕분에 방학 동안 A의 집에서 한 달 살이를 할 수 있게 됐다. 나도 더 이상 독일행을 미룰 수 없었기에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독일에 왔다.



-1달 살이, 함께.

친구와의 한 달 살이를 결정하고 난 뒤부터도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우선, 나는 친구와 둘이 오랜 기간을 살아본 경험이 없었다. 자취 경험도 없는 내가 친구와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되면 서로 싸우고 물어뜯느라 시간이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동거 역시 부딪혀 봐야지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는 일이기에 짐을 싸고 독일로 왔다. 독일행 첫날, 친구가 마중 나와줬고 낯선 땅에서 봐서 그런지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우린 식비와 공동생활에 필요한 돈을 합쳐서 생활하기로 했다. 음식,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의 과업도 함께 하고 분담했다. 음식을 잘 만들고 좋아하는 A는 음식을 했고, 나는 설거지와 재료 손질을 맡았다. 마늘 하나 까기도 어려워했지만 지금은 마늘 까고 빻는 일까지 쉽게 한다. A의 곁에서 많이 배웠다. 빨래는 일요일마다, 청소는 미루고 미루다가 하는 식으로 했다. 다행히 이런 분업과 관련해서는 잘 맞았기 때문에 무사히 한 달을 싸우지 않고 보낼 수 있었다.


다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여행 부분이었다. 한국에서도 일주일에 거의 날마다 나가는 나와는 달리 A는 일주일에 한 번 나갈까 말까 한다고 했다. 내가 오자 A는 일주일에 세 번으로 외출을 늘렸고, 집에 있는 날이면 그저 푹 자곤 했다. 나는 비가 오든 해가 너무 쨍쨍하든 자전거를 타러 갔다. 나에겐 한 달이라는 한정된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함께 여행을 가는 날도 평균 이만 보는 거뜬히 걸었다. 우리에게 차는 없지만 건강한 다리는 있었다. 덕분에 돌아오니 5kg가 빠져 있었다.



-독일에서 먹은 한국 음식

A는 음식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본래 모든 결정이 빠른 편이지만 오늘 뭐 먹지? 를 고민하는 그는 꽤 진지하다. 어떨 때는 한 시간 걸려서 고민하다가 결국 주문 시간이 끝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도 있다고 한다. 반면, 나는 모든 음식을 잘 먹고 호불호도 뚜렷하지 않지만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한다. 엄청 배고파하다가 금방 배가 채워지는 타입이다. 이런 우리는 한 달 동안 다양한 음식을 해 먹었다. A는 본래 자취할 때는 음식을 많이 해서 일주일 내내 먹지만 함께 사는 기간 동안은 그 양을 줄이고 대신 여러 음식을 시도했다.

무궁무진한 A의 요리실력 덕에 한국 음식이 그리울 틈이 없었다.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냐는 말에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아시아 마트에서 1kg 김치를 사서 일주일 안에 다 해치웠던 우리였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음식들이 생각나서 침이 고인다. 가장 맛있던 음식은 순두부찌개, 두 그릇이나 먹었던 음식은 미역국, 돌아오기 마지막 날에는 냉면을 먹었다. 그 외에도 야식으로 먹은 비빔국수와 맥주. 잊지 못할 거다. A는 음식들을 그저 뚝딱- 만들었다. 나중에는 김치까지 직접 만든다고 했는데 그건 힘들 것 같아 뜯어말렸다.


일주일에 한 번, 나도 요리를 함께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영화를 보는 날로 정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즐거운 주말을 보낼 수 있는 요리를 검색했다. 가장 처음 만든 건 딜 버터와 레모네이드이다. 상큼한 레몬 향이 올라오는 딜 버터를 꽤 많이 만들었는데 아직 냉장고 안에 가득이다. 바질 페스토, 핫케이크도 만들었다. 부르스케타를 만들어서 먹는 날엔 뤼데스 하임에서 사 온 아이스 와인을 마시며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봤다. 온몸이 늘어지는 주말, 독일로 여행을 온 기분이 다시금 났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자취 경험이 없다. 내가 먹을 음식을 위해 장을 주기적으로 본 적도 없고, 조리 과정도 잘 알지 못한다. 주기적으로 마트를 가서 장을 보는 과정의 지난함을 독일에 와서 알게 됐고, 맛있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먹는 즐거움과 그 노동의 무게도 경험했다. 언젠가 독립해서 혼자 살게 된다면 이때의 언제 경험이 생각 날 거다. 언젠가 나도 A처럼 뚝딱,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


-영화, 그리고 술

함께 사는 즐거움은 언제나 대화 속에 있었다. 날마다 대화를 하는 데도 날마다 새롭게 A를 알아갔다. 하루는 A가 본인의 TMI를 한 시간 내내 말해준 적이 있는데, 그날은 좀 피곤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어!) 어쨌든 우린 끝없이 대화했다. 지금 이곳에서 대화하는 우리의 시간은 현재에 머물러 있지만 대화하는 순간에는 미래, 유년 시절, 고3, 초등학생 때의 어느 순간에 머물렀다. 시간은 뒤죽박죽 흘렀고 공유된 시간 속에서 어린 시절의 A부터 현재의 A까지의 몇몇 모습들을 알아갔다.


