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리듬을 찾아가는 일

뮌헨 가정집을 방문하다.

by 북극성 문학일기

첫째 날_


지난 2일 동안은 뮌헨에 방문했다. 독일 친구의 초대로 뮌헨 가정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에밀리(가칭) 중년의 여성분이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조깅과 수영이 취미이다. 마인츠에서 뮌헨은 꽤 멀지만 가정집에 방문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설렜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호의에 감사함을 느끼며 한국에서는 동화책을, 독일에서는 한국 음식들을 준비해 갔다.


에밀리의 자식들도 홈스테이로 다양한 나라를 다녀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에밀리는 누군가를 초대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해 주는 일에 익숙하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나에게도 뮌헨 집에 5일 동안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 호의가 내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2일만 머물기로 했다. 뇌우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 구체적인 일정은 짜지 않고 만났다.


마인츠에서 뮌헨으로 향하는 독일 열차에 탑승했다. 여지없이 열차는 연착됐다. 뮌헨 중앙역에 내리자 플랫폼에 에밀리가 서 있었다. 줌과 채팅으로만 만나던 에밀리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키가 컸고, 걸음이 무척 빨랐다. 짧은 인사를 건넨 뒤 S-Bahn을 타기 위해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이내 열차가 도착했고 마주 앉아서 숨을 고르고 나서야 비로소 친구를 만났음이 실감 났다. 내 앞에서 독일어로 지나가는 역마다 소개를 해주는 친절한 에밀리. 에밀리를 만났다.


지난 뮌헨에서의 시간은 내가 한 달 동안 독일에서 들었던 독일어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우린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오직 독일어로만 대화했다. 에밀리의 배우자가 영어를 쓰려고 하자, 독일어로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에밀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에서 독일에 온 나의 언어 실력 향상을 위해 서로 소통이 조금 불편하지만 그렇게 결정했다.


그래서 사실 많은 설명을 해줬지만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뮌헨의 마스코트, 교회의 건축 양식, 역 이름의 유래 등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눈으로 보고, 영상도 함께 보며 알아갈 수 있었다. 마인츠에서 함께 뮌헨에 간 친구는 뮌헨 도착 첫날, 꿈을 꿨는데 꿈에서도 독일어가 나왔다고 말할 정도로 쉴 새 없이 독일어는 쏟아졌다. 에밀리는 끝없이 설명, 설명, 또 설명해줬다.


여행 첫날,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날씨가 쨍쨍했다. 에밀리, 에밀리의 배우자, 나와 내 친구는 바이에른식 음식을 먹으러 테라스가 있는 음식점을 갔다. 흰색 소시지 껍질을 벗겨서 먹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음식점 여자 직원분은 디른들이라는 전통 의상을 입고 있기도 했다. 음식점에서도 이런 차이들을 하나씩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나 어색하지만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두 분의 연애 스토리, 우리가 독일에 온 이유 등을 서로 나누며 조금씩 친해졌다.


식사를 다 마치고 에밀리 집으로 가는 길엔 호수가 있었다. 그 호수에서 자주 수영을 한다고 했다. 언젠가 내게 수영하는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온몸이 젖었지만 표정만은 생기 발랄하던 그 사진은 에밀리의 건강한 삶을 들여다보게 했다. 어떤 날에는 친구와 조깅하는 영상을 보내오기도 했다. 사진을 보며 아침엔 숲 속에서 조깅하고 주말엔 종종 수영하는 에밀리의 건강한 사계절이 내 눈앞에도 그려졌다. 에밀리는 자주 수영을 해서 그런지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쭉쭉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저 몸의 긴장을 푸는 일. 에밀리는 편안한 마음을 강조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내게도 몸에 긴장을 푸는 일이 필요함을 느꼈다. 언제나 처음 들어가는 물은 차갑다. 바닥의 돌들은 미끄덩거려서 중심을 잡고자 열심히 발가락을 굴리기도 해야 하고 뾰족한 돌들을 피하려고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곧 내 몸은 어느새 물의 온도에 적응한다. 그러다 보면 긴장이 풀리고, 마침내 개구리처럼 팔과 다리를 쭉 뻗은 채 수영할 수 있게 된다. 완전히 긴장을 놓으면 안 되겠지만.


