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그리고 비건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지만, 내 주위에는 채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 다양한 채식당을 가보기도 했고 이야기도 꽤 많이 들었다. 주변인들의 영향 때문일까. 작년에는 채식하는 사람의 동기가 궁금해서 따로 한 분과 심층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 비건은 실천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오늘은 독일 와서 느꼈던 비건과 관련한 생각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한국에서 채식하는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땐 난 늘 만족스러웠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완전 맛있는' 채식당을 내게 소개해줬다.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에 맺히는 여름날이면 중식당에 가서 새콤달콤한 중국식 냉면을 먹었고, 겨울에는 색색의 채소가 가득 들어있는 따듯한 카레를 먹었다. 이외에도 콩고기가 들어간 햄버거, 고기 육수를 사용하지 않은 마라탕, 어향가지 볶음 등 다양한 메뉴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디저트도 마찬가지였다. 달걀과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빵, 우유 대신 두유로 바꾼 카페 음료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채식당은 서울에만 몰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사실 채식하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식당은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적기도 하다. 정해진 선택지 안에서 열심히 맛집을 찾아다녔고, 결국 가던 식당을 다시 가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채식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더 부족했던 시절, 한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채식하는 사람은 몸이 튼튼해야 해" 몸이 조금만 아파도 사람들이 고기를 먹지 않아서 허약해진 거라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독일에서의 경험을 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독일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트를 갔던 날이었다. 온통 외국어로 적힌 식재료와 제품들로 인해 머리가 빙글 뱅글 돌아갔다. 지금이야 적응해서 글자를 읽어나가지만, 그때는 독일어가 익숙지 않아 그저 그냥 감으로 맛있어 보이는 음료수를 골랐다. 미끈덩한 물에 적응하기 어려워서 내겐 음료수가 절실히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음료 뒷면을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에는 비건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저 맛있어 보여서 골랐더니 비건이었다. 그 표시를 보고 솔직히 놀랐다. 비건 음료, 과자 리스트를 공유하며 관련 제품을 찾아서 먹던 내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 이후에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선택했더니 비건이었던 술, 음료 등이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 손쉽게 비건 제품을 먹을 수 있으면, 굳이 비건이 아닌 제품을 먹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덧붙여 비건이 아니더라도, 마트에서는 유당불내증을 위한 다양한 제품들을 볼 수 있었다. 우유뿐만 아니라 유당불내증을 위한 아이스크림, 생크림, 요거트 등의 유제품도 볼 수 있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친구는 유당불내증으로 유제품을 잘 먹지 못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이 신기할 정도라고 한다. 우유를 마시는 순간 바로 배가 아파오기 때문이다. 굳이 큰 마트를 가지 않아도, 작은 마트에도 락토 프리 제품은 볼 수 있다. 비건, 유당불내증 등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점이 보기 좋았다.
채식과 관련한 경험은 식당에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도 채식주의자를 위해 고기가 들어간 음식에서 고기를 빼 달라는 방식으로 채식을 할 수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닭, 소고기, 양고기 등을 빼는 방식이 있었고, 아예 메뉴판에서 채식주의 메뉴들만을 찾아볼 수도 있었다. 좀 더 관심이 갔던 부분은 거의 모든 카페, 식당에서 '채식주의 메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쌀국수를 파는 베트남 음식점에도, 볶음밥이 맛있는 태국 음식점에도 모두 채식 메뉴가 있었다. 심지어는 슈바인학센을 파는 음식점에도 채식 메뉴는 존재했다. 식당도 마트처럼, 그냥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음식점을 들어가도 채식을 먹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메뉴판에 채식 메뉴가 따로 있다는 사실만을 인지하고 있다가 코블렌츠에 놀러 갔던 날, 터키 음식점에 들어갔다.
오늘은 우리도 채식 메뉴 중 음식을 고르자고 결정했고, 고심 끝에 결정한 버섯 샴피뇽과 가지, 토마토가 주재료인 콩피 비알디를 먹었다. 온전한 비건은 콩피 비알디였고, 버섯 샴피뇽에는 치즈가 들어갔다. 메뉴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감탄을 연발하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맛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이 음식을 먹기 위해 한 시간 반 거리를 걸려 다시 오고 싶을 정도였다.
좋은 추억으로 남은 식당에서의 기억으로 인해, 다음 주 중에는 온전히 채식만을 파는 식당에 가서 먹어볼 생각도 하고 있다. 채식을 주메뉴로 하는 곳에 가면 더욱더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다양한 음식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일은 채식주의자에게 살기 좋은 나라 아닐까.
그렇지만 이 글은 한국과 독일을 비교하며, 독일이 한국에 비해 모든 부분에 있어서 너무나도 좋다고 말하고자 하는 글은 아니다. 각 나라의 특징 중, 그저 채식에 대한 인식면이 독일에서는 조금 더 보편화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분명 독일에서도 채식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개인의 선택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생각도 존재하는 법이니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식당이 한국에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채식을 바라보는 인식이 더욱 넓어지고 보편화되면 좋겠다. 굳이 '채식당'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고, 여러 식당에서도 비건 메뉴가 보편화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 채식하는 사람들도 함께 가서 식당을 가서 점심 먹고, 또는 일 끝나고 회식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또한 채식을 하지 않던 사람들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채식에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맛있어서, 거리가 가까워서, 가격이 적당해서 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 비건을 선택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까운 거리의 적당한 가격, 맛있는 음식을 원하지 않을까? 다만 그 선택지 중 '채식'이어야 하는 필요조건이 있을 뿐이다. 그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음식, 식당, 관련 인식이 넓어지면 좋겠다.
채식하는 내 친구들이 채식이어서 음식을 고르는 게 아니라, 맛있어서 고르는 채식 선택지가 많아지기를 바라며! 나도 그들을 따라 한국에서 더 다양한 맛있는 채식을 먹고 싶다.