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간 이유, 꿈꿔온 일들.
독일을 꿈꾼 가장 큰 이유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었다. 교환학생을 가서 꼭 한번 도서전에 참여하겠다는 소망이 코로나로 인해 좌절되고, 결국은 올해도 갈 수 없게 됐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작년엔 온라인에서도 진행했기에 모니터 앞에서 개막식을 시청했다. 물론 잘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독일로 방문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도서전은 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출판문화를 경험하고 싶었다. 독일 책과 서점의 분위기, 책의 곁을 다정히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줄곧 독일 서점이 궁금하고 동경의 마음도 갖고 있었다. 큐레이팅이 훌륭하고 서점 직원들의 자부심이 강한 나라라고 들었다. 따라서 코로나 시국에도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독자들을 맞이하는 곳, 서점을 방문하기로 했다. 계획을 세우고 나니 스물, 어느 비 오는 날이 떠올랐다.
수능이 끝나고, 독립서점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함께 홍대 서점 탐방을 하러 서울에 왔다. 서점을 돌아다니며 독립출판물도 구매하고 서점 방문한 뒤 우리가 느꼈던 생각을 영상으로 남겼다. 막 고등학생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독립서점은 호기심 천국이었다. 각 서점마다 결이 다르고 서 점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보이는 공간이었다. 호기롭게도 서점지기분께 잠깐의 인터뷰를 부탁드리기도 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꿈과 좋아하는 일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고민을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들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날 나눈 대화가 어쩌면 나의 인터뷰 첫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그날의 대화를 시작으로, 한 대상을 알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직접 대화하기임을 알았다. 그저 보기만 할 때는 알지 못했던 독립서점의 이야기를 서점지기분께 직접 들으니 그 의미가 한층 더 와닿았다. 말랑말랑하고 노곤하게 만드는 서점의 분위기 형성에는 서점을 운영하기 위해 버티고 있는 서점인의 단단한 마음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처럼 인터뷰가 주는 밀도, 의외성이 좋아서 지금도 '인터뷰'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깃든 생각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독일 서점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스물의 어느 날을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다. 그때부터 이어져 온 문장들은 끝없이 이어져 또다시 말을 걸어보라고 소곤대고 있었다. 망설여졌다.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독일어 실력이 부족했다. 독일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일에도 버퍼링이 심한데 과연 할 수 있을까? 결국 고민 끝에 좋아하는 마음을 믿기로 했다. 서점을 좋아하고 더욱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 독일 서점원 분의 마음에도 깃들어 있을 거다. 공통된 마음은 언어권이 달라도 이어질 수 있다.
마인츠와 비스바덴 서점을 인터넷으로 찾기 시작했다. 구글 맵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서점 SNS나 홈페이지에 들어가 서점의 성격을 파악했다. 그렇게 더욱 알고 싶은 약 10곳의 서점을 찾았고 메일을 보냈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내가 어떤 사람이고 한번 만나서 대화 나누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꾸준히 궁금했던 독일 출판 세계를, 직접 몸담고 있는 사람의 입을 통해 알아갈 기회가 흔치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출판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기에 떨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메일을 보냈고 답장을 기다렸다.
메일을 보낸 열 곳 서점 전부를 인터뷰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답장이 온 서점은 단 한 곳이었다. 한 곳이라도 답장이 왔다는 사실에 들떠서 메일을 확인했다. 이런 만남은 서점 쪽에서도 좋고, 한국과 독일의 만남을 환영한다는 연락이었다. 저질러 버렸으니 수습도 내 몫이었다. 당장 독일어 실력을 향상할 수 없더라도 내겐 노력의 영역이 남아있었다. 질문지를 준비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 서점을 조사한 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간략하게 담은 프레젠테이션도 연습했다. 어쩐지 대화가 잘 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부푼 꿈을 안고 독일에 도착했다. 막상 바로 서점에 가서 인터뷰를 부탁드리려고 하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나 역시 서점을 알아갈 시간이 필요해서 일정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한 달의 시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서점을 방문하며 서점 직원분, 고객들, 서점의 분위기를 익혀보고자 노력했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우선 책을 구매했다.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은 서점의 지향성을 대변한다. 매대에 올려져 있거나 눈에 띄는 장소에 배치해 둔 책을 중점으로 책을 살펴봤다.
