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짓고 가꾸고 거두는 일

뤼데스하임과할머니 댁

by 북극성 문학일기



짓고 가꾸고 거두는 일.


농사에는 짓고, 가꾸고, 거두는 일이 필요하다. 어떤 농사든지 이 원리는 같다. 가꾸는 과정을 소홀히 하거나 거두는 일을 제때 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투박한 손.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손은 까끌까끌했다. 할머니와 아빠의 손도 마찬가지이다. 짓고 가꾸고 거두는 일에는 정성이 필요하다. 손끝이 갈라지고 손톱 사이사이엔 흙이 들어가서 그대로 굳어버릴 만큼의. 어느 한여름, 작업복이 다 땀으로 젖는 와중에도 일은 계속된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짓고 가꾸고 거두는 일을 지켜봐 왔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기에 아빠는 유년시절부터 밭일을 해 왔다. 내가 태어난 이후에도 아빠는 꾸준히 농사를 지었다. 많게는 일주일에 한 번, 할머니 댁에 가서 아빠의 농사일을 지켜봤다. 물론 어린 시절의 난 그 근처에 맴돌면서 곳곳을 놀러 다니는 데 집중하긴 했어도, 그게 어린 시절 내가 흙과 밭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골목대장처럼 쏘다니며 시골 풍경 안에서의 생동과 역동, 평화와 안온을 모두 조우했다.


독일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애써 잊고자 노력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뤼데스하임과 다름슈타트에서, 심지어는 뮌헨에서도 시골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 기억 속, 한국 시골 풍경을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은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추억의 공간, 시골 풍경을 독일에서 다시 만났다.


뤼데스하임은 독일 헤센 주에 위치한 도시다. 한국 시골 풍경을 떠올린 게 아이러니컬하게도 관광 도시로 유명하다. 빙엔에서 내려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금방 도착한다. 하이킹 코스가 있는데 당일치기로 충분히 돌아볼 수 있고 게다가 케이블카까지 있어서 어렵지 않게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가야 하는 이유는 뤼데스하임은 와인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리슬링 와인이 유명하고 와인 축제도 열린다.


독일인들도 많이 찾아오는 관광도시답게 뤼데스하임에 내린 사람 모두 여행을 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명소에서 사진 찍고 조각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관광객들의 특징이다. 비스바덴이나 프랑크푸르트처럼 큰 도시를 갔다가 작은 도시에 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현지인처럼 보여야 해" 괜히 돈 빼앗기거나 인종차별당할까 봐 여유로운 척했던 모습을 잠시 내려놓고 나도 편한 마음으로 풍경 감상을 했다.


뤼데스하임 초입에는 포도주 상점과 기념품 상점, 그리고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벌써 와인을 구매하면 둘러볼 때 무거우니 구경을 다 마치고 물건들을 사기로 했다. 아무렇게나 들어간 음식점에서 슈니첼을 처음 먹어봤고 후식으로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었다. 배가 잔뜩 부른 상태로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왕복 이용권을 구매하지 않았음을 후회하게 되는 건 다시 내려와야 했을 때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를 보니 온통 포도밭이었다.


넓은 평지에서 포도를 기르는 방식이 아닌 층층이 경사가 가파른 포도 산지였다. 아직 7월 초였기에 포도는 열리지 않은 상태였고 묘목으로 이제 막 심기 시작한 포도나무들도 보였다. 대규모로 짓는 포도를 수확할 시기가 되면 그 풍경이 더욱 아름답겠다. 한 달만 머물고 돌아가기에 그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니더발트 기념비에서 포도나무가 가득한 언덕을 바라보다가 니더발트 숲으로 향했다.


숲 속에서는 보고 만지고 듣는 여러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니더발트 숲 속에 들어가자마자 숲의 시원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기점으로 이곳이 숲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며 평소와는 다른 감각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하이킹을 할 수 있는 흙이 깔린 보도를 제외하고는 양쪽 가득, 크기와 종류가 다른 나무들이 보인다. 잘 깔린 길이지만 탐험을 하는 듯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정체 모를 여러 종류의 버섯들이 곳곳에 있다. 쓰러진 고목 틈 사이에서 빗방울을 머금은 거미줄, 이름이 있겠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들꽃들을 걸어 다니며 관찰했다.


흙을 만질 때 느껴지는 감각에도 집중했다. 꼭 손으로 만지는 게 아니더라도 땅을 밟는 행위로 흙을 만져본다. 발로 흙과 만나 보는 거다. 숲, 산, 시골. 흙이 흐르는 곳에는 다양한 경사가 존재한다. 높아졌다가 낮아지기도 하며 길은 좁아졌다가 넓어지기도 한다. 니더발트 숲에서 곳곳에 있는 작은 성, 전망대를 보기 위해 오르락내리락하며 내가 뛰어놀던 시골이 생각났다. 어릴 적 골목대장처럼 쏘다니던 시골에서도 익히 더 사용했던 감각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엔 작은 체구로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낑낑댔다. 언덕을 올라가면 할 수 있는 게 그만큼 많아졌다. 전혀 볼 수 없던 할머니 댁 지붕이 보이고 아랫마을의 전경이 다 내려다 보였다. 닭들이 잘 있는지도 보고, 무서운 옆집 개는 어디에 있는지도 들을 수 있다. 그렇게 실컷 놀다가 저 멀리서 일 마치고 돌아오는 아빠를 보고는 내려왔다. 가을엔 긴 봉을 들고 언덕 위에 올라가 밤을 땄다. 데구루루 밤은 이곳저곳으로 떨어졌고 경사진 골목길, 밤이 떨어진 그곳을 따라 나도 하염없이 내려갔다.


