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껍질 벗기의 계기로

독일 생활의 마침표를 찍다.

by 북극성 문학일기


오늘은 개강, 마지막 학기가 시작됐다. 그동안 나는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고 자가격리까지 마쳤다. 돌이켜 보면 2주간의 자가격리 시간을 그리 성실하게 보내지는 못했다. 그저 잠만 자고, 또 잤다. 침대에 누우면 빗소리를 들렸고 베란다에 가면 여지없이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별 다른 문제 없이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함을 알기에 마무리 글을 쓰고 마침표도 찍어보고자 한다.


독일로 입국했을 때만 해도 한국 코로나 확진자 발생은 줄어들었고, 독일 확진자도 많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러다 다시 돌아올 때 즈음엔 한국 코로나 확진자가 늘었고, 자가격리가 끝났을 즈음엔 독일 코로나로 이전보다 훨씬 늘었다. 이런 코로나 상황에서 독일 친구 집에서의 한 달 살이는 pcr 증명서나 지인 집을 빌려서 자가 격리를 했기에 비용이 더 들었다. 그건 내가 응당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자가격리 시간 동안 나와 관련된 일처리를 해야만 했던 공무원 분을 생각하면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1년 반 동안 준비하던 교환학생을 코로나로 인해 포기했다. 그 이후 한달살이를 결정하기까진 많은 고민이 있었다. 결국 대학 졸업하기 전 땅이라도 밟고 오고 싶다고 결정한 독일행에서는 코로나를 걸리지 않고 다녀오는 것에만 초점을 더 뒀다. 가령 마스크를 철저하게 쓰거나 손 소독제 가지고 다니기, 저녁에 술집 이용하지 않기 등 기준을 세우고 실천했다. 그러나 자가격리 기간 동안 발생할 방역 인력의 노고까지는 실제 자가격리를 하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런 노고에 대한 감사함을 앞으로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까지 독일에 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바깥 풍경은 익숙함 그 자체였다. 모든 게 한국적이다. 거리의 짙은 색의 풀부터 시작해서 고개를 들면 보이는 고층 아파트까지. 독일을 다녀왔기 때문에 내겐 너무도 익숙한 한국의 풍경이 '한국적'인 풍경임을 알았다. 거리를 다닐 때면 항상 약간의 긴장이 항상 있던 독일과는 달리 익숙한 체형, 익숙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거리에 있다. 편안하고도 마음이 놓였다. 동시에 언제 다시 낯섦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때가 오긴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복잡한 기분 속에서 첫 마음을 다시 떠올려 본다.


독일에 간 지 5일이 되던 날이었다. 독문학 학회 지도교수님이셨던 독문과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무사히 친구 집에 도착했고 잠만 쏟아진다고 말씀드렸다. 밤 열 시에야 해가 지고, 새벽 5시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일찍 잠에서 깨어나는 독일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교수님께서는 이번 독일 방문을 껍질 벗기의 기회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껍질 벗기의 기회. 어떤 껍질을 말씀하시는 걸까. 어떤 수식어도 덧붙이는 말도 없었다.


데미안 속 알을 깨고 나오는 새를 의미하나. 내가 벗어던질 수 있는 껍질은 무엇일까. 독일에 있는 동안 줄곧 고민했다. 마침내 한 달이 됐을 때 그 껍질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찾을 수 있었다. 껍질은 한 겹이 아니었다. 달걀도 난각막이라는 얇은 막이 있듯이 내 껍질도 여러 겹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아직 채 떨어져 나가지 않은 껍질의 찌꺼기도 몸 곳곳에 붙어 있는 기분이다. 떨어져 나간 껍질들을 다시 호명하며 안녕을 고해보자.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껍질이여 안녕,

첫 해외생활이라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동양인'인 나를 모든 사람이 다 쳐다보는 것만 같았고, 그래서 밖에 혼자 나가는 일도 무서웠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두려워도 짧게 산책하기를 반복하면서 나아졌다. 또한 친구와 함께 생활하면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해나가면서 서서히 벗어던질 수 있는 껍질이었다.


선뜻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길거리에서 자주 만나곤 했고 나에게 길까지 물어보는 편견 없는 사람도 마주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나를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지 않음을 알게 되니 조금은 더 자신감이 생겼다. 마지막 날에는 언제나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모자를 벗어던지고, 검은색의 내 머리카락을 풀어 넘긴 채로 마인츠 시내를 돌아다녔다.


