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언니를 만나러 베를린으로 가는 길

아름답고 추하다고도 하는 베를린

by 북극성 문학일기



저 멀리에서 언니가 걸어왔다. 언니를 보자 이곳이 베를린 텔레비전 탑이 아닌 서울인 것만 같았다.




로스토크에는 독일 가정집에서 오페어를 하는 언니가 있다. 워킹홀리데이와도 비슷한데 아이를 돌보며 하숙한다는 차이가 있다. 내가 머무는 곳은 마인츠. 독일 가기 전부터 언니를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는데 두 지역 간의 거리가 참 멀었다. 플릭스 버스를 타고 12시간을 타야만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에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가 10시간 반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기에 장소와 시간을 계속 조율하다 보니 결국 그냥 '만나지 말까' 하는 소리를 서로 주고받았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여름 티켓이 있었다. 베를린 리포트라는 독일 생활 사이트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여름 한정 티켓으로 만 18세에서 26세까지는 열차 티켓 4개를 90유로에 살 수 있다. 만나기를 포기하고 있었을 즈음, 이 티켓의 존재를 알고는 환호했다. 대중교통 비용이 꽤 많이 들었기에 버스가 아닌 이상 쉽게 열차를 탈 생각을 못했었다. 오페어 일로 인해 멀리 나가지 못하는 언니와 만나기 위해 로스토크와 그나마 가까운 베를린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것도 당일치기로!


당일치기로 베를린을 다녀왔다는 사람을 혹시 들어본 적 있나. 베를린은 열차도 A, B, C 구역이 나뉠 만큼 복잡하면서도 볼거리가 많다.(고 들었다.) 당일치기라면 베를린은 아마 반의 반도 둘러보지 못할 거다. 일정이 꼬이는 와중에 여러 조율을 하면서도 언니와 만나고 싶었다. 한국에서 만날 때와 독일에서 만날 때는 분명 차이가 있으리라고, 줄곧 상상해 왔다. 분명 낭만적이고 멋진 일일 것이다. 영상 통화를 할 때도 만나고 싶다는 말을 인사처럼 줄줄 달았다.


이쯤에서 언니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아는 그는 연두색 비늘을 가진 물고기와도 같다. 물 안에서 유영하듯 삶 속의 물결을 헤쳐간다. 유영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반짝거리는 연두색 비늘을 볼 수 있다. 물결에 따라 연두색 비닐은 톡 쏘는 와사비 색이 된다. 녹지에서 볼 수 있는 짙은 색이었다가 쨍쨍한 햇빛을 받는 잔디와 같아지기도 한다. 여러 모습이지만 동시에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물고기과도 같은 언니와의 첫 만남은 대학교에서였다. 문화 콘텐츠 수업에서 친구의 지인으로 처음 만났다.


언니와의 대화는 늘 호기심 천국이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모여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서도 주된 관심사이다. 우리는 인문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인해 금방 친해졌고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언니는 독문과이기도 하고 꽤 오래전부터 독일 교환학생을 준비했지만 코로나를 비롯한 여러 사정으로 올해 독일로 향했다. 오페어라는 큰 도전을 한 언니를 응원하며 헤어졌는데, 나 역시 독일로 가게 된 이상 언니를 꼭 만나고 오고 싶었다. 둘 다 어렵게 독일로 향했기에 언니를 생각하면 늘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열차 타고 5시간 걸려서 베를린에 도착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도착한 베를린은 상상한 모습과는 달랐다. '아름답고도 추한' 모습이라고 들었는데, '추한'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저녁이 되면 쓰레기와 담배꽁초로 넘쳐나는 걸까? 점심 시간대 즈음에 도착한 베를린은 몽실몽실한 구름과 쨍한 햇살로 인해 모든 것이 선명해 보였다. 대도시답게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고층 건물도 많았고 길 건너 하나씩은 박물관이나 명소가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코로나 슈넬 테스트를 하러 갔고 곧이어 언니가 온다고 이쪽으로 온다고 했다.


공원에서 언니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베를린 텔레비전 탑으로 걸어오는 언니가 보였다. 쨍한 여름 날씨, 시원해 보이는 옷을 입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알 수 있었다. 언니였다. 어딘지 모르게 뭉클해진 마음으로 포옹했다. 모든 것이 생경한 독일에서 익숙한 누군가와의 만남은 이곳을 독일이 아닌 서울로 착각하게 한다. 우린 길을 걷기 시작했고 그 길은 한국 어딘가가 되었다. 편안함과 동시에 피곤이 느껴졌다. 이른 새벽부터 열차에 몸을 실어서였다. 허기도 함께 몰려왔고 우선 밥부터 먹기로 결정했다.


평일 낮, 베를린의 음식점 중 한산해 보이는 음식점 한 곳을 들어갔다. 태국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독일은 쌀국수 맛집이라던 독문과 선배들의 말이 떠올랐다. 언니는 독일에 와서 한국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눈 일 자체가 처음이라고 했다. 식사를 하며 오페어를 하며 겪은 곤란했던 일, 그리고 아이를 돌보면서 느낀 점들을 들려주었다. 외국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만큼 느낀 바도 힘든 일도 많아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오페어는 무사히 끝났고 우리가 만난 날 언니의 표정도 확실히 편해 보였다.