발은 다양한 지형의, 경사의 길을 밟으며 단단해진다. 내 발엔 흙과의 조우로 인해 다양한 경험이 형성된다. 반면, 평평한 아스팔트를 걸을 때는 땅과 나 사이에 비교적 건조한 만남이 이뤄진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발가락에 힘을 꽉 쥐어야 한다던가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뜨거운 여름철 더욱 뜨거워진 아스팔트에서 벗어나 집으로 도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걸음을 옮긴다. 정작 흙 위에 아스팔트를 깐 건 우리 자신들인데도 도망치고자 안달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니더발트 숲에서 빠져나왔다. 이어서 구불길이 펼쳐졌다. 그 길부터는 투박하다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린다. 포도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케이블카 이용권을 왕복으로 끊지 않은 우리는 그 꼬부랑 길을 직접 걸어서 내려왔다. 좁다란 길은 영화 아리랑의 명장면을 생각나게 했다. 계속 길을 내려오는데 모래 먼지와 함께 기계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밭을 갈기 위해 이동 중인 트랙터와 마주쳤다. 아, 비로소 뜨거운 여름이 도래했음을 느꼈다.


차라리 알알이 크게 박힌 포도알들을 마주했으면 이렇게까지 시골이 생각나지 않았을 거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많은 포도를 마주할 일은 없었으니까. 농사가 다 끝나고 수확만이 남은 상태에서 포도나무를 봤다면, 저 포도가 와인이 되는 일만을 생각하며 설렜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목도한 풍경은 한편에 이제야 밭을 갈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트랙터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 움직임에 따라 흙은 고르게 정돈되고 있었다.


농사는 절대 쉽지 않고 뜨거운 여름만큼 뜨거운 땀을 뚝뚝 흘릴 수밖에 없다. 분주한 트랙터의 움직임을 보며, 빨간색 트랙터를 타고 땀을 뚝뚝 흘리며 밭을 갈던 아빠가 떠올랐다. 시골 풍경과 자연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긴 하지만 농사가 달갑지는 않다. 파스 냄새가 풍길 정도로 애쓰는 가족들을 보는 일은 기분 좋지 않다. 게다가 정성 쏟은 만큼의 결과를 언제나 얻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속상해하는 아빠를 보는 일이 속상하다.


아빠를 따라 시골로 갈 때면 소일거리를 돕곤 했다. 땀 뻘뻘 흘리는 아빠와 할머니를 위해 물을 가져다주는 일, 고구마나 감자를 캐는 일, 밭에 물을 주는 일 등의 작은 일들이지만 갈 때마다 일은 끊이지 않았다. 나야 놀면서 했다지만, 그렇게 한나절 일하고 온 두 분의 얼굴은 태양에 그을러 졌다. 선텐을 한 느낌이 아닌, 불에 그을린 종이가 검게 되는 것과 비슷했다. 딱 한나절에도 피부색이 바뀔 정도의 강렬함은 하루가 다르게 곡식을 익게 하기도 했다.


언제나 아빠가 몰고 다니는 트럭엔 흙이 묻어 있었고, 지지치도 않는지 두 분의 시계는 언제나 새벽에 울렸다. 어슴푸레한 새벽의 푸른 빛이 집 전체를 감싸기 시작할 땐 이미 두 분이 집 밖을 나간 뒤였다. 성인이 되고 나선 어린 시절엔 그렇게 좋아하던 몸뻬 바지가 미워졌다. 저 몸뻬엔 큰 값을 벌어들이지 못하지만, 큰 강도의 노동의 무게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때마침 흙은 사라졌고 그 흙 위엔 아스팔트가 깔렸다. 좋은 기억은 아래로 아래로 쓸려 내려갔고 마침내 보이지 않았다. 아니, 깊숙이 숨기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짓고 가꾸고 거두는 일로 그 덕을 봤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언제나 난 아빠가 재배한 맛있는 쌀을 먹었고 제철 과일들을 맛볼 수 있었다. 온 정성을 줘도 그 기대만큼 자라지 않은 작물이 있는 것처럼 반대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무럭무럭 자라는 의외의 재미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산딸기나 머루 같은 열매들. 포도나무만 한가득인 뤼데스하임의 풀숲에도 산딸기는 자라고 있었다.


이제 막 갈기 시작한 밭을 보면서 독일에서도 할머니와 아빠 생각을 했다. 짓고 가꾸고 거두는 일을 생업을 너머 태어난 이상 계속해야만 하는 당위로 받아들인 사람들. 살을 비비던 흙은 사라졌지만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은 두 분을 보며 줄곧 저 땀과 성실함을, 저 신념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독일을 오게 된 이유 중 하나도 굳은살들에게서 달아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과 떨어진 이 먼 곳을 와서도 시골 생각을 떠올리는 내 모습엔 저들의 삶의 데이터가 불을 밝히며 남아있다.


곧 9월, 뜨거운 여름이 끝나가고 추수의 계절이 온다. 내가 올해 일군 밭엔 무엇이 자라나고 있을까. 조금 더 애정을 줘야 할 작물은 무엇인지, 어떤 의외성이 내 밭 주위에서 자라날지 궁금해진다. 완전히 덮어진 줄로만 알았던 아스팔트 더미에도 약간의 흙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 틈 사이에서도 자라나는 게 바로 식물의 힘이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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