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독일어 과외
얼마 전 독일어 시험을 봤다. 처음으로 본 자격증 시험이었기에 많이 떨렸고 두렵기도 했지만 끝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4개 중 한 개의 타일이라도 붙으면 좋을 텐데. 시험을 준비하며 걱정했던 시간과는 다르게 금방 끝나버려 허전한 기분도 들었다. 동시에 다음에는 떨지 않고 더 잘 볼 수 있겠다는 마음도 생겼다. '어쨌든 딸 때까지 도전한다!'라며 두 주먹 꽉 쥘 용기. 그 용기를 이번에 얻어간다. 비록 25만 원이라는 응시료는 여전히 무섭지만.
2019년 하반기부터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대학 생활의 절반을 함께한 셈이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언어로도 이어졌다. 언어는 사유의 그릇이자 공동체의 약속이기에, 언어를 알아가는 일은 곧 그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는 일이다. 독일이라는 나라를 이왕이면 더 깊이 있게 사랑하고 싶었으므로 언어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종로에 있는 학원부터 등록했다. 그러나 알맞은 시간대가 없어 내 실력에 맞지 않는 반을 등록하는 바람에 한 달 내내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아침반 수업을 듣고 학교로 가는 버스에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결국 다시 학교 교양 수업으로 기초 독일어를 수강했다. 열정적인 교수님 덕분에 기초 문법을 시작으로 천천히 이 이상하고도 낯선 언어를 배워갈 수 있었다.
빨리 언어는 배우고 싶지만, 마음만 앞선 그때, 독문과 친구가 과외 선생님을 소개해줬다. '엔젤'이 별명으로 따라붙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약 2년간 선생님께 독일어를 배웠고, 선생님은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됐다. 학교에서도 한 해면 담임교사가 바뀌고 심지어 대학에서는 한 학기면 교수님과 헤어진다. 그런 만남 속 2년간의 배움이라니. 대학 생활 중 만난 어떤 스승님보다도 장기간 본 셈이다. 학원, 독일어 인강, 대학 수업 등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돌다 드디어 정착할 수 있었다. 배울 점 많은 선생님 덕분이다.
아쉽게도 나는 이제 대학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고 무엇보다 취직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B1 시험을 마지막으로 직장을 구할 때까지 당분간 과외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간 선생님과의 추억, 그리고 배움의 나날을 이번 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빵모자, 갈색, 그리고 옆구리에 찔러 넣은 두툼한 책. 독일을 떠올리면 어쩐지 이런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래서일까. 캡 모자를 즐겨 쓰던 나는 독일에 관심이 생긴 뒤로는 갈색 빵모자를 슬쩍 머리에 얹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만난 첫날. 선생님도 강렬한 갈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비록 얼굴은 알지 못하지만 쨍한 재킷으로 인해 저분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맞았다. 사실 근거 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어쩐지 통하는 '갈색' 코드라고 해야겠다.
당시 선생님은 독문학 대학원에 다니는 중이었다. 어렵고 심오한 독일 문학을 대학원에서도 배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학교와 과외 등으로 바쁘게 생활하는 모습이 경외심이 들 정도이다. 둘 다 건강한 편은 아니어서 자주 아프곤 했는데 돌이켜 보면 서로에게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자주 건넨 듯싶다. 얼마 전, 과외 수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새삼스럽게 묻자, 그 이유 중에는 '지식을 전달하는 보람'도 한몫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식을 쌓는 일과 지식을 전달하는 일. 그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 이어져 있었다.
물론 선생님처럼 멋진 독일어를 구사하려면 호호 할머니가 될 때가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하곤 하지만, 적어도 내 '혀'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수업 시간 내내 충실히 움직이고자 애쓰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니, 다와다 요코 <목욕탕>에서 주인공이 새로운 자아를 찾기 위해서 혀를 빼앗기는 장면이 떠오른다. 어쨌든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익숙하지 않은 입안의 장소에 혀를 가져다 대어야 하는 일인데, 가령 R과 같은 발음을 할 때는 그 자체가 고역이다. 마치 양치 후 가글 하는 상태에서 그대로 누군가와 말한다고 해야 할까. R발음을 시도하다 헛구역질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독일어를 발음하는, 듣는 순간이 좋다. 둔탁하고 거친 소리에서 리듬이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명쾌하기도 하다. 번잡한 일상을 건조하게 만드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 유튜브엔 유태오 배우가 독일어로 자기소개하는 영상이 있는데 가끔 심심할 때 찾아 듣는다. 아, 그런데 배우님의 멋진 목소리가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다.(사실 90% 이상) 어쨌든 앞으로 내가 호호 할머니 될 때까지 독일어와 함께하고 싶다.
언어 수업에선 발음뿐 아니라 단어 암기도 중요하다. 선생님과 단어를 공부하며 꽤나 낭만적인 단어들을 채굴해낼 수 있었다. 정말 잘 안 외워지거나 혹은 시험에서 틀린 단어들을 리뷰할 때, 단어의 의미 구조를 함께 살펴보곤 했다. 무작정 외우기보다 구조를 파악하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는다. 그런 공부 방식을 적용해 독일어를 공부할 때 남몰래 혼자 가슴 벅찰 때가 많았다.
