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셀도르프에서의 어떤 만남.
뒤셀도르프는 독일 노르트 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도이다. 오늘은 독일 여행 중 단 5시간만 뒤셀도르프에 있다가 다시 돌아온 날을 적어보고자 한다.
뒤셀도르프를 간 이유는 내 친구 밀라(가칭)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밀라는 내가 처음으로 친해진 독일인 친구이다. 우린 언어 교환 어플에서 만나 친해졌고 내가 독일에 간 이상 한 번은 꼭 보자는 약속을 했다. 그렇게 밀라의 고향인 뒤셀도르프에서 짧은 만남이 이뤄졌다. 뒤셀도르프 중앙역에 도착해 그에게 "나 지금 서점에 도착해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자, 곧이어 그가 저 멀리서부터 걸어왔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밀라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 달을 살아보고 나니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연착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게 된다. 항상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간다는 칸트의 일화를 보면서 독일인들은 약속과 시간관념을 가장 중요시하리라고 믿었지만 오산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플릭스 버스는 30분이나 연착됐다. 밀라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에 사과했는데 이런 일은 흔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중앙역에서 한참을 기다린 밀라의 눈을 마주 보는데 미안한 감정과 처음 만나 민망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우리는 곧장 밥을 먹으러 갔다. 나는 한국어, 밀라는 독일어. 모국어가 다른 우리가 빨리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아니겠는가. 이건 만국 공통이긴 하다. 새 학기에 친구들과 그렇게 학교 앞 떡볶이 집에 드나드는 이유도 다 우리의 '우정'을 위해서이다. 맥주 양조장이면서 음식점인 유명한 맛집을 가려고 했는데 하필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고민하다가 일식집에 가기로 했다.
중앙 역을 빠져나와 길거리를 걸으니 이곳이 독일인지, 명동인지 헷갈렸다. 마인츠에서는 길 가다가 동양인을 마주치기 어려웠는데 뒤셀도르프에는 거리에서 동양인을 계속 마주쳤다. 밀라에게 물어보니 일본인들이 이 지역에 많이 살고 심지어는 일본의 날(Japan-Tag)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거리에 초밥, 라멘, 돈가스 등 일식집도 즐비했다. 사람들도 줄 서서 음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으로 보아 일식 맛집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라멘을, 친구는 카레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일식에 감탄하며 먹었다. 배가 좀 불러오자 어색함이 약간은 사라졌다. 뜨듯해진 배와 더불어 마음도 뜨듯해졌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익숙하지 않지만 독일어로 대화를 했다. 최대한 내 말을 알아듣기 위해 노력하는 밀라 덕분에 말이 안 되는 문법에도 그 뜻이 전달됐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기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기보다는 그저 편하게 이야기할 장소를 찾았다. 마침 혹시 몰라 돗자리를 가져갔기에 강가 근처에 앉아서 대화하기로 결정했다.
우린 강가를 가기 전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샀다. 이왕 만났으니 한국 과자를 함께 먹어보자고 아시아 마트에 들어갔는데 그 규모가 넓어서 놀랐다. 김치부터 젓가락까지 안 파는 게 없다. 알새우칩과 양파링을 사고 마트를 빠져나왔다. 그러다 맥주 거리에 들어섰다. 거리에 의자가 있었고 사람들이 밖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밀라는 뒤셀도르프에는 알트 맥주가 유명하다고 말해주었다. 반면 이웃 도시인 쾰른에는 쾰시 맥주가 유명한데, 두 도시에서는 매번 맥주로 열띤 경쟁을 벌인다고 했다. 알트도 쾰시도 먹어보지 않은 나는 어떤 맥주가 정말로 맛있는지 의문이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밀라는 알트 맥주가 훨씬 맛있다고 말했으니까! 지역 맥주 자부심은 그저 언론에서 만들어 낸 줄 알았는데 실제로도 자부심 있는 모습이 신선했다. 한국에 있는 지역 소주 자부심과 비슷한 걸까.