A를 이루고 있는 건 현재의 A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그건 그의 타투의 모습과도 닮았다. 몸에 새겨진 시점이 다른 타투처럼, 과거의 모습들이 하나둘씩 모여 현재의 A를, 그리고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다. 몸에 새겨진 타투를 소개하듯이 우린 과거의 우리 자신을 대화 자리에 데리고 와서 서로에게 소개했다. "인사해. 고 3, 모든 게 두려웠지만 동시에 허무주의자였던 학생 시절의 나를 소개할게" 하면, "혼자서도 너무 잘한 나머지, 오히려 사람들이 신경 써주지 않아 속상했던 고 3"의 A를 소개받았다.


이렇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아도 대화를 잘 나누는 우리였지만, 우리의 대화를 더 풍성하게 한 요소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영화와 술이다. 사실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신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린 그저 더워서 술을 먹었을 뿐이다, 라며 변명을 해 본다. 저녁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는 순간 우리는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둘이 앉아서 맛있는 밥을 먹으며 예능을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다. 쓴 술을 못 마시는 우리는 달짝지근한 술을 홀짝거리며 그렇게 밤을 보냈다.


술이 모여있을 이유를 만들어준다면, 영화. 영화도 역시 좋은 대화 소재가 됐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평생 우리끼리만 볼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 영상 안에는 영화를 보고 슬퍼서 울고 있는 내 모습이, 영화 전개에 화가 나서 말이 빨라진 A의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보는가가 영화의 완성이라는 왕가위 감독의 말처럼, 독일에서 A와 함께 봤기에 내게 완성으로 다가온 영화들이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매주 본 영화들에서 그 주제의 연관성도 발견했다. '사랑'을 주제로 <해피투게더>, <이터널 선샤인>을 봤고, 여성 연대의 관점에서 <델마와 루이스>와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봤다. 여행이라는 큰 주제에서 <카모메 식당>과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는 것을 끝으로 우리의 영화 감상도 끝이 났다. 이 좋은 영화들을 함께 볼 친구가 있어서 그 즐거움이 두 배가 됐다. 누군가 장기간 여행을 떠날 일이 있다면, 꼭 그 여행지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오라고 추천해 주고 싶어 졌다. 여행지를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그곳에서 본 영화를 기억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어둠 속의 대화.



1달 동안 가장 좋았던 시간으로 나는 오늘이 떠오를 것 같아.


어느 새벽 4시, A는 이렇게 말했다. 주변은 온통 깜깜했고 우리는 잠옷 차림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우리 손엔 라들러가 있고 창 밖을 환히 열어 놓았다는 것. 창 밖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고 우린 달이 점점 기울어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별을 관측하려면 우리가 있는 곳이 창문 밖보다 어두워야 한다고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린 방에 불을 꺼 놓고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마음고생하던 우리 둘이 독일에 드디어 왔다고, 그래서 이 풍경을 볼 수 있어서 기쁘다며 연신 건배를 했다.


그동안 좋았던 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 밖을 나가면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갑자기 코로나 슈넬 테스트를 해야 한다거나, 지하철에서 무임승차로 오해받는 일. 오롯이 우리가 감당해야만 하는 일들에 스트레스도 쌓였었다. 하루를 무사히 끝낸 어느 날, 달을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창 밖을 보고 앉아 있는 시간은 평화로웠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면 외국인으로서의 긴장감과 함께살이의 어느 정도의 불편함이 있지만 어느 새벽의 평화로움이 잠시 우리를 쉬게 했다.



1달의 시간을 머물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왔지만 A는 줄곧 이 풍경을 혼자 볼 것이다. 그날의 안온함은 나에게도 인상적이었다. 독일과 A를 음식, 영화와 술로, 어느 날의 넋 놓고 바라본 창문 밖의 풍경으로 한국에 돌아가서도, 어쩌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겠다. 글로 영상으로 기록해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순간들은 살면서 문득 떠오르겠지. 그러므로 이 여행도 하나의 타투로 내 몸 어딘가에 남을 예정이다. 비록 겁이 나서 진짜 타투는 하지 못하겠지만! 구름 속, 고개를 빼꼼 내밀던 달의 이미지로. 마주댄 두 개의 맥주잔 이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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