삶(leben)과 걷다(lauf), 즉 삶의 길이 향한 곳을 의미하는 die Lebenslauf는 이력서를 지칭한다. 이 단어를 알고 난 이후로는 딱딱해 보이는 이력서 양식이 조금은 덜 두려워졌다.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서류니까. die Gelegenheit는 기회를 의미하는데, '놓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회는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게 아닌, 이미 놓여 있음을 뜻하는 것 같아 두 주먹 불끈 쥐며 뜬금없이 모든 할 수 있다를 외쳐본다. 이 외에도 die Rücksicht는 뒤(Rück)와 보다(sicht), 뒤를 보는 행위는 상대방을 위해주는 일이다. 따라서 배려, 사려라는 뜻이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뜻인가. 못내 감탄하다가 과몰입 금지를 외치며 마음을 다스린다.
가을에 처음 진행한 수업 이후 두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그 기간 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
과외 선생님의 '피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대학원 졸업 논문을 받아 보았다. 두툼한 논문 표지엔 금색의 글씨가 영롱히 빛났다. 검은색의 표지였지만 그간 받은 책 선물 중 가장 화려하고 멋진 책으로 기억한다. 종로, 성북구, 남산 등 관광 명소의 카페에서도 수업이 이뤄졌다. 잠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며 수업을 받던 어느 주말과 장소를 착각해 각기 다른 카페에서 서로를 기다리던 일도 떠오른다. 이제 나는 졸업을 앞둔 학생이 됐고, 과외하던 시기에 창궐한 코로나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독일 교환 학생을 포기한 후 한 달 살이로 떠난 독일에서도 과외는 이어졌다. 내가 간 지역의 문제였을까. 비가 오면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아 Zoom으로 진행한 수업엔 약간의 버퍼링도 생겼지만. 짧은 기간이지만 외국에서 귀가 트일 수 있도록 독일어 발음 연습을 하는 미션을 제안해주셨다. 길을 지나며 마주친 마트 전단지나 지하철 안내문, 열차 연착 안내장을 따라서 읽어보고 그 음성파일을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 소리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화장실에 앉아서 따라 읽곤 했는데 때론 연습시간이 한두 시간씩 넘어갈 정도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 없이 간 독일행에서 작은 원동력이 된 활동이었다.
원동력, 선생님은 공부의 목적, 원동력을 강조하곤 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게 독일어로 일기 쓰기나 순간 떠오른 한 문장을 독일어로 적어보는 일도 추천했다. 글을 쓰고 첨삭해주신 내용을 보면, 한국식 / 독일식 사고가 달라 의미 전달의 어려움을 느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때때론 조급함에 우울해질 때도 다반사였다.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에 내 실력은 언제 나아질까 고민하기도 한다. 누구는 몇 개월 만에 언어 실력이 향상했고 원어민처럼 말한다더라, 식의 이야기. 독일 친구들과의 영상 통화에서 때때로 드는 자괴감은 덤이다.
더 노력하고 더 잘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게으를까 못났을까 라는 못난 기분이 들 때면 그래도 '꾸준히 하는 것'은 잘하니 길게 보자고 마음을 다잡아 왔다. 좋은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덕분에 느리지만 지금껏 포기하지 않고 공부해 올 수 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원동력을 모색하는 일. 가장 최근엔 무서워서 벌벌 떨던 시험도 치러봤으니 조금 더 단단해졌다고 스스로 다독이고자 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양귀자 작가의 <모순>을 선생님께 선물했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라는 공감 가는 문장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 인생의 부피가 얇아서, 겨자씨 한 알도 심지 못할 정도로 느껴진다면 그때부터 자아 찾기의 여정을 시작하곤 한다. 독일어를 배우고자 마음먹었던 이유엔 '겨자씨' 한 알의 양감을 찾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다는, 아니 그 이유가 확실하기에 더욱 애정이 가는 책이다.
주인공 안진진도, 그리고 나와 선생님도 열심히 삶의 부피를 넓히고자 하는 몸부림의 과정을 겪고 있는 듯하다. 나이에 상관없이 찾아오는 방황과 물음표들을 이겨내야만 하니까. 앞으로도 언제나 겨자씨를 떠올리며 나아가고, 내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싶다. 처음엔 비록 씨앗 한 알 정도이겠지만 점차 땅속으로 뻗어 나갈 뿌리의 힘을 믿어본다. 흔들리는 때가 오더라도 안정감 있게 상황을 이겨나가는 힘. 내가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다. 선생님께도 이 책이 응원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골랐다.
다만, 낭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단하고 퍽퍽한 '현실'이라는 척박한 땅에, 기분 좋은 소나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크리스마스에 선생님께 선물 받은 달달한 마카롱처럼,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에 수업 전 함께 듣던 정감 있는 캐럴처럼. 그리하여 흙은 촉촉해지고 그 틈을 타 씨앗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내겐 독일어 수업이 꿈이자 낭만이었다. 컴퓨터 자격증을 따고 토익을 준비하고, 취직 이력서를 내야 하는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어렵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렇게 오늘까지 왔고 시험이 끝난 이후 다시 현실에 집중하기로 했기에 과외를 잠시 중단하게 됐다. 언제나 크리스마스 일 수는 없음을 잘 알기에.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또 현실을 살고 때때로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쁘게 맞이할 것이다. 낭만 있는 삶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