독일에 와서 한 달의 시간을 지냈고 그 과정은 수영하는 일과도 비슷했다. 낯선 곳에서의 적응, 코로나 상황, 인종 차별 등 여러 긴장감 속에서 나아가고자 노력했고, 동시에 긴장을 풀고자 애썼다. 긴장이 완전히 풀어질 때 즈음엔 또 긴장을 풀어서 발생하는 안일한 사건들이 있었으니 온전히 풀지도 말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작은 개구리가 되어서 물속을 헤엄치며 그 속에서 나름의 리듬을 찾아가고자 했다. 여전히 발가락의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외국에 와서 긴장했던 마음은 호수에 살짝 두고 왔다. 사진이 아닌 실물로 본 호수는 한적하고 고요했다. 짭짤한 바다의 맛이 느껴지는 바람도 여러 모양의 조개도 없었지만 대신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백조를 봤다. 초록빛의 강가에 햇빛이 물결만큼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물결 따라 내 마음에도 작은 일렁임이 번졌다.


둘째 날_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독일 가정집 방문은 독일인의 생활 방식을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물론 내가 만난 두 사람이 독일인을 대표하는 건 아니겠지만 독일이라는 나라를 살짝이나마 엿본 것만 같았다. 휴일에 공원에 나가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고 또한 가족 중심 사회라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가정집 안으로 들어오니 그런 분위기를 훨씬 더 체감할 수 있었다.


그중 저녁 시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에밀리의 가족은 저녁 시간에는 꼭 함께 밥을 먹는데 이때 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대화를 나누곤 한다. 우리가 찌개를 끓여서 나눠먹는 것처럼 여러 종류의 치즈를 꺼내서 도란도란 대화를 하며 나눠 먹는 모습이 정감 있었다. 저녁을 먹고 차나 간식을 먹는 시간이 꽤 길었는데 거실에 앉아있다가 하품이 연거푸 날 때 즈음 침대로 돌아갔다. 내가 먼저 방으로 간 이후에도 두 분은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다가 거실 불이 꺼졌다.


거실에서의 편안한 대화는 아마도 조명과 음악 덕분일 것이다. 백열등이 아닌 은은한 주황색 조명들이 켜져 있어서 밤의 정취와 분위기를 고조했다. LP판을 수집하는 음악 애호가분들이어서 그런지 거실에선 언제나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랫소리와 함께 창문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는 캠핑을 온 듯한 기분에 빠지게 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대화하지 않을 수 있을까.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포근한 마음으로 한참을 더 앉아 있고 싶었다.


저녁시간의 대화는 언어가 잘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음악,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게 거실은 수집한 앨범과 책들이 놓여 있는 작은 박물관이었다. 한국인 피아니스트의 음악 앨범을 꺼내서 보여주시기도 했고, 독일 밴드 음악을 LP로 들었다. 에밀리의 배우자는 아침에 시리얼을 먹는 내 앞에서 직접 기타를 연주해 주실 만큼 음악에 열정이 있는 분이었기에 이틀간 정말 많은 독일 음악을 들었다.


집에 TV가 없었기에 앨범이 없는 음악은 유튜브를 이용해서 다 함께 시청하기도 했다. 주로 독일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는데 보면서 정말 이게 오래전에 나온 음악이 맞는지 충격적인 음악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니나 하겐이다. 니나 하겐의 짙은 화장과 치켜뜬 눈을 보면 무섭고 괴기스럽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멜로디나 노래의 분위기는 SF, 미래의 어느 시대에서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외에도 Andreas dorau - Fred vom Jupiter, DÖF - Codo 등 과거 노래에서 발견한 신선한 음악은 독일 음악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아마 그날 듣지 않았더라면 평생 이 음악을 들어볼 일이 없었을 것은 확실하다.



추억하며_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플릭스 버스에서 뮌헨 방문기에 관한 글을 썼다. 역시나 오늘도 날마다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은 저 멀리 뒤로 한 채, 버스에 도착하고 나서야 노트북을 켰다. 독일어 선생님께서는 독일에 도착하면 하루하루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겨난다고 내게 말했는데 그 말을 실감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오늘의 나는 어제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고, 이번엔 과거의 인연으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에밀리와 헤어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누군가 잘해주면 의심부터 하라고 배웠는데, 의심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6개월 전, 아니 불과 1달 전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처음 해보는 장기간 외국 생활에 겁먹었지만, 연이 닿은 사람들로 인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 에밀리가 한국에 마음 편안하게 올 수 있는 코로나 종국이 오면 나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 그때가 빨리 찾아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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