인터뷰에 응해준 서점은 NimmerLand이다. 마인츠에 있는 아동 책 서점으로 피터팬의 네버랜드를 지칭한다. 이곳은 아이 연령대별로 권장 책들을 비치했다. “여름”에 어울리는 책들을 따로 전시한 곳에는 한국 책도 있었다. 이 외에도 Everest, Der Berg 등 등산과 관련된 책들을 따로 모아놓기도 했다. 어린이 청소년 문학과 오디오북, 장난감도 판매하고 있다. 어릴 적, 동네에 이런 서점이 있었다면 자주 왔을 것 같다. 동네 꼬마들이 이곳에 와서 책을 주의 깊게 보는 모습이 동네 서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산 책은 Liebe deinen Körper라는 책이다. 24.9 유로라는 가격에 다소 망설였지만 마음에 들어서 결국 구매했다. 독일에 온 날, 외국인에게 가장 처음 들었던 말은 너 일본인이니? 하는 물음이다. 그 이후로도 일본인 맞냐고 묻거나 혹은 그냥 나를 일본인으로 단정 짓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다. (혹은 중국인) 한국에 있을 때는 누군가 내 국적을 묻는 일이 없었는데, 질문 자체가 생소했다. 태어나 처음, 독일에 와서 잔뜩 겁먹은 나는 내 몸, 내 피부색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그래서일까. 서점에서 이 책에 더욱 눈길이 갔다. 이 그림책은 <너의 몸을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다정히 건네고 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체형을 가진 여성의 이미지가 책 속에 등장한다. 사람들의 피부색, 체형은 모두 조금씩 다르고 책에서 나와 있듯이 모든 몸은 소중하고 하나뿐이다. 외부에 있는 시선에서 벗어나서 나의 몸을 나 스스로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주는 책이다. 서점에는 이 책 외에도 서로의 다름을 이해해나가자는 동화책이 여러 권 비치되어 있었다. 서점에서도 자라날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책들을 선정한다고 느꼈다.
세 번째로 서점을 방문한 당일. 준비한 질문지와 함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서점에 가져갔다. 바로 다음 날 오전에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서점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점에서 근무하는 네 명의 직원 분 중 한 분과 대화를 나눴다. 20년 넘게 여러 서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서점인이었다. 20분 정도는 내가 미리 준비한 발표 자료를 보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한국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나의 말에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보았다고 말씀하셨다.
서점 사진을 가져와 달라는 사전의 부탁이 있었기에 내가 일했던 서점 사진도 보여드리면서 소개할 수 있었다. 서점에 자주 놀러 왔던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서 어색함과 긴장감을 풀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서울 국제도서전 굿즈와 서점 굿즈도 잊지 않고 챙겨 와서 드렸다. 만반의 준비는 했지만 즉석에서 모든 대화를 알아들을 자신이 없었기에 영상 촬영의 동의를 구하고 인터뷰를 녹화했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 서점은 한국과는 엄청나게 다르겠지라고 예상했던 내 생각과는 달랐다. 책 진열 방식이나 서점에서 열리는 행사는 비슷했다. 그리고 독일은 코로나가 확연히 감소하긴 했지만 장기화된 코로나로 인해 작가와의 만남 등의 행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핵심은 '그 자리에'였다. 2005년 문을 연 NIMMERLAND는 2021년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서점이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있으며 손님들과 교류해 왔다.
코로나 시대에 서점을 어떻게 운영할 수 있었냐는 물음에는 락다운 때는 서점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답변했다. 재운영을 하기까지도 3달이 채 안 된 시점이기도 했다. 아직까지 서점을 아예 열지 않고 있는 서점도 마인츠 곳곳에서 있었다. 마인츠 내에서 전화 주문을 하면 무료 배송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대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시장으로 인해 독일 서점도 어려움이 있지만 극복해나가기 위한 모색을 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함께 나눈 모든 대화들을 다 또렷하게 알아들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추가적인 질문도 많이 하지 못했다. 영상을 찍었으니 편집하여 내용을 정리한 뒤에 언젠가 우리가 나눈 대화를 공유하기로 약속했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그래도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었다. 유려한 문장으로 감사함을 표현하거나 심도 깊은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서툰 문장과 눈빛으로 진심으로 표현했다. 그 마음이 와닿았는지 서점원 분께서는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는 다정한 인사를 건네며 헤어졌다.
어린이들의 꿈과 환상의 나라인 네버랜드처럼 이 서점엔 언제나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는 부모들을 볼 수 있는 서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감사했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낯선 외국에서 온 학생의 요청에도 쉬는 시간 1시간을 내어줄 만큼 다정한 서점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NIMMERLAND를 방문한 것 외에도 비스바덴을 비롯한 여러 서점을 방문했다. 여러 서점을 가다 보면 눈에 많이 띄는 책들이 있는데 그 책들의 특징을 살펴보는 일도 즐거웠다. 지역 서점 외에도 대형 서점에 방문해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확인하면 독일이라는 나라의 관심 키워드를 살펴볼 수 있는데, 독일은 한국에 비해서 정원 가드닝 서적이 많은 편이다. 또한 사람 실사로 표지를 내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왜 그런지까지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리고 스도쿠, 십자말 풀이 등의 워크북도 계산대 근처에서 판매한다. 실제로 기차 안에서 스도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기도 했다.