언어 장벽이라는 이름의 껍질이여 안녕,

사실 아직 인사를 건네기엔 아직도 껍질이 내 몸에 붙어 있다. 언어 장벽은 아마도 진짜 유창한 언어 실력을 가질 때 비로소 떨어져 나갈 껍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어가 서로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한 달이었다. 어플로만 대화하던 친구를 직접 만나고 그 친구가 내가 써준 편지를 읽고 감동받아서 우는 일을 눈앞에서 봤다. 중고 서점에 가서는 좋은 책을 읽고, 건네주고 싶다는 마음이 통해 서점 직원 분과 함께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때때로 친절하신 분들은 혼자 다니는 나를 위해 기념사진을 찍어주셨고, 박물관에선 친절하신 매표소 할머니와 짧게나마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느꼈다.


가서 한 마디도 통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은 말 그대로 직면하게 된 순간 어떻게든 하게 됐다. 급하니까 독일 자전거 서비스 센터에 전화하기도 하고, 여러 양식을 참고해 독일어로 문의나 항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들로 인해 벗어던진 껍질이었다. 이 껍질을 벗은 순간을 기억하며 한국에서도 독일어 공부에 전념해야겠다.


독일은 다를 거라는 착각의 껍질이여 안녕,

이 껍질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눈에 안착한 껍질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콩깍지이다. 가본 적 없는 독일을 미디어로 접하며 줄곧 동경해 왔다. 출판문화도, 영화나 예술 등의 모든 분야에서 다 멋질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독일에 도착한 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쩌면 여러 껍질 중 가장 단단한 껍질이자 벗고 나니 가장 개운한 껍질이다.


한국 서점과 비슷한 면모도 많았던 독일 서점. 뮌헨에선 제로웨이스트숍에 방문했는데 성수동에서 방문했던 제로웨이스트숍과 놀랍게도 일치했다.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자 '트렌드'는 세계 어느 곳이든 중요하고 돌고 돈다는 느낌도 받았다. 물론 부족한 언어 실력과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인해 많은 풍경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유토피아는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독일에 와 봤기에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미지로 덧씌워진 독일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비로소 조금이나마 알게 된 독일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여유로운 휴일의 모습을, 강가 근처에서 타는 자전거를 경험했기에 더욱 사랑한다. 청소년들이 무지개 깃발로 온 몸을 감싸고 슈투트가르트 메인 광장을 걷는 평화로운 모습에 마음과 시선이 간다. 복작복작한 시장에서 파는 올리브와 치즈를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독일인들에게 애정이 간다.



현재 나는 어떤 껍질을 가진 채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껍질에 갇혀 있는 동안은 스스로 어떤 껍질에 갇힌 지 알지 못한다. 벗어던지고 시야가 달라짐을 확인한 순간에야 비로소 껍질에 갇혀있음을 알게 된다. 앞으로 내가 벗어던지게 될 껍질들에게 지금처럼 인사를 건네고 싶다. 그 껍질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그 안에 있었기에 깨트리고 나오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고 말이다.



올해는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해이다. 대학을 졸업해 취업 준비생이 되는 시기이다. 막막한 마음도 앞선다.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여러 고민을 하다 친한 친구와 전화를 했다. 친구가 자신의 교환학생 경험을 들려줬고 나도 나의 짧은 한 달 경험기를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일을 시작하거나 혹은 챙겨야 할 가족이 생기게 될 때는 섣불리 시도할 수 없을 경험을 학생이기에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두 번 다시 이런 시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한국에 오고 나서야 이번 기회가 소중했음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론 어떻게 보면 '한 달 살이'일 뿐이기도 했다. 모든 게 하룻밤 사이의 꿈이 되지 않도록 글을 적었다. 불안감에 글을 쓰고 잊고 싶지 않아 글을 썼다. 그렇게 오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다. 시원섭섭이라는 단어는 누가 만든 걸까. 헤어짐과 끝맺음의 순간엔 항상 시원섭섭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글을 다 적고 나니 시원하고 진짜 마지막 글이라니 섭섭하다. 언제나 글을 열심히 읽어 준 지인들 덕분에 신나서 더 열심히 쓸 수 있었다. 정말 정말 고마웠다고 글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또한 알지는 못하지만 읽고 갔다는 표시를 하고 가는 분들에게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글 쓰면서 가장 놀랐던 일은 카카오톡 탭에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나는 알지 못했던 때이다. 미리 알았으면 자랑 좀 했을 텐데 아쉽다.


글을 읽었을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에겐 독일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궁금하다. 포기담을 쓰다가 한 달 살이로나마 독일을 경험해 봤다. 다녀와서 끝이 아닌 또 새롭게 모색해 나갈 무언가를 찾아야만 하는 시점이다. 새롭게 찾을 무언가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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