쇼핑거리인 Königsallee와 80년도 더 되었다는 전등을 지나고, 강가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마인츠에서와 마찬가지로 라인강이 흐르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밀라가 봉봉 초콜릿을 맛보라고 사줘서 가장 먼저 초콜릿을 먹었다. 입안이 달달해졌다. 그동안 여러 이야기를 한 우리인데도 할 이야기가 많았다. 독일과 한국의 차이를 첫 시작으로 대화를 나눴지만 어딜 가나 사랑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가장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문득 나와 문화가 다른 친구들과 조금 더 일찍 만날 경험이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후회의 감정도 생겼다. 다른 문화권에서 자랐기에 서로의 존재가 신선했다.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사고가 확장될 수 있으니 서로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긍정적인 만남이다. 이런 즐거움을 지금에서야 알게 돼 아쉬웠다. 하지만 앞으로 그 기회는 많으니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 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 되자 밀라를 만나면 주려고 가져온 편지를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편지와 함께 선물도 준비했다. 9월부터 한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밀라를 위한 한국어 그림책, 한국 젤리, 한글이 적힌 손수건을 준비했다. 편지는 서툴지만 독일어로 적어왔고 그 자리에서 낭독했다.
내게 밀라는 고마운 친구이다. 언어 실력 향상은 밀라와의 대화와 ZOOM에서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교환학생에 뽑혀 가기로 결심했을 때, 독일어를 배우고는 있지만 언어가 는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독일어를 내뱉을 일도 없어서 막상 독일에 간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주변 사람의 조언으로 언어 교환 어플을 깔게 됐다. 사실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일 자체도 겁이 나서 이조차도 용기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어플 사용 첫날 만난 친구가 밀라(가칭)였다.
대화를 하면서 밀라가 내가 원래 교환학생을 가게 될 학교에서 재학하고 있고, 방학이나 휴일을 이용해서 뒤셀도르프를 다니고 있음을 알게 됐다. 지역 표시를 보고 말을 걸긴 했지만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공통점으로 인해 내적 친밀감이 생겼고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지나더니 벌써 대화를 나눈 지 180일이 지났다.
어플을 이용해 친구를 만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다. 다양한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또 이와 동시에 금방 관계가 단절된다. 나 역시 자꾸 끊기는 연락에 시들해지기도 했고, 내가 연락을 자연스럽게 끊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밀라와의 대화는 지속됐다. 워낙 친절한 그의 성격 덕분이다. 언어 실력이 걱정된다는 나의 말에 독일 오기 두 달 전부터는 매주 ZOOM으로 대화하기도 할 정도였다. 운이 좋은 나는 밀라 덕분에 교환학생을 포기할 때도 응원을 받았고, 독일 여행 와서도 독일어를 몇 마디 더 시도해볼 수 있었다.
편지에는 고마움의 감정을 담뿍 담고자 했으나, 과연 이 마음이 다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어로 유려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도 독일어로 쓰려고 하니 모든 부분에서 내 마음을 다 전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편지 낭독을 다 들은 밀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내 마음이 밀라에게도 느껴진 모양이다. 아주 깜짝 놀랐고, 그 즉시 선물로 가져온 손수건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나름 실용적인 선물이었다.
5시간만 있다가 뒤셀도르프에서 빠져나와 다시 가야 하니 어쩐지 슬퍼졌다. 언제 다시 독일을 와볼 수 있을까. 비행기표 값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내게 또다시 주어질까. 어쩌면 우리의 만남은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 언젠가 또 보자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버스에 다시 탑승했다. 버스에 탑승한 이후에도 창밖으로 밀라가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을 지켜봤다. 뒤셀도르프 관광 명소를 찍고 돌아다니지 못했어도 오늘 이 시간이 전혀 후회되지 않았다.
밀라와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뒤셀도르프에서 빠져나왔다. 언젠가 또 독일에 가게 된다면 그땐 밀라와 '독일 최고 맥주'인 알트 맥주를 마시며 늘어지게 앉아있고 싶다. 유명하다던 관람차에 탑승해서 야경도 구경하고 근처 도시들도 구경하고 싶다. 그때는 독일어를 더 잘해서 말하고 싶은 모든 마음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 그때가 오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