비스바덴도 역시 서점이 많았는데 여기선 개척의 마음으로 서점을 돌아다녔다. 인터뷰까지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직접 장소를 방문하고 분위기를 살피는 일은 중요했다. 인상이 좋아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서점이 있었는데 비스바덴에서는 이 서점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마침 독문과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Die wand라는 책을 찾고 있던 참이었는데 대형 서점엔 팔지 않았기에 그곳에 가서 찾아보기로 했다. 비스바덴에서 방문한 서점은 erLesen이다. 주택가에 있는 말 그대로 동네 서점이다.
erLesen 서점지기분께서는 친절하고 손님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분이었다.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책만 바로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로 보아 단골들이 많아 보였다. 서점을 방문하는 연령대도 다양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노부부가 함께 와서 손녀를 줄 책을 고르는 모습을 보며 그런 감정을 느꼈다. 내가 찾는 책은 이곳에도 없었다. 책을 주문하면 다음 날 가지러 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독일도 로켓 배송을 유용하게 쓰고 있음을 알았다.
erLesen은 일반 책들을 판매하는 곳이 중앙에 있고 뒤쪽 방에는 아이를 위한 책을 전시한 공간이 따로 있다. 책 중에는 2~3유로 정도의 값싼 책도 있었다. 아이들이 초콜릿, 간식을 사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대신에 책을 사준다는 농담을 들어보기도 했다. Coni라는 시리즈의 책이 대표적이다. 보드게임, 낱말놀이, 장난감도 판매하고 있다. 서점 밖에는 아기자기하게 마멀레이드, 음료수까지 판매하고 있어서 사랑방 느낌이 물씬 났다.
책을 예약 주문하고 다시 마인츠로 돌아오는 길에 서점을 두 곳 더 발견했다. 한 곳은 심지어 구글 맵스에도 나오지 않는 서점이었다. 중고책을 판매하는 곳이다. 어쩐지 비밀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점을 들렀다. 이번엔 시집을 찾아보고자 했다. 독일 시인이라고 하면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고는 잘 알지 못한다. 서점지기분께 물어보니 여러 시집을 꺼내 주시면서 직접 소개해주셨다. 중고책이야 원래 좋아했는데 이렇게 직접 골라주시기까지 하니 더 좋았다.
추천해 주신 책을 열어보니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책 커버를 벗기고 작가 사진만 따로 오려내어 판매한 것이다. 흑백 사진 속 젊음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다. 두 명의 독일 여성 시인을 한국으로 모셔왔다. 할머니의 비밀 레시피라는 독특한 책도 이곳에서 발견했다. 메모지처럼 낱개로 되어 있는 책은 한 장에 하나의 음식 레시피가 적혀 있고 나무 상자 안에 들어있다. 7유로에 이 귀여운 책을 소장했다. 보물찾기 하듯 책을 찾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서점은 코믹북만 전문으로 파는 서점이었다. 일본 책도 판매하는데 압도적으로 DC책이 많았다. 이곳에 과연 없는 DC 책이 있을까? 베트맨, 원더우먼, 슈퍼맨 등 박스마다 라벨링이 되어 있고 고를 수 있다. 같이 사는 친구를 위해 책을 구매했다. 코믹북 위주로 파는 서점은 또 처음인데 찾아보니 독일 곳곳에 있는 듯하다. 콘셉트가 확고한 서점이었다.
서점 방문기는 베를린에서 방문한 서점 한 곳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서툴지만 인터뷰도 진행해 보고 서점 곳곳을 다니며 서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이 방문기를 끝내며 드는 생각은 한국이든 독일이든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서점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젠 환상 속의 독일 서점에서 벗어났다는 거다. 직면하고 나서 독일 서점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정신없이 글을 쓰며 문득 이렇게까지 내가 서점에 집중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정말 순수하게 서점이 좋아서였을까. 우선 나의 스물부터 함께해 온 서점이기에 애착이 간 거라는 건 알겠는데 그 이후로는 아무래도 더 생각하고 싶다. 그래도 독일 서점이든 한국 서점이든 책이, 서점이 내게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제 곧 진로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 때가 왔다. 이번의 경험이 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줄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