아마도 내가 독일을 다시 오려면 그건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일 것이다. 이왕 베를린을 왔으니 언니와 함께 주요 명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비록 열차를 타고 먼 곳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인 걸까. 딱 한 군데 가기로 결정했던 박물관인 독일 역사박물관은 공사 중이었고 베를린 주립 미술관은 운영시간이 끝났다.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아쉽지 않았다. 박물관에 들어가서 깊이 있게 관람하기엔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했다. 만나서 5시간도 함께 있지 못하고 언니는 다시 로스토크로, 나는 마인츠로 향해야만 했다.



가볍게 산책하듯 베를린을 걸었다. 언니가 일일 가이드가 되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정보를 알려줬다. 베를린에 오기 전에 미리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온 언니 덕분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곳들을 더욱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은 장소는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이었다. 홀로코스트 추모비가 놓여 있는 이곳은 큰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 한가운데 있었다. 일상 속 추모와 참회를 하고 있는 독일의 모습이었다.


추모비는 크기가 제각각이었고 땅의 경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서로 다른 추모비의 모습이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고유한 인격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내 키와 비슷하거나 혹은 마냥 작은 사각기둥에 시선이 더 갔다. 추모비를 방문한 이후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까지 방문하고 돌아왔다. 아픈 역사도 잊지 말고 기억하기, 참회는 계속될 것. 어떤 역사들은 잊지 말아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베를린 방문은 독일의 과거와 과오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가며 체크포인트 찰리는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다. 냉전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장소는 동 베를린, 서 베를린을 나눈 검문소였다고 한다. TV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에 체크포인트 찰리가 나왔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배우 분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이동하셨는데, 우리가 갔을 땐 코로나로 인해서인지 기념사진을 찍는 이벤트는 따로 없었다.


국가 의회 의사당과 브란덴부르크 문은 바로 근처에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와 네 마리의 말이 조각되어 있다. 4개의 문 중 중앙에 있는 문은 왕이 이용했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한눈에 보기에도 웅장해서 베를린 시그니처 명소인 이유가 있었다. 방문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둥근 돔이 아름다운 국가 의회 의사당까지 보고 나니 시간은 성큼 지나가 있었다. 어느새 벌써 헤어져야만 했다. 어렵게 만났기에 최대한 같이 있고 있었지만 함께 멋진 장소를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자체에 만족하기로 했다.

"사진 너머로만 보다가 이렇게 낯선 나라에서 만나니까 느낌이 진짜 다르더라. 나는 독일에선 이방인이잖아. 그래서 항상 익숙해지지도 않고 겉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어를 사용하고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니까 독일이 친숙해지고 따듯해지는 느낌이었어." 우리가 헤어지기 전, 상투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성적인 1분 마무리 멘트를 들려달라고 언니에게 농담했다. 우리끼리 볼 영상을 찍으며 만난 소감을 이야기하던 중 언니가 해준 이야기는 내 마음과 같았다. 내게 베를린은 친숙하고도 따듯한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비록 나는 언니에게 "언니를 만나자마자 눈물이 날 뻔했어." 식의 뻔한 멘트를 들려주었지만.


왕복 10시간을 열차에만 있었지만 언니를 만나고 온 하루를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잊지 못할 하루였다. 내겐 독일 한 달 살이의 마침표를 짓는 만남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때때로 그리울 언니와 기차역에서 헤어지고 마인츠로 가는 열차는 길게만 느껴졌다. 열차에 앉아 해가 져 노을이 된 모습을 바라봤고, 빛이 번지다가 호수 속에 잠기는 풍경을 지켜봤다. 아주 컴컴해지더니 창문에 눈을 딱 가져다 대고 두 손으로 빛을 차단해서야 비로소 바깥이 보였다. 주변엔 들판과 논밭만이 가득했고 불빛이라고는 아주 가끔 나타난 주택가에서만 희미하게 비쳤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곧 돌아갈 한국에선 오늘을 어떤 하루로 기억할까. 지금 당장은 이 풍경을 보며 돌아가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한숨도 자지 않고 창밖을 바라봤다. 또다시 5시간이 걸려 마인츠에 도착했다. 선선한 밤공기엔 밤에만 맡을 수 있는 시원한 밤 냄새도 섞여있었다. 이제야 보고 싶던 언니도 만나고 독일 생활에 적응을 좀 했다 싶었는데 곧 한국에 다시 돌아간다. 어쩐지 섭섭한 마음들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무심코 바라본 하늘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또렷하게 떠 있는 별들. 그래, 앞으로도 내 하늘에는 오늘의 추억이 수놓은 별들이 떠 있을 거다. 아주 어두울 때 더욱 빛날 별들. 일단은 그것만 생각하자며 한참 동안 별을 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피곤이 몰려와 금방 잠이 들었고 아주 푹, 잠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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